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반복의 힘

중국 명나라 때, 여진족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증축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만리장성 동쪽 끝에 있는 산해관(山海关)은
많이 허물어져서 복원이 시급한
상태였습니다.
그곳에는 '천하제일관(天下第一关)'이라는
유명한 현판이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편액 중 '일(一)'자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려져 버린 상태였습니다.
황제는 산해관의 현판을 원래 모습대로
복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서예 명인들을
모았습니다.
많은 서예가가 모여 글씨를 써보았지만,
그들은 모두 '천하제일관'의 글씨를
원래의 느낌처럼 쓰지 못했습니다.
황제는 누구든 글자에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후한 상금을 내리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선발된 사람은 산해관 옆 객잔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유명하지도,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던 관료들은 자신들 앞에서
글씨를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준비된 붓을 휙 집어던지고
옆에 있던 걸레를 들어 먹물에 적신 뒤,
'일'자를 그렸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그의 손놀림에 놀랐고
원래의 강하고 뚜렷한 형태 그대로 되살아 난
'일'자의 형태에 놀랐습니다.
숨죽여 지켜보던 한 관료가 궁금해하며
그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서예를 공부했는가?"
그러자 그는 30년 동안,
이 객잔에서 매일 탁자를 닦을 때마다 현판을 봤고,
'천하제일관' 글자를 손가락 혹은 행주로
따라 그리면서 익혔다고 했습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 꾸준한 노력이
결국 큰 성과를 이루어낸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성공은 작은 노력이 반복되는 데서 온다.
– 로버트 콜리어 –
선생님의 마지막 숙제

숙제를 마치고,
어떤 친구는 내심 높은 점수를 기대하고 있을 거야.
또 어떤 친구는 대충 해놓고 꾸중은 듣지 않을까
넘치는 걱정을 하고 있겠지.
너희들의 반응은 언제나 한결같았지만,
그런 너희를 바라보는 내 심장은 늘 다르게 반응했단다.
사랑으로 두근거렸고, 뿌듯함으로 정신없이
뛰기도 했어.
이 숙제를 낼 때쯤 내 심장은 더 이상 뛰고 있지 않겠지.
너희 곁이 아닌 조금 높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테니까.
너무 빨리 가져오지는 마.
너희가 지금 내 나이보다 곱절 아니
세 곱절은 더 많아졌을 때
그때, 숙제를 가지고 와줬으면 좋겠구나.
"그 시절 함께해서 행복했어요!"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얘들아, 많이 사랑한다.
그리고 함께여서 정말 행복했다.

일본의 어느 학교에서 지병으로 돌아가신
선생님이 남긴 마지막 숙제였습니다.
진정한 친구 한 명만 만들 수 있으면
인생의 반을 성공한 셈이라는 말이 있지만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은사 한 분만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온전히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나는 나의 스승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벗 삼은 친구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내 제자들에게선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 탈무드 –
사랑으로 온전히 채워주자

가족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되어도 사랑을 나누는 사람과 함께 라면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선택 앞에 선 가족들에게는
'가족'이라는 단어는 상처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혼 후, 가족 구성원들은 종종 자신을
결핍된 존재처럼 느끼게 됩니다.
부모 중 한 사람의 부재가
마치 그 사람 자체의 결핍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인식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선은 이혼을 겪은 자녀들에게,
특히 청소년기에 있는 자녀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자녀는 부모의 갈등과 이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며,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내가 뭔가 할 수 있었더라면..."
자녀들의 이러한 생각은
마음에 죄책감과 좌절감을 남기게 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물론 이혼 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역할이
온전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구성원의 결핍보다
사랑의 결핍이 더 큰 문제입니다.
상실감을 다른 무언가로 채우려 애쓰기보다는
그 자리를 더 큰 사랑으로 채워간다면
지금의 모습도 충분히 온전한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의 모습은 예전보다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하지만, 네모난 사랑 세모난 사랑이 있는 것처럼
그 안에 사랑으로 온전히 채워져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내 안에 결핍만 바라보지 말고,
남아 있는 사랑을 지켜보고 키워가는 것이
진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멋진 일은 가족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 조지 맥도널드 -
실수해도 괜찮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실수를 하게 됩니다.
