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불가사의 인도- 22. 꾸틉 미나르 유적

푸른비3 2022. 12. 25. 15:08

2022. 12. 23. 금.

 

뉴 델리의 남부는 부유한 지역으로

세계적인 체인 호텔과 현대적인 쇼핑몰이 많으며,

정비된 도로와 세련된 멋장이 인도인을 볼 수 있는 지역이라고 하였다.

그  쇼핑가 사이에 이슬람 왕조의 승전탑 꾸틉 미나르가 있다.

 

꾸틉 미나르  유적군은 13세기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노예 왕조 시기에 만들어진 유적군이다.

붉은 사암으로 지은 알라이 다르와자가 유적군의 정문이며 

꾸틉 미나르, 꾸와뜨 울 이슬람 모스크,  이슬람교의 성자 이맘 자민과

노예 왕조의 세 번째 왕 일투따미시의 묘,

폐허가 된 이슬람 학교 알라 우딘 마드리사가 있다.

 

안을 들어서니 높이 73미터의 승리의 탑 꾸틉 미나르가 우뚝 서 있으며

주변에는 마치 로마의 유적지처럼 보이는 반쯤 허물어진 잔해가 보였다.

우리는 먼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자유 시간을 갖기 위해

유툴두툴한 벌집처럼 쌓인  미완성 탑 알라이미나르 앞에 모였다.

 

알라이 미나르는 모스크의 북쪽에 미완성으로 세워진 거대한 탑으로

알라우딘 왕에 의해 계획되었으며 그는 꾸틉 미나르와 같은 모양이면서

2배의 규모의 승전탑을 짓을 계획이었으나 암살되어 미완성 상태로 있다.

알라이 미나르의 1층 부분은  둘레가 무려 25미터에 이르지만 

그 후 누구도 나머지를 건설하지 않아 미완성 상태로 있었다.

 

하늘로 치솟은 꾸틉 미나르는 술탄 꾸틉 우딘이 1193년 델리의

힌두 왕조를 패배시킨  기념으로 건설한 '승리의 탑'이라고 한다.

탑의 바닥은 직경 15미터, 위로 오를수록 가늘어진 모습으로 

꼭대기는 2.5미터,탑의  높이 73미터라고 하였다.

 

1층~3층은 붉은 사암. 4~5층은 대리석과 사암으로 건축하였다.

건설 당시에는 4층이었으나 1326년 투글라크 왕조 때 5층으로 개축하였다.

당시에는 지붕에 둥근 돔이 씌워져 있었으나 1829년 델리 지진때 파괴되었다.

1982년 까지는 내부의 돌계단으로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으나

압사 사고가 난 후로는 내부 계단은 폐쇄 중이라고 하였다.

 

꾸와뜨 울 이슬람 모스크는'이슬람의 힘'이라는 뜻이 담긴

1193년 힌두교 사원을 무너뜨린  자리에 건설한 인도 최초의 이슬람 모스크다.

힌두교 사원 27개를 파괴한 후 그 잔해의 자재를 모아 지었다고 하였다.

후대 왕들에 의해 여러 가지 요소가 추가되었지만 

현재는 폐허가 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모스크 안 뜰에는 높이 7미터의 절기둥이 있는데,

철의 함량이 99.99%로

이 정도의 순도는 현대 과학 기슬로도 주조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약 4세기 경 찬드라굽타 시절에 만들어졌으며, 노천에서 비바람을 맞고 

오랜 기간을 서 있지만 아직 전혀 녹슬지 않은 상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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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서적

프렌즈 인도. 네팔.-전명윤, 김영남, 주종원 지음.  중앙 books

인조이 인도. 양신혜, 오빛나 지음.  넥서스 books

 

 

꿉트 미나르 유적군으로 들어가는 길.

 

높이 72.5미터 하늘로 치솟은 승전탑. 꾸틉 미나르.

 

고대 로마의 유적지를 보는 듯한 돌로 건축한 유적.

 

알라이 미나르.

둘레 25미터. 1층 부분만 남아 있다.

 

꾸틉의 후계자 일투트미쉬의 무덤.

 

무덤에서 바라본 승전탑 유적군.

 

가까이 다가가서 본 알라이 미나르.

 

알라이 미나르 입구는 출입금지 구역이었다.

 

알라이 미나르에서 바라본 꾸틉 미나르.

 

설명판을 읽고 있는 현지인들.

 

이정표.

 

당시의 우물.

 

현지인 방문객과 기념 사진.

 

유적군의 정문인 알라이 다르와자.

 

이슬람의 성자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 곳.

 

아랍 글자와 이슬람 문양.

 

노예 왕조의 세번 째 왕 일투따미시의 묘.

 

이곳은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이 끊임없었다.

 

 무덤의 입구.

 

보수공사중인 이곳은 설명을 들었으나 잊었다.

 

로마의 유적지처럼 보이는 돌기둥 앞에서 기념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