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경희궁의 늦가을

푸른비3 2025. 11. 24. 10:57

2025. 11. 22. 토

 

가을을 떠나 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경희궁을 찾았다.

경희궁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조선 5대 궁궐 중 하나로 도성 서족에 위치하여 '서궐'.

궁궐 동쪽 고개 이름을 따서 '야주개 대궐' 별칭으로 불렀다.

 

경희궁은 광해군 1617년에 짓기 시작하여 1620년에 완성하엿다.

처음에는 경덕궁으로 불렀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뎍과 발음이 같아

경희궁으로 변경하였으며 대지의 형세를 반영한 특이한 형태의 궁궐이다.

원래의 규모는 약 23만 평방미터였으나 지금은 그 절반 정도의 크기이다.

 

오후 3시 약간 서쪽으로 비껴간 가을 햇살이 부드럽고 온화한 빛을 

비추는 시각에 거의 끝무렵인 단풍을 천천히 감상하리라 생각하고

경희궁 흥화문을 들어가 말쑥한 마당 곁의 단풍을 감상하며 올랐더니 

숭정문 앞에 때마침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무리가 있어 나도 합석하였다.

 

경희궁에는 인조에서 철종까지 10명의 왕이 머물렀다.

영조가 가장 오래 머물렀으며 숙종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승하하였다.

숭정전은 정전으로 정사를 논하는 곳으로 사용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이곳은 상징의 장소이고 뒷편의 편전에서 집무하였다고 하였다.

 

숙종과 헌종 소현세자의 관례. 경종과 정조의 즉위. 

숙종. 영조, 순조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왕을 비롯하여 왕비와 후궁 등의 생활한 일상공간이며,

인현왕후. 희빈 장씨. 혜경공 홍씨도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몰랐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용마루와 잡상에 관한 이야기. 현장법사와 서유기.

일제 강점기에 건물 대부분이 헐리웠으며 기둥등이 동국대.

장충당 이등박문의 신사 건립으로 흩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령전 뒤의 비스듬한 암반위로 올라가니 커다란 바위가 서있고

그 아래 작은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었다.

왕의 기운을 받는 왕암으로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짓게 되었으며,

상서로운 바위라고 하여 숙종 때 서암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일본 강정기에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군대가

방공호로 사용하였던 곳을 안내해 주었는데 벽의 두께가 3미터

내부의 길이가 100미터가 넘는다고 하여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가을 낙엽을 밟고 싶어 왔다가 역사공부도 한 늦은 가을의 나들이였다.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단풍길.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

 

올해의 마지막 단풍일듯.

 

숭정문 안의 숭정전.

 

정전인 숭정전은 1618년 광해군때 건립하였다.

자정문.

 

태령전 용마루에 날아온 까치

 

자정전. 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열었던 곳.

서암.

 

태령전. 영조의 어진 보관 장소.

현판의 글씨는 석봉 한호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영조 어진.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

 

방공호.

 

서울역사박물관 뒷편의 단풍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