어떤 실수는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들고,
어떤 실수는 시간이 지나 웃으며 넘길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실수들은 결국,
우리를 더 신중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부모님 세대도 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자리에 서 계십니다.
그래서 자녀가 실수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러한 걱정과 염려는
때로는 자녀의 삶에 지나친 개입이나 과보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내 자녀들만큼은 나처럼 힘든 길을
겪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과
더 나은 길을 열어주고 싶은 바람이 오히려 독이 되어,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을 기회를
막을 수 있습니다.
실수와 실패는 아이가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물감을 풀어 그림을 그리듯
아이의 하루도 매일 새롭게 그려집니다.
"비가 오면 빗방울 소리, 해가 뜨면 반짝이는 햇살"처럼
실수와 배움도 모두 아이의 소중한 색이 됩니다.
아이가 잠시 길을 잃더라도
스스로 방향을 찾도록 지켜봐 주세요.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의 마음속에는
실패도 껴안을 수 있는 용기와
그 안에서 피어나는 지혜도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는 많은 실수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실수들은 결국 새로워지고 창조적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스티브 잡스 –
오산학교의 시작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에 힘썼던 대표적인 학교인 오산학교.
오산학교를 설립한 남강 이승훈 선생은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평민 출신으로 가난과 차별 속에서 자랐지만
사업 수완이 좋았던 그는 배운 놋그릇 기술을 통해
유기 상회를 만들어 오늘날의 돈으로
약 700억 원의 자본금을 가진
회사로 키웠습니다.
막대한 부를 모은 이승훈 선생은 양반 신분을
돈 주고 사며 부와 명예 모두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들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은
그의 삶을 180도 바꿨습니다.
"나라가 없는데 내 집이 있으면 뭐 하나.
혼을 빼앗겼는데 이 몸이 호의호식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말을 들은 순간 이승훈 선생은
큰 감명과 함께 교육을 통해 후대를 양성해야
이 나라에 미래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상투를 잘라내며
독립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평안도에 오산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승훈 선생은 평소에도 학생들 중
조국을 광복시킬 영웅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하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죽기 직전까지도 자기의 유골을 해부해
생리학 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의 학습에 이용하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슈퍼맨 아빠,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53번의 항암치료를 견디며 마지막 순간까지
딸 지우(가명)와 아들 지훈이(가명)의 곁을 지키던
슈퍼맨 아빠 故 김태진 씨를 기억하시나요?
따뜻한 하루는,
누구보다 강하고 따뜻했던 슈퍼맨 아빠,
故 김태진 씨의 마지막 부탁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약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들을 꾸준히
후원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염치없지만,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만
부디 돌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된 지훈이가
따뜻한 하루를 찾아왔습니다.
사실 김태진 씨가 세상을 떠나기
수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 문제로 인해 김태진 씨는 이혼을 선택했고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그때,
복통으로 인해 별생각 없이 찾았던 병원에서
때아닌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계속했지만
결국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암세포는 삽시간에
김태진 씨의 몸을 잠식해 수술조차 받을 수 없는
4기 암으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모진 고통을 감내하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했던 슈퍼맨 아빠, 김태진 씨...
그러던 그에게 시한부 선고는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습니다.
김태진 씨는 따뜻한 하루를 통해서라도
아이들을 향한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립할 때까지만 아이들을 보살펴달라 부탁했고,
그렇게 따뜻한 하루는 아이들의 또 다른 슈퍼맨 아빠가
되기로 약속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지훈이는
이제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이전과는 달리
제법 의젓한 모습이었습니다.
변성기가 채 지나지 않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지훈이를 보고 있자니,
바르고 의젓하게 잘 자란 지훈이가 너무나
대견하게 느껴졌습니다.
지훈이는 반에서 2등을 차지할 정도로
공부도 착실히 잘하고 있고
무엇보다 제과제빵에 흥미와 소질을 보여
아직 중학생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제빵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답니다.
사실 지훈이의 아빠, 김태진 씨도
살아계실 적에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셨을 정도로
남다른 요리 솜씨와 손재주를 지니고 계셨는데요.
역시 그 유전자는 어디 안 가나 봅니다. ^^
지훈이에게는 아주 든든한 누나가 있는데
누나는 일찌감치 노래에 재능과 흥미를 보여서
현재는 대학교 실용음악과에 다니면서,
열심히 노래도 배우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착실히 살고 있답니다.
