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딸 아라의 자가격리

푸른비3 2022. 2. 18. 18:18

2022. 2. 14. 월.

 

딸 아라는 이번에 사립초등학교의 음악교사로 채용되어

새학기부터 음악수업을 맡게 되었다.

아직 수업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참관수업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고 경험도 쌓을 겸 학교 수업을 다녀 왔다.

 

나는 그날 수업을 늦게 마치고 정형외과 치료를 받고 왔다.

사실 아픔을 잘 참지 못하는 엄살쟁이라서 아침에 가서

실밥을 풀려고 하다고 가능한 뒤로 미루고 싶어 수업이 끝나고

5시 넘어 병원에 갔는데 내 상처를 내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선생님에게 다리를 내밀고 눈을 꼭 감고 있으려니 따끔따금.

다른 사람은 참을 만한 아픔이라고 하였는데, 나는 무섭고 아팠다.

다행히 상처는 잘 아물었다고 하면서 아직 많이 걸지 마라고 하셨다.

집에 오니 아라는 오늘 참관 수업반 아이들이 퍽 귀여웠다고 하였다.

 

 

 

2022. 2. 15. 화.

아라는 오후에 외출하였다가 목이 따갑고 기침이 심하여

귀갓길에 근처의 편의점에서 자가진단키트를 사왔다.

평소에 스스로 방역을 잘하였기에 너무 예민반응을 하는 것 같다고

내가 말하였는데 그래도 일단 체크를 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요즘 오미크론의 확산이 극심하여 하루에 몇 만 명이 확진하다고 하였지만,

아라는 늘 마스크를 열심히 착용하였고 손세정제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방역을 철저히 하여 평소에 코로나에 잘 대처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틀림없이 음성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라도 처음 해보는 자가진단이었으므로 OR코드를 찍어

지시방법을 따라서 검사를 하였는데 다행히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지난번 초음파 검사를 하였던 결과가 좋지 않아 오늘 오후 5시.

대학병원에서 MRI. CT촬영 예약이 있어 병원으로 향하였다.

 

아라는 병원에 같이 가겠다고 하였지만 긴 시간 기다려야 하고

혼자서도 충분히 검사할 수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면서 꼭 필요하면

전화를 하겠다고 하면서 출발하였고, 검사가 끝나고 나오니

병원 앞 키큰 소나무위로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라에게 잘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라고 전화를 하였는데 받지 않았다.

조금 후, 선별검사소에 다녀오겠다는 카톡이 와서 왜 또 선별검사소는

갔는냐고 전화를 하였더니 자가 진단키트의 반응이 의심스럽다고 하였다.

차가운 밤바람이 내 얼굴을 세차게 지나갔고 갑자기 불안이 엄습하였다.

 

아라는 다행히 밤 9시까지 검사를 받은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다녀왔다고

하면서 점점 목이 더 따갑고 기침도 많이 나니 오늘부터 자가격리를

해야겠다고 하면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설마....그럴리가....나보다 너가 얼마나 더 철저하게 방역을 하는데?

 

 

2022. 2. 16. 수.

틀림없이 음성이라는 통보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불안하였다.

얼마전 아라의 시험 결과를 받는 날처럼 초조하고 긴장되어 잠이 안 왔다.

일찍 일어나 촛불을 켜고 며칠 전부터 시작한 9일 기도를 하였다.

"주님. 도와 주세요. 아라 건강만 허락하면 다른 욕심은 내지 않겠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에는 온 가족이 함께 아침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기도시간이 지루하여 소변 마렵다는 핑계로 들락거리기도 하였다. 

그 기도의 추억으로 요즘도 나는 아라와 함께 늘 아침기도로 시작한다.

아라와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할 수 없으니 그것도 아쉽고 안타깝다.

 

 

평소에는 검사결과는 다음날 오전 8시가 조금 넘으면 통보가 오는데

오늘은 9시가 넘어도 통보가 오지 않는 듯 아라의 방문을 바라보며

나도  바짝 긴장되었지만 아무런 말도 못하고 결과 통보만 기다렸다.

아라의 방에서 아~! 하는 한탄과 함께 "엄마, 양성이어요...." 하였다.

 

어쩌나.... 정말 자가격리를 하여야겠구나. 자가격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라는 방에서 나가지 않을테니 밥도 자기 방문 앞으로 갖다 달라고 하였다.

