사는 이야기

을유년 마지막 어스름속을....

푸른비3 2006. 1. 1. 18:18

군대에 가 있는 아들이 100일 휴가를 맞아 집으로 왔다.

막상 집에 왔지만 함께 할 시간은 너무 없다.

새벽 3시에 집에 들어 오더니 또 아침만 먹고는 접심도

친구와 한다고 나가 버렸다.

하기야 아들의 표현대로 4박 5일이 아니라 4.5초라 했으니....

년말과 신정 연휴 여행을 함께 가자고 하였더니

자기는 군대 생활이 바로 여행 떠난 생활인데

어딜 또 떠나자고 하느냐?고 하더니

우리만 매일 집에 남겨 놓고 혼자서 어딜 그렇게

바쁘게 돌아 다니는지.....

마지막 일몰을 주남 저수지로 철새를 보려 가자고 하였더니

안가겠다고 하여 한참 가고 있는데, 함께 데려가 달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차를 다시 되돌려 약속한 장소로 가서 함께 갔다.

이번에는 매몇번 갔던 커다란 저수지로 가는 게 아니고,

다른 길로 해서 늪처럼 마른 풀이 엉켜있는 신판마을 뒤로

돌아서 가 보았다.

길이 없는 것 같아 다시 돌아 나오기도 하면서....

겨우겨우 찾아갔더니 어느새 보랏빛 어둠이 내려 앉고 있었다.

하늘을 줄 지어 날아 오르는 철새들.....

저물어 가는 강가는 그야말로 한편의 詩였다.

하얀 얼음이 둥둥 떠 다니고,

빈배도 물속에 잠겨 있고

어디서 마른 풀을 태우는지, 매캐한 연기도 피어 오르는 곳.

정지용의 '향수'를 연상 시켰다.

10살 터울이 나는 딸 아이는 제 오빠와 지내는 시간이 너무 좋아

하루가 아주 길었으면...하고.

 

주변은 어느새 어둠이 내려 덮히고,

 

 딸 아이는 돌을 집어 멀리 던져 보기도 한 주남 저수지

 

하늘의 구름은 마치 비로 쓸어 놓은듯 빗금이 그어져 있고.

 

오빠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영원히 길었으면...하는 우리딸 아라

 

시든 풀들이 바람에 수런수런 이야기 나누는 듯 하고.

 

강가에 메어 놓은 폐선는 쓸쓸히 하루를 마감하고.

 

오빠야~ 나 좀 봐~!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철새들.

 

어둠이 더욱 짙어, 우리도 발걸음을 돌려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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