이제 자기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으니
자기보다는 동생을 더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추억이 있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남편과 나는 성당에서 만났다.
그는 수녀가 되려던 나에게 삭발까지 하고 구애를 했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결혼이었다.
변변한 직장이 없던 그를 우리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는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한 일인지 알려준 사람이었다.
따뜻한 봄날, 우리는 결혼했고 곧 영훈이를 낳았다.
이어 둘째 규빈이도 생겼다.
임신 3개월째, 가장 행복해야 할 때
갑자기 남편이 쓰러졌다.
첫 번째 발병이었다.
친정 식구들은 유산을 권했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고생할
막내딸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고집을 부려 규빈이를 낳았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남편이 완쾌 판정을 받은 것이다.
왼쪽 대장을 상당 부분 잘라내고 그 힘들다는
항암 치료를 견디며 남편은 완치되었다.
남편에게 가족은 힘이었고,
버티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암은 또다시 남편을 찾아왔다.
이미 복부 림프절까지 전이되었지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암은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었다.
CT 촬영을 하고 병실로 돌아온 남편에게
"힘내"라고 말했지만 그를 위로할 수 없었다.
"아빠! 왜 목소리가 작아?"
"병실이라 그렇지."
"아빠?"
"응, 왜?"
"아파요?"
"아니."
"거짓말, 아프면서..."
남편이 다시 입원한 후 아이들도 뭔가를 느끼는지
부쩍 아빠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
그리고 병원에 갈 때마다 자꾸 우는 규빈이와
나는 약속을 해야 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기.'

지금까지 나는 남편에게 나아질 것이라고만 말했다.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남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와 시동생은 어렵게 입을 떼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복도를 산책했다.
갑자기 남편이 밖으로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밖엔 너무 춥다고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날씨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생각해 보니 입원 후 남편은 외출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가 지상에서 만나는 마지막 바람, 햇살이었다.
남편은 천천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편은 더 늦기 전 아이들에게 인사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그의 마지막 인사를 찍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정성껏 남편을 단장해 줬다.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내 남편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고마워."
"뭐가 고마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남편은 씩 웃으며 내 얼굴을
처음 본 사람처럼 만진다.
"화장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이렇게 봐도 예쁘고, 저렇게 봐도 예쁘고.
.
.
미안하다.
너에게 행복을 못 줘서 미안하고,
너에게 짐만 가득 주고 가서 미안하다.
나중에 아이들하고 너무 힘들면...
.
.
재혼해."

어느 날 남편에게 극심한 호흡 곤란이 왔다.
남편의 숨소리가 계속 거칠다.
"조금만 힘내.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응?
애들 데리고 올 거야. 눈 떠봐. 응?"
나는 아직 남편의 손을 놓을 수가 없다.
학교에 있던 아이들을 막내 삼촌이 데려왔다.
아이들이 서럽게 운다. 늦기 전에 말해야 한다.
"아빠, 고맙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그는 들었을까?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남편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를 만나고 사랑하고 부부가 된 지
9년 8개월 만이었다.
남편이 떠난 후 우리의 생활은 여전하다.
아이들은 점점 슬픔을 벗고 명랑해졌다.
나는 아직 아침저녁으로 그가 보냈던 문자를 본다.
생전 그와 나누었던 평범한 메시지가
이렇게 소중한 선물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가끔 남편이 있는 곳에 찾아간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앞에 가면 눈물이 쏟아진다.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이다.
난 아직 그가 사무치게 그립다.
앞으로도 내내 그리울 것이다.
그러나 또 이 추억이 있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그를 떠올리면 그는 언제나 함께 있다.
바람이 불면 그가 내 머리를 쓸며 내 곁에 와 있는 듯하다.
눈을 감고 그에게 말한다.
안녕, 여보.
안녕, 영훈 아빠.
우산을 쓰다

조선시대 개국공신인 '유관(柳寬)'은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청렴하기로 유명해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누구도 정승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울타리 없는 초가집에서 평생 베옷과 짚신으로
청렴한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수레나 말을 쓰지 않고
호미를 들고 채소밭을 돌아다니며 스스로
밭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배우고자 온 학생에게는 늘 평등하게 대하고
성명과 집안도 묻지 않고 제자로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한 번은 장맛비가 오래 계속되어 방안까지
빗물이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책을 읽던 유관이
직접 우산을 받치며 빗물을 피했습니다.
