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터키(7-안탈랴)

푸른비3 2006. 6. 11. 08:43

6월 3일.

 인구 70만의 휴양도시 안탈랴는 200만년전 지중해가 융기한 지역이라고 한다.

페르가뭄왕 안탈로스2세가 이 도시를 건설하였고, 그의 이름을 따서

안탈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를 지중해 해안에 풀어놓자, 모두 오~지중해!

감탄을 쏟으며 해변으로 달려갔다.

이곳 안탈랴는 유럽인들이 즐겨찾는 휴양지이기에

여름 한철에만 인구가 수없이 불어나 방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해변에는 모래사장인 아닌 조그만 조약돌 해변이었다.

그곳의 보석처럼 조그맣고 이쁜 돌멩이를 주워 백속에 넣었다.

다음에 지중해의 파란 물이 그리운 날 이 조그만 돌을 꺼내 보고 싶어서.

 

유도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버들 유, 복숭아도. 이름처럼 아름다운 꽃이었다.

이곳에서 하얀 유도화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지중해의 유람선을 타보기로 하였다.

일정에 없는 상품이었기에 일인당 20$을 갹출하여서

전세 유람선을 타기로 하였다.

 

에메랄드 물빛이었는데 해안의 단구가 멋지다고 하였지만,

내눈에는붉고 묽은 밀가루 반죽이 죽죽 쳐져 내린 느낌이었다.

일명 '라라폭포'라고 불려지는 장관을 보고 배를 되돌렸다.

 

배타기 전에 보았던 구시가지가 더욱 호감이 가고 아름다웠다.

그곳에 우리가 즐겨읽은 동화책 '팔려간 당나귀'를 쓴

나스레띤 호자(선생님)의 나귀를 거꾸로 타고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곳이 그 호자의 출생지인 모양이었다.

고대 로마의 번영을 나타내는 하드리안문을 보고

좁은 골몰길이 이어진 구시가지는 참 정겹기만 하였다.

 

듀렌폭포도 일정에 없었지만,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가 보았다.

원시림은 마치 타쟌이 불쑥 "아아아~'외치며 나타날 것 같았다.

옥색의 맑은물은 미네랄이 풍부하여 그대로 식수로 사용해도 될 정도라고 했다.

 

폭포에서 멀리 떨어져 기념사진을 찍는데도

안개같은 포말이 얼굴에 떨어져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듀렌 폭포를 뒤로하고 다음 여행지 파묵칼레로 향하였다.

몸은 피곤하였지만, 마음은 또다시 파묵칼레에 대한 호기심으로 벅차기만 하였다.

 

 지중해에 발을 담그고 환호성을 지른 우리들.

해안에는 자잘한 보석같은 조약돌들.

 

 해가 기울기 시작하여 서서히 밤을 맞이하는 지중해.

 

 곧 밤의 콘서트가 시작될 모양이다. 아기를 조율하고 있는 거리의 악사들.

 

 유도화가 아름답게 핀 벤치에 앉아서.7공주중의 세분과 함께.

 

 석양에 물든 안탈랴 마을.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현지인 가이드 뱃심. 36살의 노총각이라고 하였다.

 

 안탈랴의 구시가지. 종려나무가 무성히 자라는 곳에서 '꼬끼오~" 아침을 알리는 닭소리가

울릴듯 한 마을이엇다.

 

 터키석 보석으로 치장한 이블리 미나레.

 

 

 구시가지안의 정겨운 골목안 풍경.

 

해안 단구위에 즐비한 아파트단지.

 

 라라폭포앞에서 즐거운 한때. 곁의 사람들은 광주에서 올라온 7광주중의 3사람.

 

 라라폭포.

 

 유람선들이 즐비한 구시가지.

 

 멀리 안탈랴의 상징인 이블린탑이 보이는 곳에서.

 

 시대를 거슬러 간듯한 구시가지. 이곳 상점에서 난 "핸드 메이드"라고 자랑하는

가짜 터키 목걸이를 단돈 5$을 주고 샀다.

 

 로마의 번성을 말해주는 하드리안 문. 아래는 마차가 지나다닌 움푹 패인 흔적이 있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하드리안문의 문양. 도리아식 건축.

 

 옥을 풀어 놓은 듯한 맑은 듀렌폭포아래의 물.

 

 포말이 얼굴에 가득 날아드는 듀렌폭포앞에서. 뒤의 분홍빛깔의 옷을 입은 여인은

우리일행인 7공주중의 부산 의사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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