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중미 배낭 여행-104. 산타 클라라 체 게바라 영묘

푸른비3 2025. 2. 5. 11:19

2016.12.1.목.

 

어느덧 여행을 떠나온 지 한달이  가까워 12월이 되었다.

11월 초 늦가을 온통 단풍으로 물든 한국은 어느새 초겨울을 맞이하여

서울은 반짝 추위로 우리 아라가 감기는 들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서울은 갑자기 추워졌다는 문자를 보낸 아라가 그리웠고, 미안스러웠다.

 

오래만에 호텔에서 푸짐한 식사를 하고 9시에 전세 버스로 이동하였다.

어제 문이 닫혀 보지 못하였던 체 게바라의 영묘와 기념관으로 향했다.

기대를 하고 갔으나 오늘도 역시 기념관은 개방되지 않았다.

광장에 우뚝 선 기념관과 동상만 보고 돌아섰는데 내 마음도 우울하였다.

(지난 밤 이곳에 도착한 카스트로 영구차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체 게바라는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

그의 집안은 스페인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였는데 상류층에 속했다.

문학을 사랑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많은 책을 접하며 성장하였다.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한 의과대학생 체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일주를 여행하며 고대유적과 문명에 심취하였다.

1953년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의사가 되었으나 여행중에 만난

혁명가들의 영향으로 자본주의 타도를 위한  혁명가의 길로 들어섰다.

 

여성 혁명가인 아내 일다 가데아 아코스타와 결혼하였으며

아내의 영향으로 폭넓은 정치 혁명가들과의 인맥을 쌓았으며,

1955년 멕시코에 머무는 동안 만난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의

인연으로 쿠바 혁명군을 조직하여 혁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57년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로 침투하여 바티스타 정부군과 싸웠다.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였고 쿠바가 이를 물리쳤지만,

미국의 경제적 봉쇄를 당하여 소련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소련으로부터 실망한 그는 노동계급을 위한 게릴라 활동을 하였다.

 

볼리비아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볼리비아에 잠입하였으나,

정부군에 포위당해 총상을 입고 생포되고 다음날 곧바로 총살당하였다.

현실의 안락에 안주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한 그의 삶이

숭고하기 때문에 후세의 사람들로 그는 추앙받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몇 년전 호기심에서 두터운 체 게바라 전기를 읽다가 포기하였다.)

 

 

 무거운 구름아래의 체 게바라 동상.

 

 많은 광광객이 찾고 있었다.

 

 영원한 동지 피델 카스트로.

 

 동상옆으로 벽에 부조된 혁명의 역사.

  

 

 동상앞 넓은 광장.

 

 

 인증사진.

 

 

 살짝 비를 뿌린 하늘의 영향인지 내 마음도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