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한 해를 돌아보며

푸른비3 2021. 12. 31. 16:13

지난 화요일 코로나 3차 접종을 한 후 근육통과 함께

약간의 미열이 있어 이틀 동안 낮잠을 잤더니

밤에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곧 발표될 딸 아라의 임용 시험 결과가 걱정이 되었다.

지난 해의 실패가 머리에 떠 올라 올 해는 꼭 합격하여

아라가 소망하는 중등 음악 교사의 꿈을 이루기를 바랬다.

 

내가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한데 딸은 얼마나 더 긴장이 될까?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비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을까? 

잠든 딸의 얼굴을 바라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한 해는 코로나의 팬데믹속에서 그냥 흘러 보낸 것 같았다.

아무 한 일도 없이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갔다.

돌아서면 한 주가 지나감에 스스로 흠칫흠칫 놀랍기만 하였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느끼는 시간의 길이는 나이에 반비례한다'

19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가 발안한 법칙처럼,

정말 시간의 흐름은 나이에 반비례하는 것 같았다.

 

이제 耳順을 넘긴 나이이니, 죽어도 그다지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당장 저승사자가 찾아 온다면,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못 따라가겠다고 앙탈을 부릴 것 같았다.

 

청춘의 시기가 인생의 황금시기라고 하였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청춘의 뒷안길에는 많은 번민과 갈등이 있었다.

오히려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업, 취업, 결혼, 육아의 과정을 겪어내고, 이제 취미생활을 하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많이 느끼고 많이 감동받으며 살고 싶은데,

아직 직업을 구하지 못한 딸이 가장 걱정거리였지만,

이번 임용시험에 합격만 한다면 정말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일기예보에 가장 추운 아침이라고 하였다.

한 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당에 가서 감사미사를 드리고 싶었다.

자고 있는 아라에게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더니 고맙게도 벌떡 일어났다.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기도하여야 하는데도, 그동안 나의 기도는

가족의 건강과 딸 아라의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기도로 흘렸다.

오늘 아침에도 나의 간절한 바램은 역시 딸의 합격 소식이었다.

 

아침 10시. 시험 합격 발표가 있었는데, 짐짓 태연하게 있었지만,

나는 결과가 정말 궁금하였다. 희비가 엇갈리는 시간.... 초조하였다.

딸의 기쁜 소식을 기대하였는데....아라가 "엄마 미안해....." 하였다.

 

"아니야. 우리 시험 결과에 상처 받지 않기로 약속했지?

우리가 간절히 바랬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

하느님이 다른 곳에 너를 쓰시려고 하는 모양이야." 하며 안아 주었다.

 

나는 그동안 딸이 최선을 다했으므로 그 결과에 순종하였다.

아라는 오빠가 권하였던 경남지역에 응시하였다면 합격권에 들 수

있었는데, 가까운 경기도 지역을 선택하였던 것을 아쉬워하였다.

 

아라는 한 달 전부터 친구들과 오늘, 1박 2일 여행을 약속하였다.

결과에 울지 않기로 약속하였지만 자꾸만 시선이 아라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서 우울해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다녀 오라고 격려하였다. 

 

지금 아라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플 것이다.

이번에 같이 공부한 지인들은 다시 내년에 도전하겠다고 한다고 하였지만,

나는 이제 딸에게 다른 직업을 찾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네 적성에 맞고 즐거운 일이라고 하였지만,

이 세상은 다양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세계라고 말해 주고 싶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나는 언제나 너를 믿고 사랑하고 지원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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