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우리 우리 설날은

푸른비3 2023. 1. 22. 12:02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펀 글)

 

 

어린 시절,

까치 설날이라고 하는지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목청껏 불렸던 윤극영 선생님의 동요이다.

 

조금 나이가 들면서 왜 설날 전날을 까치 설날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했지만 주변에 물어 볼 사람도 없었다.

그저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까치 들의 설날인가?....

하고 추측해 보았을 뿐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를 모셨던 어머니는 없는 살림이었지만,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께 문안인사를 오시므로

정월 보름이 되도록 집안에 손님 맞이할

설음식을 갈무리애 두셔야만 하였다.

 

우리 자매들은 새벽부터 방앗간에 가서

줄을 서서 가래떡을 몇 말씩이나 뽑아 왔고,

어머니는 간수를 넣어 몽글몽글한 두부를 만드셨고,

물엿을 고와 땅콩, 검은 깨를 버무린 강정을 만드셨고

검정 모래를 냄비에 달구어 둥글게 부푼 유과를 만드셨다.

 

주전부리가 귀했던 그 시절에는 설날이 다가오면,

먹을 게 풍성해지는게 좋아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설날을 맞이하기 위해  치르는 일은 번거로웠다.

 

햇살 좋은 날 우리 남매들은 양지녁에 가마니를 깔고

기왓장를 가루내어 놋그릇을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아야 하였고,

시커멓게 녹이 난 장롱의 장석들을 팔이 아프도록 닦아야만 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문짝을 떼어내어 새로운 문종이를 붙이셨고,

콩기름으로 윤을 낸 노란 장판을 새로 바르셨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방으로 들어오는 겨울 바람은 참으로 추었다.

 

새로 도배한 방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

햇살에 팽팽하게 당겨진 하얀 창호지는

고소한 음식냄새와 함께 명절의 상징이었다.

 

모든 게 풍성해진 요즘 아이들에게 명절은 무엇으로 기억에 남을까?

마산에 살고 있는 아들은 손자들에게 서울 구경도 시켜 줄겸

설날보다 앞당겨 19일 목요일에 오겠다고 하였다.

 

수요일 저녁 "엄마, 맛있는 것 많이 해  주세요." 전화를 하였는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일이라,

목요일 갑자기 둘째 놈(5살)이 볼거리로 볼이 발갛게 부어 올라

병원에 갔더니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괜찮다. 아이들은 원래 아프면서 크는 거야.

엄마도 빨리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할께."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갑자기 마음에 구멍이 펑 뚫리고 찬바람이 휑하니 부는 것 같았다. 

유난히 고모를 따르는 조카들이 오면 같이 놀아 줄 생각을 하였던

아라도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것 같다고 아쉬워 하였다.

 

설날인 오늘 아침 유난히 더 일찍(새벽 3시)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잠을 청하기 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미루어 두었던 책을 읽었다.

5시 알람 소리에 아라를 깨워 6시 새벽 미사에 다녀왔다.

미사를 다녀 온 후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차례상을 차려 절을 하였다.

 

아들 가족이 있으면 새벽에 일어나 조용조용 숨죽여 부엌일을 하였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좋구나....스스로에게 위안을 하면서.

차례상을 차려 아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곧 답장이 왔다.

조금 후 며느리도 새해 인사 귀여운 이모티 콘과 함께

저희가 없어서 차례상 준비하느랴 고생하셨죠? 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이번 설날에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미루어 두었던 영화 몇 편을 보면서

그냥 조용히 설날을 보내야겠다.

그것도 좋은 명절 보내기라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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