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아스카. 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유홍준 지음
창비 2013. 7.25.초판 1쇄 발행
2020. 9.20. 개정판 1쇄 발행
(2021. 2. 18~ 24)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규슈에 이어
일본편 2 아스카. 나라도 지은이와 함께 답사를 떠나는 마음으로 읽었다.
첫머리에 "아스카와 나라는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가는 답사의 핵심이며,
일본 고대문화의 하이라이트이다. 일본이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전 과정이
아스카에 남아 있고 고대국가를 탄생시킨 곳이 나라" 라고 적혀 있었다.
제 1부는 '가까운 아스카'에서 법륭사까지 답사한 내용으로 5세기 가야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전해 준 철, 말,도기 등의 문화, 6세기에 백제에서 건너간
도래인의 자취와 백제 왕실과의 교류에 대한 내용이었으며,
제 2부는 나라의 대표적인 사찰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주변의 문화유산도 소개하였다.
나라시대는 일본 고대문화의 정점이며, 이때가 되면 일본은 당나라문화를 직접
접하면서 더 국제적인 문화로 나아갔으며 일본문화의 독자인 모습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제 1부 아스카
한국인에게 일본 답사 일번지는 아스카인데 '가까운 아스카'는 오사카 가와치에 있으며
초기 도래인이 살던 곳으로 安宿으로 표기하였으며 한반도를 떠나 험한 여행 끝에
편안히 잠잘 곳을 마련했다는 뜻이라고 하였으며 금래인들이 이곳을 떠나 또다른
아스카를 찾아나섰으며 그들이 도착한 나라현의 아스카를 '먼 아스카'라고 한다고 하였다.
아스카 정권을 건설한 주역은 쇼토쿠(성덕) 태자와 백제계 도래인으로 추정되는 소가씨 일족이었다.
710년 야마토 왕조가 수도를 나라로 천도하면서 아스카의 영광은 끝났다.
일본의 지형은 들판과 산이 경계짓듯 구분이 확실한데, '가까운 아스카 박물관 근처의
'쇼토쿠 태자 묘'가 있는 마을의 풍광이 우리네 시골마을과 같이 친숙한 인상을 준다고 하였다.
일제의 황국사관은 여러가지 역사왜곡을 낳았는데 그중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에 '임나일본부'
설치했다는 설과 한반도로부터 받은 문명의 혜택을 '대륙문화가 한반도를 거쳐 건너왔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국사편찬위원회가 항의하며 시정을 요구하여 '전해졌다'로 바뀌었다.
지금도 역사 서술 전반에서 도래인이 일본 역사에 끼친 영향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왜와 백제와 형제나라로 지내면서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나게 된 배경, 4세기 중엽
아직기와 왕인박사가 말과 한자를 전해 준 사실. 가야의 철과 가야 도기가 일본에 미친 영향,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가까운 아스카 박물관, 아스카와 오사카를
가르는 가쓰라기산. 도래인 신사인 오미아시 신사, 일본 최초의 절인 아스카사,
고구려와 백제의 분위기와 같은 다카마쓰 고분. 도래인의 고향인 히노쿠마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도래인이란 당시 한반도의 정세변화로 삶의 토대를 잃은 이민 집단인데
야마토 정권은 그들이 문명을 지니고 있었기에 받아 들였고,
그들의 기술로써 아스카시대의 개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중국인, 페르시아인도 있었지만 그 대부분이 한반도계 도래인이었다.
'이처럼 기술과 문명으로 도래인들은 야마토 정권의 대접을 받으며 살았다.
대접받는 만큼 실력을 더 발휘하였다. 그들은 떠나온 고향에서 발휘하지 못했던 기술을
여기에서 오히려 맘껏 펼칠 수 있었다. 야마토의 왜가 일본이라는 고대국가로 나아가는데
도래인들의 공은 거의 절대적이었다.'(68)
쇼토쿠 태자의 탄생지인 귤사, 쇼토쿠 태자의 일생, 선악의 이면석, 아스카 강변의 천원사터,
아스카사의 창건, 아스카사의 가람배치, 605년에 주조된 높이 2.75미터의 아스카 대불,
'을사의 변'과 소가씨의 몰락과 아스카시대의 종말, 아스카사 서쪽의 아마카시 언덕.
법륭사의 재건과 법륭사의 어제와 오늘, 법륭사의 소나무 가로수길과 남대문, 중문, 오중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금당, 서원가람의 회랑,금당의 청동석가삼존상 등에 대한
설명과 대보장전 박물관의 보물 백제관음상, 옥중주자, 구면관음상과 몽위관음상,
몽전의 구세관음상, 중궁사의 목조반가사유상 등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했는데
한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의 역사와 보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너무 전문적인 내용인 것 같아 금 부담스러운 내용도 많았다.)
제 2부 나라
고도 나라는 너무 볼거리가 많아 한두 차례로 그 진수를 다 맛볼 수는 없다.
나라 시내의 서쪽 니시노쿄의 당초제사와 약사사, 이카루가의 법륭사, 후지노키고분 답사.
오래된 차실인 자광원에서 전통 말차 체험. 메이지시대 정원 의수원과 영락 미술관,
나라국립박물관, 우리미술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야마토 문화관을 관람하기를 권하였다.
헤이안시대의 절인 실생사는 한국의 산사처럼 깊숙한 계곡을 따라 들어간 산사이며,
유명한 도래인 승려 행기스님이 창건한 정유리사는 아름다운 연못이 환상적이며
법당안에 우람한 아홉 불상이 점호를 받는 열지어 앉아 있는 구체아미타여래좌상,
정유리사 뒷산 너머에 있는 암선사, 요시노의 사쿠라의 아름다움에 대한 글이었다.