영화나 소설속에서 보았던 전염병으로 격리하는 장면이 떠 올랐다.

떨리는 마음으로 밥상을 차려 아라의 방앞에 갖다 놓으니 눈물이 나왔다.

 

아라는 멀리 떨어져 있어라고 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밥상을 가져 갔다.

아이가 아픈데 엄마가 머리도 만져 줄 수 없고 안아 줄수도 없었다.

아라는 나도 전염이 되었을지도 모르니 진단을 받아 보라고 하였다.

근처의 내과에서 처방해준 치료제를 받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아라는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내과 병원으로 직접 찾아가지 않고

병원 아래의 약국으로 가면 처방된 약을 받아 올 수 있다고 하였다.

약값은 국가에서 지급하니 그냥 찾아만 오면 된다고 하였다.

약국에 갔더니 진단 키트가 있어 나도 6000원을 내고 구입해 왔다.

 

자가격리자 가족은 진단키트를 먼저 사용하지 않아도 곧장 PCR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점심 식사후 광진보건소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아픔에 예민한 나는 매 번 검사를 받을때 마다 잔뜩 긴장하게 된다.

나오면서 그곳에서 종사하는 의료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2022. 2. 17. 목.

내가 집에 있으니 아라가 자기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오히러 집을 비우는 게 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없으면 스스로 밥 챙겨먹는 어려움을 있지만, 죄수처럼

방에서 꼭 문을 닫고 있지 않아도 되니, 자가격리가 더 쉽지 않을까?

 

코로나 수동감시 대상이 된 나는 안심숙소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알려준 안심숙소에 전화를 하였지만 전혀 받지 않았다.

하루에 확진자가 10만명이 넘으면서 자가 격리자가 30만명이 넘었다.

안심숙소는 인터넷으로 예약하며 선착순으로 입소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아라는 안심숙소를 예약하려면 다시 PCR 검사가 필요하니 받아라고 했다.

그런데 그 숙소가 집에서 먼 거리에 있으며 그곳에 있는다 하여도

내 마음은 온통 딸에게 가 있는데 격리한다고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서,

PCR검사 받으러 가는 게 귀찮으니 그냥 가지 않겠다고 거절하였다.

 

매일 샤워를 하는 아라였지만 우리집은 화장실이 하나 뿐이어서

아라는 화장실을 사용한 후 겨우 손만 씻고 나왔다.

컵과 수건도 제 방에 걸어 놓고 사용하였으며, 화장실 사용 후에는

변기와 전기 스위치까지 소독제로 소독을 하고 살균 소독제도 뿌렸다.

 

딸은 PCR검사 받는게 뭐가 그렇게 힘드느냐고 못마땅해 하였지만,

그냥 딸의 곁에서 챙겨주고 싶었고 얼굴을 마주 대하지는 못하더라도

가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마음 편할 것 같았다.

아라와 나는 같은 집안에 있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문득 딸의 모습이 보고 싶어 영상통화를 하였더니 맑은 얼굴로

방긋 웃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었다.

우리는 서로 하트를 날리면서 이 어려움 잘 이겨 내자고 약속을 하였다.

한창 청춘의 나이에 저렇게 격리되어 있다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2022. 2. 18. 금.

아침에 일어나 카톡으로 잘 잤니 하고 인사를 보냈다지만 답이 없었다.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아라가 언제 잠들고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아침형 인간인 나와는 달리 아라는 밤늦도록 컴퓨터를 하고 늦게 자는 듯 하였다.

평소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요즘은 모른척 한다.

 

오늘도 눈을 뜨니 새벽 4시 . 잠을 청하였지만 오지 않아 일어났다.

촛불을 밝히고 2주 전부터 시작한 9일 기도와 아침기도를 하였다.

평소에는 딸과 함께 아침기도를 드렸는데 요즘은 혼자서 드린다.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니 위안이 된다.

 

1회용 그릇을 샀지만 그걸 도저히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범ㄷ거롭지만 먹고 난 식기와 수저를 팔팔 끓는 물에 소독하였다.

코로나가 공기로 전염한다고 하였는데 열에 약한지는 알 수 없지만

끓는 물에 소독하면 한결 안심이 되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

 

방 안에만 있으니 먹은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도 약을 먹으려면 꼭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한다고 반 강제로 먹였다.

