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한가위 달빛이

푸른비3 2007. 9. 26. 06:00

 

 

 

토요일부터 맑은 가을 하늘을 볼 수 있으리라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이곳 내가 사는 마산은

추석 전날까지 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듯

끊임없이 비가 내렸다.

 

다행히 추석날 아침은 가을 햇살이 동쪽하늘로

비쭉히 솟아올라 어찌나 반가운지....

건너편 아파트동 벽에 선명하게 반사되는

햇빛에 반가움, 감사함을 느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차례를 올리고

남편은 아들과 딸을 데리고

고향으로 떠나고 나혼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그 여유, 느긋함.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하였지만)

 

제기와 병풍등을 정리하고

생선찐 찜솥이며 설거지, 청소를 하고나니

시계가 정오를 넘어셨다.

이제부터 정말 나의 명절인 셈이다.

 

누워서 쳐다보는 파아란 초가을의 하늘.

느릿느릿 흐르는 흰구름 바라보니

어느덧 나도 그위로 흐르는 듯.

창으로만 바라보는 구름이 아쉬워

아, 그냥 나도 따라갈껄....

 

황금빛으로 물드는 들판도 보고

길가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도 보고,

차창으로 흐르는 구름도 볼 수 있을 텐데....

 

추석 보름달이 5시 반무렵 뜰거라고 하여

몇번이나 창밖을 바라 볼 적 걸려온

영국에 사는 유혜님의 전화.

 

거의 1시간 가까이 통화를 하였다.

모국어가 얼마나 그리울까? 싶어

비싼 통화료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환경이 변하여도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입맛이라,

금방 솥에서 찐 송편이 가장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통화를 끝내고 다시 창문을 열어보니

어느새 한팔 길이쯤 올라온 보름달.

 

어머나, 너 언제 올라왔니?

미안해, 너 떠 올라 오는 것 보고 싶었는데....

창밖으로 팔을 내밀어 달에게 손 흔들어 주었다.

 

저녁 설거지 마치고

좀 더 달님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집앞 학교 운동장으로 나갔다.

 

고루고루 뿌려주는 저 달빛.

편안한 둥근 얼굴, 넉넉함.

달빛에 푹 몸 담그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득 잠을 깨어 하늘을 바라 볼 적마다

달님은 여전히 나의 창가를 비추고 있었다.

점점 서쪽으로 자리를 옮기기는 하였지만....

 

잠자리에 누워서

좋아하는 황진이의 시

'소요월야사하사'를 암송해 보았다.

(거의 한달이나 걸려 외운 시)

 

   *        *        *

 

 

 

 

蕭寥月夜思何事(소요월야사하사)
소슬한 달밤이면 무슨 생각 하오신지

寢宵轉輾夢似樣(침소전전몽사양)
뒤척이는 잠자리는 꿈인 듯 생시인 듯

問君有時錄忘言(문군유시녹망언)
님이시여 때로는 제가 드린 말도 적어보시는지

此世緣分果信良(차세연분과신량)
이승에서 맺은 연분 믿어도 좋을지요

悠悠憶君疑未盡(유유억군의미진)
멀리 계신 님 생각, 끝없어도 모자란 듯

日日念我幾許量(일일염아기허량)
하루 하루 이 몸을 그리워는 하시나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
바쁜 중 돌이켜 생각함이라 괴로움일까 즐거움일까

喧喧如雀情如常(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지저귀어도 제게 향하신 정은 여전하온지요


-황진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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