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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시 모음

푸른비3 2007. 11. 10. 03:28
11월의 노래 / 김용택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 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롬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와 닿습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납니다.

"가을이 아름다운 건"
              이해인



구절초, 마타리,
쑥부쟁이꽃으로
피었기 때문이다

그리운 이름이 그리운 얼굴이
봄 여름 헤매던 연서들이
가난한 가슴에 닿아
열매로 익어갈 때
몇 몇은 하마 낙엽이 되었으리라

온종일 망설이던 수화기를 들면
긴 신호음으로 달려온 그대를
보내듯 끊었던 애잔함

뒹구는 낙엽이여
아, 가슴의 현이란 현 모두 열어
귀뚜리의 선율로 울어도 좋을

가을이 진정 아름다운 건
눈물 가득 고여오는
그대가 있기 때문이리 


 
11월의 나무처럼 / 이해인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에요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 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11월 /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은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