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이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날 즈음에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 여위고 한동안 마음의 기둥이 허물어진듯
어찌나 허전하든지
임신을 결심하였고
그래서 늦동이 아라가 태어났다.
40에 다시 육아의 길로 접어 들어
나는 학원운영과 겸하여
정말 다른곳에 눈 돌릴 여유없이
40대를 보낸 셈이다.
자연히 아이를 두고
며칠씩 집을 비워야 하는
해외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시기에
나는 처음 중국을 결심하였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라는
나를 보내고 몇시간이나
눈물 흘렸다는 이야기를
뒤늦게야 듣고
나도 어찌나 마음이 아프든지....
그 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3학년이 될 무렵
다시 내 마음은 가까운 일본이라는
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그해 5월에 일본 나라, 교또, 고베, 오사카
등을 여행하고 왔는데
일본의 수도 도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어
다시 남편에게 애걸 하다시피 하여
가을에 도교를 다녀오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는 듯 하였다.
그 후
일년에 두번은 꼭 나가고 싶다고
남편에게 부탁하였고
그게 오늘까지 암암리에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다.
내가 나갈적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고 남편은 협박하지만
나는 이제 그 말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다른 것은 양보하여도
두번씩 가는 해외여행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이번 여행은
중국의 실크로드이기에
중1년인 딸 아라를 꼭 데리고 가고 싶었다.
아라는
덥고 환경이 열악한
돈황, 투르판을 가는 것을
마음 내켜 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는 곳의
역사적인 배경과 여러가지 정보도 읽게 해 주면서
여행은 꼭 휴식을 취하는 것만이
아니다면서
앞으로 너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귀중한 정신적인 재산, 체험이 될 것
이라고 설명하였다.
여행 경비는
학원을 그만두면서
나만을 위한 여행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남겨둔 곳에서 출금하였고
남편에게 1백만원
보조를 받아 충당하였다.
(남편은 내통장으로 월급을 입금하지 않고
월 생활비를 항상 빠듯하게 준다.ㅎㅎ)
아침에 나보다 먼저
출근하는 남편을 껴안고
여보, 고마워, 잘 다녀올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손을 흔들며 작별을 하였다.
며칠동안
남편은 마누라의 간섭없는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어쩌면 가끔은 옆자리가
허전할 때도 있겠지.....(내 착각일까?)
* * *
'군주의 사냥'
군주는 수시로 사냥하러 나감으로써
몸을 단련하고, 나라의 지형을 익혀야 한다.
즉 전국의 산, 골짜기, 평야, 강, 늪의 형세, 특성 등을
자세히 연구하고 숙지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얻은 지식은
크게 두 가지 효용이 있다. 하나는 국토를 잘 알게 됨으로써
그것을 지키는 방도를 더 잘 세울 수 있다. 또 하나는
자국 영토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덕분에 다른
나라의 지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유필화의《CEO, 고전에서 답을 찾다》중에서 -
* 살림을 하는 사람들도 수시로 시장을
돌아봐야 좋은 물건을 좋은 값에 살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군주의 사냥'은 시장을 돌아보는것, 세상을 돌아보는 것,
다름아닌 여행입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마음의 영토'를
넓히는 여행... 눈을 최대한 밖으로 돌려야 새로운 영토가
보이고, 보아야 길을 낼 수 있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