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남미 43일 배낭 여행- 56. 칠레의 달의 계곡

푸른비3 2024. 4. 28. 20:12

2015.10.26. .

 

볼리비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새벽 4시 반에 아침 식사. 5시 출발. 이틀을 잠을 못 자고 고산증에 시달리고 나니 어서 화산지역을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패키지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활화산 체험이라고 하였다. 새벽 찬 기온에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가상세계에 온 듯하였다. 워낙 겁이 많은 나는 무서워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에 가기가 두려웠다. 멀찍이 서서 분출하는 연기를 바라보고 먼저 차 안으로 들어가 앉아서 바라보았다. 일행들은 연기가 솟구치는 곳에 다리를 넣어 보기도 하고 물병을 넣어 보기도 하였다. 화산 분출지역에서도 나는 머리가 개어질 듯 아프니 그냥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우리는 다시 드문드문 암석이 서 있는 광야를 달렸다. 눈에 보이는 흙무더기는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가 영감을 얻어 작품활동을 하였다고 하였지만, 내 눈에는 달리보다는 모네의 일출 연작을 연상하게 하는 곳이었다. 조금 더 달리니 노천 온천수가 분출하는 곳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에는 서양에서 온 젊은이들이 주변에 옷을 벗어 놓고 온천을 하였지만, 나는 번거로워 따뜻한 물에 발만 살짝 담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천의 효과로 한결 개운하였다.

 

드디어 칠레의 국경지대에 도착. 여태껏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와는 달리 아스팔트 매끄러운 길이었다. 입국장에 도착하니 볼리비아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이었다. 대부분 백인인 직원들은 입국 심사도 신속하게 처리하고 친절하였다. 국경 지역에 있는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는 관광객이 주민보다 더 많은 도시. 숙소인 루카호스텔에 도착하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체크인이 되지 않았다.

 

짐을 카운터에 맡기고 점심부터 먹기로 하였는데 물가가 엄청 비쌌다. 이곳에는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도 원주민보다 서양인이 더 많은 듯하였다. 골목으로 나가 보았더니 많은 관광객이 달의 계곡으로 가기 위해 여행사 앞으로 모여 들었고 우리도 여행사의 한 상품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약속된 시간에 버스에 올라탔다.

내 옆에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왔다고 하는 체구가 작은 여인이 앉았는데, 혼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스페인어가 이곳의 공용어이니 물론 언어가 통한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여행을 하는 여인이 퍽 당차고 용감해 보여 대단하다고 칭찬하였다. 그녀는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물을 먹으면서 자신이 먹던 물을 나에게 먹겠느냐고 내밀었다. 그러잖아도 목이 말랐는데 어떻게 눈치를 챘을까? 물을 준비하지 않은 나는 초면이지만 체면불구하고 여인의 물병을 받아 물을 마셨다.

 

우리 버스의 가이드는 우리를 위해 영어로도 설명을 해 주었지만 역시 힘들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몇 마디뿐....대충 짐작으로 알아차려야만 하였다. 600m 안팎의 분지 모양을 이루고 소금의 퇴적층으로 덮인 지역이 많다. 지하수 미터에는 2~3m의 초석층이 퇴적해 있다고 하였다.

 

설명서에 의하면 칠레의 달의 계곡은 달의 환경처럼 푸른 생명이 없다. 사막 주변에 구리, , 코발트, , , 니켈 등 광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볼리비아와 경계가 불명확하여 분쟁이 계속 되었으나, 1884년 발파이소 조약의 체결로 칠레의 영유권이 확정되었다고 하였다.

 

달의 계곡은 달의 표면을 걷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고 하였는데,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해질무렵이라 더욱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서쪽으로는 원시적인 사막 너머 붉은 노을 사이로 막 해가 떨어지고 동쪽으로는 높이 치솟은 안데스 산위로 보름달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마침 오늘이 음력 9월 보름은 남편의 생일이기도 한 날이라 마음이 복잡하였다. 이런 환상적인 장소에 내가 오게 된 것도 남편의 도움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을 향하여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남편의 영원한 안식을 빌었다.

 

 

길앞에 나타나는 하얀 연기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왔다는 여인.

 

 

어느새 동쪽으로는 만월이 떠 올랐다.

오늘이 음력 9월 보름밤. 남편의 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