그리곤 옆에서 걱정하는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우산도 없는 집은 이런 날
어떻게 견디겠소?"
고려의 공민왕부터 조선의 세종까지
변치 않고 늘 청렴한 유관의 검소한 모습에
왕은 물론 백성들까지 오랫동안
존경했다고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청렴하고 낮아지려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가진 것을 뽐내기 위해 그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힘 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보다 약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역시 돌이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 오늘의 명언
청렴은 백성을 이끄는 자의 본질적 임무요,
모든 선행의 원천이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
– 다산 정약용 –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뉴욕에 사는 한 알츠하이머 환자는
젊은 시절 즐겨 듣던 곡들로 짠 플레이리스트를 듣고서
잊었던 아들을 5년 만에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걸까요?
뇌과학자들은 빛과 소리가
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알츠하이머를 앓는 뇌에
'빛'과 '소리'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쥐를
하루 한 시간 빛에 노출했더니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아밀로이드 펩티드가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여기에 청각까지 자극해 7일 연속
하루 한 시간씩 쥐들이 정해진 소리를 듣도록 하자,
뇌에서 소리를 처리하는 영역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해마에서도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베타 아밀로이드의 양이 극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심지어 이 쥐들은 인지력도 눈에 띄게 높아져
미로에 들어갔을 때 길을 더 잘
찾아내기까지 했습니다.
눈과 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예술 활동은
건강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병을 떨쳐내 건강을 되찾게 하고,
스트레스 상태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만들고,
슬픔에 빠졌다가도 기쁘게 하고,
나아가 인생을 활짝 꽃 피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림, 춤, 글쓰기, 건축, 연기, 공예...
예술은 그 무엇과도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다시 말해 삶에 예술을 들인다는 건,
건강하고 풍성한, '잘' 사는 인생을 가꾼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가벼운 낙서나 일기 쓰기로 스트레스 해소하기,
나만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불안 가라앉히기,
일과를 마무리한 후 연극 공연이나 전시회 관람하기 등,
오늘부터 나만의 예술 루틴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공감 댓글을 남겨주신 가족님 10명을 선정하여,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블룸버그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도서,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를
선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아름다운 것에 가능한 한 많이 감탄하라.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충분히 감탄하지 못하고 있다.
- 반 고흐 -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1761년, 프랑스 위틸호의 선장이었던 파르그는
마다가스카르 본섬에서 흑인 노예 60명을
다른 섬으로 데려가 기존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아넘길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시 해당 지역에서는 노예무역을 금지하고 있어
파르그 선장은 해상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정규 항해 노선이 아닌 북쪽으로 돌아가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선원들은 그 경로는 돌풍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돈에 눈이 멀었던 선장은
의견을 무시하고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결국, 위틸호는 작은 섬의 암초에 난파되는데
길이 2킬로미터, 너비 800미터의 이 작은 섬은
야자나무 몇 그루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황량한 모래섬은 10월~5월까지 주기적으로
위력적인 사이클론이 불어오는 데다가
땔감으로 쓸만한 큰 나무도 없어 생존이
위태로운 곳이었습니다.
생존자들은 배의 잔해로 작은 배를 만들었습니다.
두 달 뒤, 완성된 배에 빼곡히 올라탄 프랑스 선원들은
흑인 노예들에게 구조선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그곳을 떠나 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생존자들은 남쪽 해안에 분포된 돌을 가져와
두꺼운 벽을 쌓아 집을 만들어서
강력한 폭풍을 피했습니다.
그들은 난파선의 돛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난파선의 목재로는 지붕을 만들고 불을 피웠는데
이 불은 그들이 이 섬을 떠나기 전까지
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식수를 구하기 위해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었으며 탈출선을 만들기 위한
대장간도 따로 만들었습니다.
