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첫직장으로 다녔던 군청에는 별관에 전산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장롱처럼 생긴 기계가 버티고 있었고,
우리는 그 전산실로 가서 문서를 발송하고 수신하기도 하였다.
그때는 책상마다 개인 컴퓨터가 놓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
1984년 생인 아들 태성이는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였다.
그 후 컴퓨터의 보급이 시작되었고, 동네에는 오락실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우리 태성이는 게임을 좋아하여 오락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에
집에서 게임을 하라고 사 준 것이 우리집 컴퓨터를 들여 놓은 계기가 되었다.
처음 컴퓨터가 출시되었을때는 8비트. 16비트하였는데
기계치인 나는 그 숫자가 의미하는 뜻도 모르면서
그냥 숫자가 클수록 기능이 좋은 것이구나.... 짐작만 하였다.
처음 구입한 컴퓨터는 삼보 컴퓨터였는데 제법 많은 돈을 지불하였다.
그런데 컴퓨터의 발전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새 컴퓨터를 구입하면
곧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어 사는 순간 바로 구형이 된다고 할 정도였다.
아들에게는 컴퓨터를 사 주었지만 고장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막상, 나는 컴퓨터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소중한 보물을 바라보듯 하였다.
컴퓨터를 다루지 않으면 점점 세상에서 도태되어 간다고 하였지만,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고, 내가 배우기 어려운 기계같았다.
그런 나를 딱하게 여긴 이웃의 젊은 여선생이, '컴퓨터는 사람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일하는 하인 같은 충실한 바보상자'라고 하였다.
내가 고장날 것 같아서 무섭다고 하였더니 잘 못 만져도 고장나지 않으며
고장나면 또 고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내 아이디를 만들고
개인 메일함과 홈페이지도 만들어주고 00카페에 가입시켜 주었다.
그 카페에 글을 올리면 곧장 댓글이 달리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모든 것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사진과 글을 올리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조금만 변형이 되어도 금방 두려움을 느끼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였다.
나는 새로운 시도는 할 생각도 못하고 자기 일에 바쁜 아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아들은 "엄마는 도대체 몇 번을 가르쳐 줘야 하느냐?"고 투덜거렸다.
"이 놈아. 내가 너에게 걸음마를 가르칠 적에 몇 번이나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는지 아느냐?
너에게 '엄마'라는 단어를 가르쳐 줄 적에도 엄마는 늘 기쁜 마음으로
수천 번 같은 단어를 너에게 가르쳤단다.".... 하면서 서운해 하였다.
그런데 나는 정말 기계치인데다 기억력이 나빠서
분명 알았던 사용법도 며칠만 사용하지 않으면 까마득하였다.
머리만 나쁜 것이 아니라, 끈기도 없어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안되면
그냥 포기해 버리고 다시 아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여야만 하였다.
2000년도 부터 내가 컴퓨터로 메일을 쓰고 카페도 들락거렸으니,
컴퓨터 생활을 시작한지 거의 25년의 세월이 흘렸지만
내 컴퓨터를 다루고 사용하는 수준은 그때나 별 차이가 없는 듯 하다.
겨우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 수준에서 더 이상 발전이 없다.
지난 연말 몇 년동안 사용하였던 우리집 고물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
전에도 몇 번 버벅거렸는데 마산에 사는 아들이 원격으로 고쳐 주었다.
이번에는 워낙 오래된 것이라 고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아들은 자신이 사제품을 구입하여 조립해서 만들어 주겠다고 하였다.
새 컴퓨터가 오기 전까지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몸시 답답해하였더니,
딸 아라가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하라고 하였는데,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모니터가 작아서 글씨 읽는 것도 힘들었고 키보드의 배열도 데스크탑과 달랐다.
이제 겨우 노트북에 익숙할 무렵이 되었는데 엊그제 새 컴퓨터가 왔다.
집으로 배달된 컴퓨터 상자가 무척 커서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제 저녁을 먹고 아라에게 같이 컴퓨터 상자를 열어보자고 하였으나,
내 조급함과는 달리 아라는 느긋하게 누워서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았다.
'에구....자식 소용 없다' 생각하며 혼자서 낑낑대며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아들이 파손을 걱정하여 상자안에 보충물을 잔뜩 집어 넣고
또 작은 상자안에 여러개의 부품을 넣어 놓았는데,
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복잡하여 그냥 포기하고
서러운 마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누웠더니 꼬박 잠이 들어 버렸던 모양이다.
눈을 뜨니 아직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고 아라가 컴퓨터를 만지고 있었다.
아라도 컴퓨터를 잘 다루지 않는 아이여서 컴퓨터의 복잡한 선을 어디다
연결해야 할지도 모를거라고 걱정했는데 어느새 모니터를 켜놓고 있었다.
"어머나....너 혼자서 어떻게 선을 연결 시켰니? 나도 깨우지....?"
전에는 컴퓨터를 전자상가에서 구입하면 직원이 모든 것을 세팅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아들이 인터넷으로 사제품을 사서 조립을 한 후,
운영체제 및 필수프로그램을 설치하여 보내느랴 시간이 많이 걸렸던 모양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아들과 딸이 느긋한게 서운하였던 것이다.
내가 조급해 하여도 아무런 처리도 할 줄 모르고 결과물도 없으면서,
괜스레 '요즘 젊은 것들은....'하면서 속으로 욕하였던 것이 부끄러웠다.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는데, 제 역할들을 하고 있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나는 아라를 꼭 껴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