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잎 새 달 - 물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 돋우는 달
[장영희의 영미시 봄산책 ⑩] 황무지
▲ T.S 엘리엇
| | The Waste Land
(T. S. Eliot(1888-1965))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황무지
(T. S. 엘리엇)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
‘4월은 잔인한 달’--이맘때쯤 되면 으레 한두 번쯤 방송에서 듣는 말입니다. 유명한 〈황무지〉의 시작 부분이지요. 그러나 이 부분은 자주 인용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흡족지 않은 4월의 경험을 토로하는 차원이 아니라, 계절의 순환 속에서 다시 봄이 되어 버거운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망각의 눈’에 싸인 겨울은 차라리 평화로웠지만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은 그래서 잔인합니다.
대학시절 이 시를 처음 읽을 때는 정말 황무지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함께’의 삶이었고, 마음은 씨앗 하나만 심어도 금세 싹트는 푸른 벌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창한 봄이 되어도 생명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된 마음이 허허롭기 짝이 없습니다.
장영희·서강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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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영문학에 가장 영향을 준 훌륭한 소설과 시 작품을 각각 손꼽는다면 같은 해인 1922년 발표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841)의 『율리시즈』(Ulyssess) 와 티 에스 엘리엇(T.S. Eliot: 1888~1965)의 장편시인『황무지』(The Waste Land)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 귀화하여 시인, 극작가, 문학평론가, 편집인으로 살았던 엘리엇은『황무지』에서 제 1차 세계대전 후의 유럽의 황폐한 모습, 즉 20세기 현대 문명에 갇혀 생명의 기운을 잃은 서구인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총 434행의 이 시는 <죽은 자의 매장><장기 놀이><불의 설교><익사><천둥이 한 말> 등 5부로 되어 있다. 수많은 고대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35명에 달하는 고전 작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이를 온갖 문학적 기법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한 마디로 현대인의 ‘죽음 속의 삶’(living death) 혹은 ‘삶 속의 죽음’(death in living)의 여러 형상들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해답을 암시적으로 제시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인간의 삶의 실체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20세기 현대인들은 신이 원래 인간에게 내린 축복을 저버렸고,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고 발전시켜온 문명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들 세상을 생명이 서식 할 수 없는 불모의 땅인 황무지로 만들었다. 따라서 현대인의 삶은 살아 있으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엘리엇은『황무지』의 첫 부분인 제사(epigraph)에서 쿠마에(Cumae)의 무녀 시빌(Sybil)의 이야기를 인용함으로써 그러한 현대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퍼온글)
* * *
월요일부터 나는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하루 전날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까지 마치고
돌아와 내 몸에는 원기가 가득 흐를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침에 유화 수업이 있는 날이라
집안일 대충 끝내고 부랴부랴 학교로 달려갔다.
하얀 벚꽃잎이 화르르~ 떨어지고
하늘은 심한 황사로 부옇게 흐려있었다.
얼굴을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바람,
코끝에 스며드는 달콤한 꽃향기.
연녹색 새순이 얼굴 내미는 단풍나무들.
이 모든 것에 눈인사 나누며
계단을 내려가니 벌써 몇명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음악을 켜고 작업복을 걸치고
따뜻한 차 한잔을 들고
이젤앞에 앉았지만
얼른 붓이 잡아지지 않았다.
그림속의 꽃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죽은 그림을 그릴게 아니라
창밖의 한창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고 싶었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안고 학교앞 화단으로 나가 보았다.
동백꽃, 앵두꽃, 제비꽃, 봄까치, 민들레가 한창이었다.
싱싱한 초록잎속의 눈부신 노란 민들레를 보는 순간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을까?
풀밭에 주저앉아 얼굴을 두 무릎속에 파묻고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어김없이 자연은 소생하려고 하는데
난 무엇을 소생시켜야 하나?
내 가슴은 부드러운 봄비와 바람에도
무엇하나 꺼내어 새싹을 틔울 것 없구나.
앙상한 빈 가지만 남아 있구나.
이 가지도 언젠가는 다 으스러져 없어지겠지?
다 버리고 가야 할 것을....
왜 이렇게 놓치 못하고
꼭 붙잡고 가고 싶어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