식량으로는 주로 거북이와 새, 물고기 등을
잡아먹으며 살았는데 놀랍게도 이들 사이에선
폭력이나 식인으로 인해 사망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거나,
인간답게 살아가는 존엄을 포기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1776년 코르벳함 라도팽호의 선원들에게 발견되어
섬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60명의 흑인 노예 가운데 섬에 남은 사람은
일곱 명의 여자, 아직 젖도 떼지 못한
갓난아이뿐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버팀목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위기의 순간에도
침착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맹수에게 물려가도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서 커다란 몸집,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사자가 무언가를 입에 물고
이동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자의 입에 물려있는
동물의 정체는 아기 사자였습니다.
무리에서 떨어져 있던 아기 사자의 목덜미를
아빠 사자가 입으로 물고, 안전한 곳까지
옮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안전한 곳에 도착한 아기 사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신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동물의 왕으로 불리는
사나운 사자도 자기 자식을 해치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기 사자 역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물린 것이 아니라, 안긴 것임을 말입니다.
그래서 두렵지도 불안하지도 않습니다.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서 있을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 잡아줄게'
그룹 god가 부른 촛불 하나의
노래 가사 말입니다.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조용히 내 손을 잡아주고,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주변 사람들의 위로가
큰 쉼이자 위로가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누군가 지쳤을 때
온전히 기댈 수 있는 큰 버팀목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해야 해.
그것이 삶을 이루는 버팀목이니까.
– 애니메이션 심슨네 가족들 中 –
'내일'의 의미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가장 이해하기 힘든 말은 무엇일까요?
바로 '내일'입니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내일 해줄게"라는 약속의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고스란히 믿고,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의 흐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내일'은 수수께끼 같은 의미입니다.
아이들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계속 질문을 합니다.
"내일이 언제야?"
"지금이 내일이야?"
하지만 잠을 자고 눈을 뜨면
찾아오는 날을 '오늘'이라고 부르니,
아이들의 생각 속에는 '내일'이
자꾸만 뒷걸음질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내일'을 이야기합니다.
내일 만나자며 다음을 약속하고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하곤 합니다.
하지만 '내일'은 늘 가까이 있는 듯,
한 걸음씩 멀어져 갑니다.
가깝지만 먼 시간.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다가오다가
빠르고 조용히 물러나는 시간.
그게 바로 '내일'입니다.
그래서 '내일'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하는
'오늘'입니다.
# 오늘의 명언
내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할 일은 오늘이 좋은 날이며
오늘이 행복한 날이 되게 하는 것이다.
– 시드니 스미스 –
틈을 만들어 주자

고대 페르시아를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고급 양탄자입니다.
페르시아의 장인들은 양탄자를 만들 때
한 올 한 올 손으로 만들어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정교한 문양과 복잡한 기하학적 디자인,
자연을 모티브로 한 패턴이 특징이며,
중세 시대부터 왕실과 귀족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뽐내는
예술과 문화의 결정체에도 잘 찾아보면
반드시 흠이 있기 마련입니다.
흥미롭게도 페르시아 양탄자에서 발견되는 흠은,
혼신의 힘을 다해 양탄자를 제작하던 장인이
일부러 남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세상에는 완벽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그들의 장인 정신과 철학이 담긴
흠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페르시아의 흠(Persian Flaw)'이라고
부릅니다.

틈이 있어야
햇살도 스며들 수 있듯이
틈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들어올 공간이 생기고,
이미 들어온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결국 틈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창구와 같습니다.
완벽해지려 하지 말고 굳이 틈을 가리려
애쓰지도 마세요.
그 빈틈 사이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내 삶을 지금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
– 생텍쥐페리 –
우리의 삶도 '그렝이질'이 필요합니다

흙바닥 위에 세운 기둥은 상식적으로
깨지고, 썩고, 미끄러워지기가 쉽습니다.
당연히 오래가지 못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집을 지을 때는
먼저 터를 고르고 땅을 다져 기초를 튼튼히 한 후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자연에서 얻는 다양한 돌들의 모양은
울퉁불퉁 제멋대로이기 마련입니다.
톱과 대패를 이용해서 만든 나무 기둥의
단면은 평평해집니다.
그러면 주춧돌 위에 기둥을 얹기 위해서
단단한 돌을 어렵게 평평하게 깎는 것보다
옛 장인들은 더 깎기 쉬운 나무 기둥의 단면을
울퉁불퉁한 주춧돌의 단면과 꼭 맞도록
깎아내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우리 고유의 건축 용어로
'그렝이질(그레질)'이라고 합니다.