가뜩이나 음식 만드는데 소질이 없으니 매번 식단을 바꾸는 것도 힘들지만,

며칠전 내가 입원하여 먹었던 병원 밥보다 내 손으로 챙겨 먹으니  좋았다.

 

점심 시간에는 마산에 사는 아들이 스마트폰으로 치킨을 배달시켜 주었다.

아라가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하였다는데 나는 치킨을 바라보니 눈물이 났다.

아라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먹어야 제맛인데 이렇게 따로 먹어야 하다니.....

나는 가슴이 답답하여 못 먹겠는데 아라는 잘 먹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광진구청 자가격리자 모니터링반에서 문자가 왔다.

내가 자가격리에 갈음하여 수동감시대상이 된 예방접종완료자라 하면서

2월20일 다시 PCR검사를 명령, 중간 검사 미실시 자가격리자로전환,

겸사결과 양성일시 자가격리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2022. 2. 19. 토.

입춘이 엊그제 지난 것 같은데 오늘이 벌써 두번 째 절기인 우수라고 하였다.

우수는 대동강 물도 녹고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고 하였는데,

내 마음은 여전히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은 듯 하였다.

종일 흐린 하늘에서 오후 늦게부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였다.

 

안심숙소에 가는 대신 근처에 사는 여동생집에서 며칠 지낼까?....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모두가 꺼려하는 전염병이라 그냥 단념하였다.

아라는 어제보다 한결 목도 따갑지 않고 기침도 없어졌다고 하였다.

나는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요즘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전염병이란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 이번에 절실하게 체험하였다.

마산에 잇는 아들과 며느리에게는 아라가 확진자라고 말 하였지만,

동생과 오빠는 물론 주위의 내 친구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나더라도 우리를 멀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벤허>에서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문둥병에 걸려

마을을 떠나 동굴속에서 생활하였던 모습이 떠 올랐으며

지금 우리의 처지가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말 하지 못하고 스스로 격리되어야 하는 고통과 슬픔이 컸다.

 

나는 그나마 시장에도 가고 바깥 출입도 가능한데 아라는 종일 좁은

방구석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갑갑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엄마는 마스크 쓰고 있으니, 앞 베란다에 나와서 눈 내리는 모습이라도 보라."

고 하였지만, 아라는 내 감염을 우려하여 꼼짝도 하지 않고 방에만 있었다.

 

 

2022. 2. 20. 일.

 

일요일 아침이면 늘 아라와 함께 새벽 6시 미사를 가는데

오늘은 나 혼자 가기 싫어 나도 평화방송으로 비대면 미사를 하였다.

사실 우리는 지난 금요일 마산 아들집으로 가기로 하였기에

일요일 새벽 미사 반주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놓은 상태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우리 성당에서는 인원을 제한, 거리 두기를 하며

성가는 부르지 못하지만 오르간 연주로 성가를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늘 아리가 연주해 주는 미사가 은혜로웠다.

"반주해 줘서 많이 은혜로웠다" 인사를 하였는데 그 인사도 할 수 없어 슬펐다.

 

아라와 함께 TV로 미사를 하고 싶었지만 아라는 제 방에서 하겠다고 하였다.

원주교구의 태창동 성당에서 사목하시는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신부님은 강론끝에 지금 성전을 건립 모금을 하고 있으니 동참해 달라고 하셨다.

전화 1통으로 3만원이 입금된다고 하니 나도 성전건립 모금에 동참하였다.

 

아라는 방안에 있으니 소화가 안 된다고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어제 발표한 새 거리두기 방침에는 출입 명부를 작성하지 않고도

대중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자가격리자는 여전히 출입이 제한된다.

열체크만으로 어떻게 감염확진을 막을 수 있는지 약간 걱정이 된다.

 

사실 아라와 나는 3차 접종까지 완료한 사람이고 특히 아라는

늘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데 어떻게 감염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평소에 알레르기 비염으로 환절기에는 감기로 고생하였는데

이번에도 감기기운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져온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아라에게 아침밥을 챙겨놓고 9시가 되기 전에 광진보건소로 향했다.

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선별검사소가 운영된다고 하였다.

어제 보다 더 추운 날이라 옷사이로 스며드는 찬바람이 몹시 추웠다.

모자와 목도리로 칭칭 감고 털장갑을 꼈지만 손과 발, 온몸이 시렸다.

 

일찍 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선별진료소를 찾았더니 일찍이 아니었다.

