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여고 동창들과 추억 여행-6. 마산 성지여고

푸른비3 2024. 5. 2. 11:59

2024. 4. 30. 화.
 
여고를 졸업한 후 마산에 거주할 때에는 몇 번 모교를 찾았지만
서울로 올라온 후에는 거의 방문을 하지 못하였던 마산 성지여고.
나는 우습게도 세일러복 교복이 입고 싶어 성지여중을 지망하였다. 
 
성지는 가톨릭재단의 학교로 그 당시 학교 교장선생님이 수녀님이셨고,
내 중2년 담임선생님도 얼굴이 복스러웠던 홍수녀님이셨다.
모태 신앙의 집안이었으므로 부모님도 성지를 지망한 것을 흡족해 하셨다.
 
세월이 흘렸지만 학교의 교정을 떠올리면 단숨에 학창시절로 돌아간다.
야간자율학습이 지겨우면 친구들과 옥상에 누워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금발의 제니. 스와니 강. 아, 목동아 등 노래를 불렸다.
 
수업시간에도 잠시 눈만 돌리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포근히 들어왔고,
무학산 자락의 농장에 하얗게 핀 벚꽃과 노오란 유채꽃이 아련하였다.
그 아름다움에 지긋이 눈을 감으면 선생님의 분필이 날아오기도 하였다.
 
친구와 다투고 속이 상하면 학교 뒤 작은 성당에 들어가 마음을 다독이며
내려오면 주교관의 연못에 졸졸 떨어지는 물소리가 마음을 씻어 주었다.
주교관 화단의 철쭉과 연산홍의 화려한 자태는 늘 기억속에 꽃을 피웠다.
 
5월이면 어머니날. 스승의 날에 교내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사랑하는 어머니께'. '존경하는  선생님께'로 시작하는 손편지를 쓰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하였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은 성모님의 달이기도 하여 <성모의 밤> 행사도 잊을 수 없다. 
어둠이 내리면 장미로 가득 장식된 성모상 앞으로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
우리의 손에는 촛불이 들려 있었고 촛불에 비친 친구의 눈동자가 반짝였던 기억.
 
아, 또 있다. 학교의 담장 아래로 복숭아와 포도를 기르는 조그만 과수원이 있었다.
담을 넘어 그 과수원으로 내려가 사먹었던 복숭아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털이 보송송한 불그레한 복숭아를 한 입 베어물면 입안에 가득한 복숭아 향기.
 
단발머리 소녀였던 그 친구들이 이제는 다리도 아프고 머리도 하얀 할머니가 되어
오래만에 학교 교문을 들어서니 모두 감회가 새로운지 교문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입구에 계시던 선생님에게 모교가 그리워서 멀리서 단체로 방문하였다고 알렸다.
 
시험기간이라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간 듯 교정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창가에 앉아 바다와 무학산 언저리를 바라보았던 교실을 올려다 보았다.
화강암으로 지은 건물은 여전한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야속하였다. 
 
성모상도 여전하고 주교관의 연못과 왕벚꽃 나무는 여전한데
우리가 공던지기, 달리기를 하였던 운동장은 왜 그리 좁아보이는지....
교정 뒤의 요샙 성당으로 들어가 친구들과 방문하여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학교를 방문한 후 친구들은 진동 펜션으로 떠나고
나는 손자들이 보고 싶어 마산 아들집을 찾았다.
 
아들은 월말이라 늦게 퇴근하고
며느리는 직장 끝난 후,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손자와 함께
교리공부와 저녁미사까지 마치고 돌아온다고 하여
빈 집에 들어가 달콤하게 한 숨 자고 일어났다.
 

학교 담장 뒤의 과수원밭은 사라지고....
 

교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친구들.
 

화강암으로 지은 교사는 여전하였다.
 

성모상. 
 

교사로 오르는 길.
 

내가 공부하다 눈을 돌리면 바다가 들어왔던 창.
 

주교관의 연못.
 

왕벚꽃나무.(이곳부터 사진기를 잘못 건들렸는지 색상이 변하였다)
 

왕벚나무의 사연과 김수환추기경의 안내판.
 

주교관은 없어지고 체육관 식당이 들어섰다.
 

창원시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성요셉 성당.
 

성당 안.
 

교정 뒤의 가로수 길. 이곳에서도 마산 앞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아들집의 손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