그렝이질이 잘된 기둥은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쉽게 넘어지지 않으며
두 개의 기둥 위에 널판을 얹은 뒤
목수들이 올라가 걸어 다녀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진이 났을 때
주춧돌이 매끈한 돌이라면 기둥이 밀려갈 수 있지만,
한옥의 경우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서 있어서
쉽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울퉁불퉁한 면이
기둥을 안전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바람이 강한 제주의 돌담들이
무너지거나 밀리지 않는 이유는
서로 다르게 생긴 돌들이 아귀를 맞춰주어
서로를 지탱하고 잡아주는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것이 만날 때
하나의 모양이 거칠고 울퉁불퉁해도
다른 하나의 모양이 그 거친 모양에 맞추어
감싸 줄 수 있다면 그 둘의 만남은
세상 무엇보다 더 견고한 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조금만 달라도 서로를 반목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마음의 그렝이질을 통해
나를 버려 너를 품는, 둘이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 오늘의 명언
타고난 구조물에 더 저장해야 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 랠프 월도 에머슨 –
썩지 않는 씨앗은 꽃을 피울 수 없다

썩지 않는 씨앗이 꽃을 피울 수 없듯이
자존심의 포기 없이는 생의 꽃봉오리를
맺을 수 없습니다.
분명 이 세상은, 자존심도 지키고
목적도 달성하는 그런 어리석은
공간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낮과 밤을 동시에 보낼 수 없으며,
봄과 가을을 동시에 즐길 수 없습니다.
밤의 어둠을 지나야
아침의 찬란함이 찾아오고,
여름의 장마를 지나야
가을의 들판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부디 자신 안에 있는 자존심을 꺾으십시오.
흙과 태양과 비와 바람이 저절로 원하는
꽃을 가꾸어 갈 것입니다.
그러니 옳고 그름이 분명할 때도 침묵하십시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 똑똑함보다
옳고 그른 것 모두를 포용하는 어리석음이
오히려 훌륭한 거름이 됩니다.
내 잘못도 내 탓이고,
당신 잘못도 내 탓이며
세상 잘못도 내 탓으로 돌리십시오.
진심으로 자존심을 포기하는 사람만이
주변의 사람들을 행복의 좁은 길로
초대할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세요.
누구의 조언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고,
누구에게나 배울 점만 보일 것이며,
말 한마디에 상처받기보다 입에 쓴 약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자존심은 어리석은 자의 소유물이다.
– 헤로도토스 –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학교가 끝나고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향해
숨이 멎을 정도로 열심히 달렸습니다.
고 3 학생이라 공부하느라 받았던 스트레스를
그렇게 버스 정류장을 향해 내달리는 것으로
풀곤 했습니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전력 질주하여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을 때,
얼굴에 안경이 끼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는 이미 너무 멀어져 있었고,
평소에도 안경이 없으면 버스 번호판이 안 보여
가까이 있어야지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마침, 버스 정류소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안경 쓴 여학생이 있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저기 정말 미안한데,
오빠가 눈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러는데,
30번 버스가 오는지 봐줄 수 있겠니?"
잠시 내 눈치를 살피며 생각하던 여학생은
"예"라고 대답했고,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몇 번 버스를 타는지도 물었습니다.
여학생은 "180번이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5분 정도 지나자, 내 눈앞에서
여러 대의 버스가 지나갔습니다.
그중에 한 대는 여학생이 타려고 했던
180번 버스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타야 할 버스임에도
버스를 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여 분이 지나서야 여학생은
나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30번 버스 오는데요."
"고마워, 예쁜 학생"
짧은 인사와 함께 30번 버스에 올라타
맨 뒤로 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그 여학생이 연이어 온 다른 버스에 탑승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습니다.
비록 처음 만난 학생이지만,
그 마음에 내 삶의 자세도 조금 바뀐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온다면 어떻게 할까요?
자신의 시간을 조금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고
자신의 작은 노력이 들어가야 하고,
작게나마 크고 작은 희생이 따라야 한다면
당신은 도와줄 수 있나요?
아니면,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를
피할 건가요?
그 어떤 선택도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우면
반드시 나 자신이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삶의 아름다운 보상 중 하나이다.