벌써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계단을 올라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세상에.....모두 언제 이렇게 아침 일찍 준비하여 나섰을까?

9시 시작 시간에 맞추어서 한꺼번에 밀려 든 것일까?

 

아라에게 전화하여 다른 곳의 상황을 좀 알려달라고 하였더니

광진보건소가 그 중에서도 가장 대기 시간이 짧다고 하였다.

정말 대유행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다렸다.

임시로 천막을 쳐 놓았으나 찬 바람이 사정없이  들어차 몹시 추웠다.

 

대기자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도 있었다.

이 추위속에서 한 사간을 넘게 기다린다면 감기가 들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기다리기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이 상황은 어쩔 수 없었다.

검사를 하고 나오니 문득 그곳의 종사자들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라는 토할 것 같다고 하면서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내가 집에 없으면 아라가 거실로 나와 베란다에서 햇빛도 쐬고

창으로 한강물이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점심을 먹은 후 책을 챙겨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왔다.

 

 

 

2022. 2. 21. 월.

지난 밤 늦은 시간까지 티브이를 시청하여 수면 시간을 놓쳤다.

나는 초저녁잠이 많은 편이라 늘 10시가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든다.

내 수면 시간의 리듬을 잃어버리면 잠들기 힘드는데 지난 밤이 그랬다.

1시에 자리에 누웠는데 새벽 3시까지 잠이 오지 않아 유투브를 들었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촛불을 켜고 9일기도를 하였다.

오늘이 9일 기도의 9번째의 날이다. 온 마음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4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면서 평소에 5시에 맞추어 놓은 알람을 껐다.

늦게까지 푹 자고 싶었기에 EBS방송도 듣고 싶지 않았다.

 

아라는 오늘 밤 자정이면 자가격리의 기간이 해제된다. 

그런데 혹시나 내가 양성반응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겹쳤다.

PCR 검사 결과가 궁금하여 싶어 자꾸만 스마트폰에 손이 갔다.

9시에 드디어 음성이다는 문자를 받고 손뼉을 치며 환호하였다.

 

오늘 하루만 잘 견디면 감옥같은 자가격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라에게 거실에 나와서 햇볕도 쏘이고 환기도 시키라고 당부하고,

훨훨 날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그림도구를 챙겨 화실로 갔다.

아라야 그동안 수고했다. 하루만 더 참아. 그러면 너도 자유야.

 

가고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행복인가?

집밖을 나가는 것이 금지된 후에야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라도 이번 자가격리를 통하여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으리라.

눈발이 흩날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떠 올랐다.

 

 

2022. 2. 22. 화.

지난 밤은 초저녁부터 잠들었는데 늦게까지 푹 자고 일어났다.

아라의 방문을 노트하면서 안부를 물었더니 아라도 일어났다고 하였다.

목이 쓰린것은 사라지고 기침도 나지 않지만 아직 완전하게 나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여전히 제 방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이번에 다리 낙상사고를 당한 후 마음이 많이 위축되었는데

아라도 이번 일로 심신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 용기를 주고 싶었다.

"아니야. 국가에서 자가격리 해제 해도 된다고 허락이 내렸는데

너무 위축되지 말고 그냥 나와라" 하면서 딸을 껴안아 주었다.

 

그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였을테니 아침에는 샤워부터 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오래만에 식탁에서 같이 아침을 먹자고 하였더니,

그래도 아직 서로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아라는 자기 방에서

밥을 먹겠다고 우겨서 그럼 니 편할 대로 하여라고 하였다.

 

입춘도 지나고 우수도 지났건만 밖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다.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니 투명한 겨울햇살이 눈이 부셨다.

이불도 밖으로 들고 나가 탁탁 털어서 햇볕에 말리고 청소기도 돌렸다.

그동안 지치고 무거웠던 마음도 함께 뽀송뽀송 햇볕에 말리고 싶었다.

 

 

 

2022. 2. 23. 수.

일주일만에 아라는 외출준비를 하였다.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 앉아 토닥토닥 화장을 하는 뒸모습을 바라보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거울 앞에 앉아서 화장하는 딸의 모습이 참 예뻤다.

 

지난 주 쉬었던 피아노 레슨을 다녀온 아라는 얼굴이 밝았다.

어쩌면 하은이 비올라 연주회에도 다녀 와도 될 것 같다고 하였다.

