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저녁 <새해 첫날 저녁에> 글을 컴퓨터에 올린 후
컴퓨터 앞에 앉고 싶지 않았다.
내가 쓴글이 부끄러워 삭제해 버리고 싶은 유혹도 들었으나,
그 글을 부끄러워하며 성찰을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딸의 임용시험의 결과가 사실은 딸의 지력과 노력의 부족,
나의 조력의 부족 때문이었는데, 괜스레 딸의 불운을 한탄하며,
나의 바램을 들어주지 않는 하느님을 원망하며 울었던 것과
나의 허영심과 이기심으로 괴로워 하였던 것 같아 숨고 싶었다.
나보다 더 힘들텐데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딸을 바라보며,
평소의 내 생각과 믿음이 이렇게 나약하였던가 부끄러웠다.
딸의 심신이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하였던 게 사실은 마음에도 없는 거짓이었던가 부끄러웠다.
지난 한 주일은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대화하면서 보냈다.
같이 시장을 보고, 요리도 하고, 산책을 하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딸이 중등학교 기간제 음악 교사, 음악학원 전담교사를 할지,
음악학원을 개원할지 등을 의논하며 오히려 마음이 설레였다.
나는 집에서 그동안 게을리 하였던 그림을 그렸고 피아노를 쳤다.
깊숙히 넣어 두었던 완성하지 못하였던 유화를 덧칠하며 수정하였고,
그동안 방법도 모르고 용기가 없어 시도하지 못하였던 추상화를
그렸는데 마음 가는대로 색을 혼합하고 붓질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시간제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하였으나,
인터뷰 장소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죄송하지만 취소하겠다고 하였다.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게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인 여유보다 시간의 여유를 선택하니 마음이 풍요로웠다.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 외국어 공부와 독서를 하면서 지냈다.
외국어 공부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으로 별 진전이 없지만,
치매예방에 도움이 되며 늦은 나이에도 공부를 한다는 게 즐거웠다.
나이 들수록 내가 정말 모르는게 너무 많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하였다.
새해에 도서관에서 여러권의 책을 빌려 왔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지음. 열림원 출판.)
죽음을 앞 둔 스승을 매주 화요일 방문하여 가르침을 받은 것을 정리한 책으로,
내가 깨닫지 못하였던 영성의 가르침을 노트를 하면서 읽는 즐거움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