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새해 첫날 저녁에

푸른비3 2022. 1. 1. 20:35

어제,  딸의 중등교원 임용시험 발표가 있은 후

딸에게 하느님의 뜻이니 받아들이자고 위로 하였지만,

딸이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후 종일 우울하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처럼

자꾸 눈길이 딸의 빈방으로 가고 마음이 휑하였다.

딸이 벗어 놓은 옷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코끝이 시큰했다.

 

인생의 황금시기인 20대를 매일 책속에 묻혀 지냈던 딸.

지금처럼 공부에 전념하는 시기가 다시는 올 수 없을지도 모르니

최선을 다해라고 하였지만 그런 딸을 바라보는 마음은 답답하였다.

 

꽃피는 봄, 녹음 우거진 여름. 단풍드는 가을을 즐기며

청춘 남녀들이 데이트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우리 딸은 언제 남자친구와 만날 수 있을까 부러웠다.

 

어제 오후, 마산에 사는 아들이 퇴근하면서 전화를 하였다.

노트북과 기능성 의자를 사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공부하는

제 동생을 지원해 주었던 고마운 아들과 며느리였다.

 

결과를 알려주니 하는 수 없지....하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아들아 미안하다."

"뭐가 미안해?"

"아라도 어서 자립하여 네게 신세를 갚아야 하는데....."

"신세는 무슨?"

"그래도 미안해...." 나도 목이 메였다.

 

새해맞이 타종 카운트 다운에 들어가는 화면을 보며

딸에게  "새해축하해~!" 전화를 하였더니

곁의 친구들도 함께 "해피 뉴 이어~!" 합창을 하였다.

 

하루 밤 딸없이 혼자 자는 것도 이렇게 허전한데,

나는 남미, 중미를 여행한다고 여러 달 집을 비웠구나.

혼자서 공부하랴 밥해 먹으랴 얼마나 힘들었을까?

 

눈을 뜨니 새벽 4시 반. 조금 더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

일어나 머리도 감고 새벽미사 갈 준비를 하였다.

춥고 어두운 새벽길에는 차가운 바람만 스며 들었다.

 

자꾸만 흩어지는 생각들을 미사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느님,  우리 아라 10년이 넘도록, 매주 새벽 미사

반주 봉사를 하였는데, 이렇게 모른척 할 수 있어요?"

 

항의를 하고 싶었는데 문득 성경속의 의인 욥이 생각났다.

욥은 그 많은 재산과 자식들마저 다 하느님이 빼앗아 갔지만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나중에 더 많은 보상을 받지 않았는가?

 

성당에서 돌아와 집 앞 한강에 나가 해맞이를 하였다.

올해는 조금 더 겸손하고,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지. 결심했다.

 

창가에 서서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의 윤슬을 바라보았다.

거실 깊숙히 들어오는 햇빛을 등지고 앉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지음. 열림원 출판)을 읽었다.

 

저녁 해가 설핏 기울 무렵 아라는 저녁 6시 미사늦지 않게 귀가했다.

밝은 얼굴로 서둘러 성당으로 가는 아라를 보내고 기어이 나는 울고 말았다.

"우리 아라....저렇게 착한데....하느님. 정말 너무해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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