– 에머슨 –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오래전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동생이 중학교 2학년이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집 근처에 학교가 있어 걸어 다녔던 저와는 달리
동생은 학교가 멀어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은 늘 어머니가 차비를 주셨는데
어느 날 동생이 버스를 타지 않고 학교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동생에게 차비를 주는
어머니에게 볼멘소리로 말했습니다.
"차비 주지 마세요. 버스는 타지도 않아요.
우리 집 생활도 빠듯한데 거짓말하는 녀석한테
왜 차비를 줘요."
하지만 어머니는 먼 길을 걸어 다니는
동생이 안쓰러우셨는지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에게 차비를 쥐여주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꼭 버스 타고 가거라!"
그 차비가 뭐라고 전 엄마한테
왜 내 얘긴 듣지도 않냐며 툴툴대기
일쑤였습니다.
며칠 후, 학교 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온 집안이 맛있는 고기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주방으로 얼른 뛰어가 보니
맛있는 불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집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기는 특별한 날 먹을 만큼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저녁 식사 때 고기를 크게 싸서 입에 넣으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동생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날은 무슨 날...
네 동생이 형이랑 엄마 아빠 기운 없어 보인다고,
그동안 모은 차비로 고기를 사 왔구나!"
동생은 그 먼 길을 가족이 오순도순
고기를 먹는 모습을 즐겁게 상상하며 힘들어도
걷고 또 걸었다고 했습니다.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형이 못하면 동생이
동생이 부족하면 형이
자식에게 허물이 있으면 부모가
부모님이 연세가 들면 자식이
그렇게 서로 감싸며 평생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 오늘의 명언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라.
물론 많이 싸우겠지, 하지만 항상 누군가 곁에 있잖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잖아.
– 트레이 파커 –
교만과 겸손

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가고 있었습니다.
선비는 자신의 학식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
장원급제할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큰 강을 건너던 중,
선비는 노를 젓는 뱃사공에게 자랑하듯 말했습니다.
"이보게 사공, 논어를 읽어 보았는가?"
사공은 선비의 질문에 궁금하여 대답했습니다.
"논어라니요? 그게 무슨 책입니까?"
사공의 대답에 선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논어를 모르다니. 자네는 지금 몸만 살아있지
정신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네."
그 순간, 큰바람이 불어와 물결이 계속 출렁거렸습니다.
그리고 나룻배가 휘청거리자, 사공이 말했습니다.
"선비님, 혹시 헤엄을 칠 줄 아십니까?"
배가 뒤집힐까 두려워 사색이 된 선비가 말했습니다.
"난 평생 글공부만 해서 헤엄을 칠 줄 모르네."
그 말에 사공이 선비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배가 물결에 뒤집힌다면
선비님은 정신만 살아있고 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행히 배는 무사히 강 건너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배 위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선비는
학문보다 인격을 더 쌓은 후 과거시험을 보겠다며
다시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대학 등록금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난했던 시절, 대학 등록금과 관련된 일화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이가 있습니다.
바로 영화배우이자 탤런트인 김기두 씨입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모아둔 등록금을 가족들 생활비로 사용하면서
대학교 입학을 포기해야 했었습니다.
등록금 납부 기한 당일이 되어도
어머니가 돈을 마련하지 못했으니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 안 가도 성공할 수 있다며
애써 웃으며 어머니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 돈이 마련됐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우시는
어머니의 사연을 들은 동료 공장 직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등록금을 마련해
준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등록금을 들고 학교로 향했지만
이미 등록금 마감 시간이 임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정을 대학에 이야기했고,
원무과 직원들은 퇴근을 미루고
복도 불이 다 꺼지고 바깥이 어두워질 때까지
그의 어머니를 함께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 꺼진 복도 끝에서
어머니가 그에게 외쳤습니다.
"기두야!"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오시는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등록금은 맨 마지막에 냈지만
졸업은 1등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당하게 1등으로 졸업해서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주름은 나에 대한 깊은 근심과 같고,
영원한 사랑의 증거와 같습니다.
나로 애써진 마음으로 자식들에게 넉넉하게
해주지 못한 것들에 늘 미안해하고,
자식들에게 받은 그 모든 것을 고마워하시는 게
우리들의 어머니이십니다.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전해보세요.
