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중미 배낭 여행-98. 뜨리니다드의 석양

푸른비3 2025. 2. 2. 09:59

2016.11.29.화.

 

이제는 익숙해진 골목길을 걸어 숙소로 향한 골목길을 오르는데

저 멀리 허무어져가는 건물이 눈에 뜨여 그곳으로 가 보기로 하였다.

언덕을 오를수록 집들은 손을 보지 못하고 방치된 듯 허술해 보였고,

길가에 나와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어쩐지 두려워 마음이 졸아들었다.

 

다행히 일행중 남자분도 한 분 계셨으므로 그나마 의지가 되었다.

저물어가는 골목길의 흙바닥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들을 의식하며

남의 영역을 침범한 듯 하여 조심조심 언덕을 오르는데 여인들이

우리앞에 손을 내밀며 비누나 볼펜을 달라고 하였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서서히 땅거미가 내리는 골목길은 노을이 물들여 불그스럼해졌다.

시인 김기림의 시, "나는 노을에 함뿍 젖어서 돌아오곤 하였다"는 <길>이 떠 올랐다.

마침 저 멀리 카리브해 너머로 석양이 넘어가고 있어 우리는 발길을 멈추고

석양의 바라보았는데 갑자기 주변의 흔들리던 나무도 숨을 죽이는 듯 하였다.

 

우리는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면 경건한 마음이 든다.

저 태양처럼 긴 하루를 열심히 살았는가 하고 뒤를 돌아보게 하고

저 석양처럼 내 인생도 아름답게 물들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한다.

오늘 하루를 허락해 주신 그 분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저마다 숙연한 마음으로 석양을 바라본 후 다시 언덕을 올랐다.

허물어져가는 교회앞에서 손으로 뜨게질을 하는 여인이 물건을 사라고 하였다.

허물어진 교회는 각목으로 받침만 해 놓은채 그냥 방치되고 있었다.

그 언젠가 이 교회에서도 찬송가가 흘려 나왔을텐데....아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민박집에서 마지막 밤이라 우리는 랍스터와 포도주로 만찬을 하기로 하였다.

배불뚝이 주인 아저씨는 티셔츠를 훌렁 뒤집어 올려 배를 내 놓고 다녔는데,

첫날부터 우리에게 이것 저것을 권하며 매상을 올리려고 하였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집안일을 열심히 거드는 성실한 가장인 듯 하였다.

 

백인 혈통인 주인 아주머니는 첫날 빠샤 포르테(여권)라는 단어를 못 알아들어

한참이나 답답하였지만 요리도 잘하고 집안도 비교적 잘 가꾸는 주부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스카프를 작별 선물로 주었더니 입을 맞추며 좋아라 하였다.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였더니 주인 아저씨는 얼른 셔츠를 내리고 포즈를 취했다.

(우리가 이집에서 먹은 음식값을 계산하니 100세우세가 넘어 수입이 짭짤)

 

 

 골목길의 이발소.

 

 노을에 함뿍 젖어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는 김기림의 시 '길'이 생각났다.

 

내  어린시절, 아이들이 뿔뿔히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의 골목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마침 카리브해로 넘어가는 태양.

 

 발길을 멈추고 두 손을 가슴에 모두고 석양을 바라보았다.

 

 내 삶의 마지막도 저처럼 아름다웠으면....

 

 하루를 마감하는 골목.

 

 위로 오를수록 집들은 허술하였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문앞 흙바닥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남성들.

 

 어린이 놀이터.

 

 언덕위의 허물어져 가는 교회.

 

 교회앞의 민예품 가게에 펄럭이는 수예품.

 

 교회앞에 앉아 손으로 레이스를 뜨는 여인.

 

 형체만 남은 허물어진 교회.

 

해는 지고 붉은 기운이 남은 바다.

 

 어둠에 젖어드는 마을.

 

 하나 둘 불이 들어오는 마을.

 

 민박집 주인 부부와 마지막 작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