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43일 배낭여행 –1. 멀고 먼 나라 남미.
2015.10.7. 수.
드디어 남미로 떠나는 아침이다. 그동안 딸을 혼자 두고 몇 번인가 여행을 떠나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긴 시간을 혼자서 밥해 먹고 학교에 다녀야 할 딸 아라를 두고 먼 길 떠나는 내 마음은 걱정과 염려로 복잡하였다.
평소에 아침잠이 많은 아라가 먼저 일어나 기도를 하자고 하였다. 남편이 저 세상으로 먼 저 간 후, 우리 모녀는 아침마다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의지할 곳 없는 우리 모녀에게 기도는 많은 힘과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가 끝난 후 아라는 나를 껴안고 인사를 하였다.
“아프지 말고, 혼자 위험한 곳 다니지 말고, 엄마가 평소 보고 싶었던 곳들 잘 다녀 오라.”는 인사와 함께 작은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평소에 엄마인 나를 오히려 자기가 엄마라도 되는 듯 항상 챙겨주고 염려해 주었던 딸이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내가 딸의 딸이 된 느낌이 들었다. 딸 아라를 더욱 세차게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엄마에게서 용돈을 얻어 쓰는 네가 무슨 돈이 있느냐. 네 돈 만 원만 항상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널 생각할께.
나머지는 네가 쓰라. 미리 두 달치 용돈 네 통장에 이체하였고, 서랍장에 비상금도 넣어 두었다." 라고 말하는 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은 아들보다 단연 딸이다. 이제 결혼을 하여 저도 가정을 이루었지만, 장기간 여행을 떠나는 엄마에게 성의 표시를 하지 않는 아들을 서운해하였던 내가 더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늦은 오후에 이륙하는 비행기이지만 마음은 아침부터 분주하였다.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면서 꽃들과 이야기 나누고,
며칠 전 깁스를 푼 다리를 마지막 점검도 할 겸 병원에 다녀오니, 어느새 정오 무렵이라 점심도 먹지 못하고 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배낭여행을 하려면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하여, 주말마다 산으로 올랐는데 하산도중 발목 골절을 당하였다. 마사토에 미끄러지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남미여행을 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었다.
119구조대원에게 들것에 실려 내려오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벌써 예약이 끝난 남미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한 달 넘게 깁스를 하고, 담당 의사의 허락을 받기는 하였지만, 아직 이렇게 퉁퉁 부은 발목으로 장기간 여행을 하는것을 주위에서 모두 걱정하였다. 남미 여행에 대한 갈망은 한 달 동안 깁스를 하고 집안에서만 갇혀 지내는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이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나도 걱정이 되었다. 그 먼 나라에 가서 다시 아프면 혼자서 돌아올 수도 없고....걱정되었지만, 담당 의사는 오히려 많이 걸어 다닐 것을 권하여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여행 동호회 회원들인 우리 일행 15명은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 대장의 권유에 따라 거금 12만 5천 원 가입비를 내고 P.P카드를 만들었다. 시중보다 비싼 음식값에 공항에서는 비빕밥도 안 사 먹었던 내가 이 카드 덕분에 우아하고 넓은 공항 라운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점심도 못 먹은 참이라 공항 라운지에서 샐러드와 빵으로 배를 채웠다. 이번 여행에서 열 번을 넘게 여러 나라의 공항을 이용하였지만, 인천공항만큼 우아하고 쾌적한 공항 라운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중에는 괜스레 큰돈을 들여 카드를 만들었구나....하는 후회감도 들었다.
우리가 타고 갈 에어 아메리카 항공. 여행 경비를 아끼기 위해 국적기 대신 이 비행기를 이용하였는데 미국 비행기이지만 대부분의 손님은 한국인이었고, 기내 방송도 한국 버전으로 해 주었고, 한국말을 하는 스튜디스들로 편안하였다.
기내 스크린에 나오는 달라스 포트워스 까지의 거리 10999킬로. 숫자에 약한 나는 머리 속으로 한참이나 동그라미와 덧셈 나눗셈을 해 보아야만 하였다. 4킬로가 10리이니 거의 3만 리가 되는 거리로구나. 맞나?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 <엄마 찾아 삼만리>가 떠 올랐다.
<엄마 찾아 삼만리> 동화책은 나에게 문학의 꿈을 키워 준 책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대여가 되지 않는, 학교 도서관에서 그 책을 읽고, 어둠이 내리면 다음 날 읽으려고 책꽂이 뒤에 살짝 감추고 나왔던 기억들.
희미하게 내려다 보이는 강과 들판. 나는 비행기로 이틀을 날아서 도착하는 거리이지만, 어린 소년 마르코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몇 달이 걸려 어머니를 찾아갔었으나 번번이 만나지 못하여 나를 안타깝게 하였다.
비록 다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좁은 좌석이지만, 이렇게 앉아서 남미로 갈 수 있음에 감사하여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웠지만 역시 장거리 비행은 너무나 힘들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였지만, 왜 순간이동 같은 것 좀 발명하지 못할까?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한 달라스 포트워쓰 공항. 바다위에 반도처럼 뻗은 공항인 모양이다. 긴 비행끝에 사뿐히 착륙하는 기장에게 감사의 손뼉을 보냈다.
공항에 내리니 역시 부자 나라 미국을 실감하게 하였다. 모든 게 반짝반짝 빛이 나고 부유해 보였다. 요즘 한국인에 대하여 비자가 없어지기는 하였지만, 역시 입국하기는 까다로워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하였다. 먼저 나온 일행들이 입국 심사를 통과하기를 기다리는 우리 일행들. 공항에서 환승하기 위해 5시간을 기다려야 하였지만, 이곳 달라스 공항의 라운지는 좁고 곧 문을 닫을 시간이라 이용하지 못했다. 긴 시간을 기다렸으나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루하지 않았다. 면세점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냥 공항의 긴 의자에 누워 잠깐 잠을 자기도 하였다. 22시 달라스 공항을 출발하여 5462킬로 떨어진 페루의 리마 공항에 8일 새벽 5시 도착. (만 오천리의 거리인가?) 공항의 벽면에 붙여진 아마존 밀림의 사진이 이곳이 페루임을 알려주었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의 밀림지구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 떨렸다. 이번 여행에서 꼭 가 보고 싶은 곳의 하나인 공중도시. 그동안 비밀에 쌓였던 이 공중도시를 내가 가 볼 수 있겠구나. 돌로써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세워졌다는 공중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페루의 공항에 붙어있는 마추픽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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