'어머니 고맙습니다.그리고 사랑합니다'
# 오늘의 명언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
– A. 링컨 –
어느 위대한 영웅의 생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3월 25일, 그 영웅 중 한 분이신
김기열 어르신께서 아흔여섯 번째 생신을
맞이하셨습니다.
1950년 7월, 이리 농림학교 졸업을 앞둔
김기열 어르신은 갑작스레 학도병으로 징집되며
훈련도, 군복도, 무기도 없이
학생복과 운동화 차림으로 전장에
나서야 했습니다.
밤이 되면 빈 학교 강당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이면 다시 행군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걸으면서도 쏟아지는 잠을 이기려 애써야 했습니다.
때로는 길옆 수로에 빠진 후에야 잠에서 깰 정도로
혹독한 여정이었습니다.
평양 입성 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전세가 기울던 때에,
김기열 어르신과 그의 전우 최기호 님은
서로의 팔에 독수리 문신을 새겼는데 그 문신에는
이러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먼저 죽으면,
네가 이 문신을 보고 내 가족에게 소식을 전해 주고,
네가 먼저 죽으면, 내가 너를 찾아가겠노라."
전쟁이 끝난 후,
김기열 어르신은 1954년 하사로 만기 제대하며
화랑무공훈장 3개를 수여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 유공자 단체에서
30년 이상 활동하며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힘쓰셨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대한민국의 영웅,
김기열 어르신의 생신을 맞아,
따뜻한 하루는 직접 전주에 계신 어르신을 찾아뵙고
생신상을 준비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생신상을 보며 활짝 웃으시던 김기열 어르신은
인터뷰를 통해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메시지를 남겨주셨습니다.
"전장에서 죽음을 각오할 수 있었던 건
오직 내 나라 대한민국을 지켜야겠다는 생각 덕분이었습니다.
그 정신이 지금까지 저를 지탱해 온 기둥입니다."
노인의 4고(四苦)

4가지 고통이라는 뜻의 줄임말로
빈고(貧苦), 병고(病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가 있습니다.
4고(四苦) 가운데 무위고는
하는 일이 없어 느끼는 고통으로
하루, 이틀도 아닌 긴 시간을 할 일 없이
지내며 느끼는 '무료함'이란 감정으로
비롯된 감정입니다.
퇴직으로 인해 소득이 줄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또한 일자리가 없어지고, 소득이 줄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이렇게 인간관계가 좁아지면
활동이 줄고 마음이 위축되어 외로움이 깊어져,
급기야는 몸과 마음의 병을 얻습니다.
결국 노년을 괴롭게 하는
4고의 가장 첫 시작은 '할 일 없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지금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혹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 감사하며,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노년에 겪는 4고를 벗어날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비록 아무도 과거로 돌아가 새 출발을 할 순 없지만,
누구나 지금 시작해 새로운 끝을 만들 수 있다.
– 칼 바드 –
당신은 누구를 태울 것입니까?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서
한 면접관이 지원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을 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운전하는 당신의 눈앞에 버스정류장이 보입니다.
정류장에는 당장 병원에 모셔가야 할 것 같은 할머니와
당신의 죽을병을 낫게 해 준 생명의 은인인 의사,
그리고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여인
이렇게 세 명이 서 있습니다.
그중 한 명만 차에 태울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태울 것입니까?"
그런데 다른 지원자보다 스펙에서
부족한 게 많았음에도 의외의 합격자가 나왔는데
면접에서 당당히 합격한 지원자의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생명의 은인인 의사 선생님께 차를 내어 드린 뒤,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정류장에서 이상형의 여인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겠습니다."
다른 지원자는 비바람을 피하고자
끝까지 자동차를 고집할 때 그는 자동차를
포기했던 것입니다.

삶이란 무언가를 '바라기'와 '버리기'의
치열한 싸움입니다.
잡고 있는 것과 들고 있는 것이 많으면
손과 팔이 아픕니다.
이고 있는 것과 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목과 어깨가 아픕니다.
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눈이 아프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많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리고 품고 있는 것이 너무 많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가 아픈 것이 많은 것은
많은 것을 바라고,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은
바로 '내려놓음'입니다.
# 오늘의 명언
그릇은 비어 있어야만 무엇을 담을 수가 있다.
– 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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