자연을 대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태도의 차이에 대하여
"우리는 벚꽃길을 걸어가면서 꽃잎을 바라보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면서
벚꽃과 하나가 되는 것을 제멋으로 느끼는데, 일본인들은 요시노의 사쿠라처럼
멀리서 구경하거나 이름난 정원의 연못에 비치는 아련한 모습을 더 즐긴다.
우리는 자연과 뒤엉켜 하나가 되어야 직정이 풀리고, 일본인들은 그것을
관조하고 또 관조한다."(165) 라고 적었다.
일본의 정원과 한국의 정원에 대한 차이에 대하여
"자연을 대하는 두 국민성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일본 정원의 나무는 잔가지까지
인공의 자취가 드러나도록 매만져야 하고, 한국 정원에서는 본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 일본의 정원에서 인공을 가하지 않은 것은
불성실로 비치고, 한국의 정원에서 사람의 손으로 다듬은 것은 어색하게 느껴진다."(170)
라고 적어 놓았는데 나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한국과 일본 정원의 차이점이었다.
나라의 헤이조쿄와 남도 7사, 메이지시대의 정원 의수원, 왕실의 유물 창고 정창원,
덴리도서관의 몽유도원도,고려 불화 양류관음도, 안견의 연사모종도,
고려 청자 구룡형 정병, 흑유 표주박모양의 병을 소장한 야마토 문화관,
아스카시대. 하쿠호시대, 덴표시대 등의 시대 구분에 대한 글과, 나라 공원안의 흥복사,
산전사 청동불두상. 흥복사의 팔부중상.십대제자상.인왕상 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나라를 상징하는 문화유산 동대사의 대불전의 청동대불, 정창원과 맷돌문, 가라쿠니 신사를
거쳐 이월당과 삼월당의 건축물에 대한 설명, 삼월당안에 봉안된 16구의 불상,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한다는 불공견삭관음, 일광, 월광보살상. 동대사의 부속 건물들,
동대사의 복원에 얽힌 이야기, '얼어붙은 음악'같다는 찬사를 받은 약사사 동탑.
당나라 감진스님에 대한 이야기와 감진 화상의 초상조각상, 사방의 승려가 모이는 당초제사,
당풍의 청동약사삼존상,견당사를 보내 당나라의 문화를 받아 들인 역사적인 사실등에
대한 글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현장에서 실물을 대하고 바라보는 듯 하였다.
불상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아지 못하고 그냥 청동불상, 목조불상, 철조불상
등 재료에 대한 불상만 알았는데 이 책을 통하여 석고와 진흙으로 빚은 소조불,
흙으로 불상을 만든 다음 그 위에 마포를 덧발라 씌우고 이것이 마르면 속에
흙을 긁어내고 목심을 세운 후 채색하여 만드는 탈활건칠조법은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며,
수정도 할 수 있어 인체 조각들에 사용하였으며 김진스님 초상도 이 기법을 사용했다.
당초제사의 금당에 대한 설명에 이어,
"일본 건물은 우리의 것과 달리 곡선보다 직선이 많고 하늘로 날갯짓하는 것이 아니라
대지에 낮게 낮게 려앉은 느낌을 준다."(289)라고 하였다.
흥복사 국보관의 조각들을 보고 일본의 불상 조각의 뛰어난 점에 대한 놀라움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시키는 아수라상, 앳된 얼굴의 사갈라상,
십대제자상 중 수보리와 라후라 상, 사후의 미륵의 좌우 협신상 세찬과 무착 등의
조각상에 대한 설명은 나에게도 불상 조각에 대한 심미안을 키워 주는 것 같았다.
나는 1999년 나라, 오사카, 교토를 여행하였으며 그것이 일본의 첫번째 여행이었다.
5박 6일의 여행사의 페키지 상품으로 다녀온 일본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앞선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잘 조성된 관광지보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행동과 모습에서 과연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도로를 달리면서 전혀 클락션을 울리지 않는 운전자들, 마치 하이타이로
세척을 한 듯한 깨끗한 보도블록, 주택가의 현관앞에 내어 놓은 화분과
햐얀 레이스가 나풀거리는 창가의 커튼, 백화점 주차장에 세워놓은 자전거,
살짝만 몸을 스쳐도 "스미마셍~!" 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어린이들,
긴 줄앞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들,
기념품가게의 점원들의 친절한 태도 등 모두 너무나 인상 깊었다.
일본의 아스카. 나라와 교토는 우리나라의 부여, 공주, 경주의 분위기가 났으며
지금 기억에 남은 것은 동대사 앞의 사슴 무리와 금각사, 은각사, 정원 정도일 뿐이다.
나는 일본의 서울인 토쿄와 오사카가 보고 싶어 일본 여행병이 생길 것 같았는데,
기회가 되어 토쿄와 오사카를 여행하였으며 일본 안에서 크루즈 여행도 하였다.
그 후 딸과 함께 후쿠오카 지역을 여행하였으며 남편과 홋카이도를 여행하였고,
미술 동호회원들과 일본의 미술관 투어를 다녀왔고, 사진 동호회원들과 아오이
단풍구경을 다녀왔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아 기회가 되면 여행하고 싶다.
지난해 일본과의 갈등으로 당분간 일본여행은 가기가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하루 빨리 관계가 회복되어 마음 편하게 일본을 여행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유홍준의 <일본 답사기>를 들고 가서 하나씩 답사를 하면 참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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