오늘은 아라의 절친 친구인 하은이가 금호아트홀에서

귀국독주회를 하는 날이어서 나도 함께 손꼽아 기다렸던 날이다.

 

하은이는 한예종을 졸업한 후 독일 뮌헨 국립음대로 유학.

그곳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드레스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후, 지난 해 귀국, 이번에 귀국독주회를 준비하였기에

나 역시 꼭 참석하여 축하를 해주고 싶었다.

 

나는 이번 주말 큰 수술을 앞 두고 있었는데, 마산의 아들의

"대중이 모이는 곳에 참석하지 말라."는 부탁을 받아들였야 하였고,

아라는 자가격리는 끝났지만, " 혹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르니,

이번에는 참석하지 마라."고 내가 아라에게 부탁하였다.

 

우리는 집에서 하은이의 연주 시간을 기다렸다.

내가 연주회에 초청한 분이 객석에 사람이제법 많이 왔다는 소식과

아라의 친구들이 전해준 '멋진 연주회'였다는 소식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편하였다.

장하구나~! 하은아. 축하한다.

 

 

 

2022. 2. 24. 목.

 

초저녁 거실에 누워서 티브이 시청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뜨니 내가 좋아하는 세계테마여행은 벌써 끝나버렸다.

아라는 제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문이 닫혀 있었다.

아라를 껴안고 굿나잇 인사를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안타깝다.

 

보건소에서는 자가격리를 허락하였으나 다음 주 내가 수술을 받아야 하니,

아라는 보호자 역활을 위해 일주일 더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나도 수술을 앞두고 있으니 모든 일이 조심스럽다.

아라의 의견처럼 아직 식사도 따로 하고 식기 소독도 철저히 하였다.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으나 잠은 멀리멀리 달아나 버렸다.

누워서 유튜브로 강의를 듣고 수면 유도 음악을 들어도 소용없었다.

아라와 함께 이야기라도 하면 한결 수월할 것 같지만

저렇게 제 방안에 틀어박혀 있으니 지루하기만 하였다.

 

아침에 아라에게 부탁하여 EBS교재 1년 구독을 경신하였다.

9일 기도서와 부드러운 파스텔 색상의 기도초. 묵주팔찌 등을 주문하였다.

아라는 마스크를 쓰고 물품을 검색한 후 나에게 구매해도 좋은지 물었다.

아직 집안에서 마스크를 쓰고는 있지만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함께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한강 산책을 하였다. 

아직 불어오는 바람은 차갑지만 어느새 버드개지는 은빛 솜털이 보송송하고

매말랐던 나무가지들은 어렴풋이 연두빛을 띄우고 한들거렸다.

금강석을 뿌려 놓은듯 반짝이는 강물위로 오리 가족이 나들이 나와 있었다.

 

 

2022. 2. 25. 금.

 

한결 포근해진 날이다. 아라와 함께 보건소로 PCR검사를 받으려 갔다.

지난 주에 길게 줄을 서서 1시간을 넘도록 기다렸기에 각오를 하고 갔다.

나는 입원하기전 검사 결과가 필요하고, 아라는 보호자로써 검사가 필수였다 

예상 외로 신속하게 검사를 받았고 보건소에서 자가격리 해제서도 발급받았다.

 

아라는 모처럼 나와 함께 나왔으니 필요한 물건도 구입하자고 하였다.

자질구레한 생활용품. 과일과 채소를 구입하여 함께 걸어서 돌아왔다.

아라는 내친 김에 주민센터에 가서 확진자 지원금도 신청하였다.

자가격리자가 폭증하여 힘들텐데 이런 지원까지 해 주니 정말 좋은 나라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나를 위해 영임씨가 물김치와 감자탕을 가지고 왔다.

입맛이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을 하지 못하였던 나였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감염이 두려워 식당에도 가기 두려웠다.

이런 내 상황을 용케도 알고 때맞춰 집에서 만든 음식을 가져 오니 고마웠다.

 

근처에 여동생이 살고 있었지만 아라의 자가격리를 말하지 않았다.

자존심이었을까?  나의 겹친 불행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주 나의 병문안을 오겠다던 동생에게 오지 않는게

나를 도와 주는것 이라고 하면서 오지 못하게 한 것은 자격지심일까?

 

 

2022. 2. 26. 토.

아라의 자가격리 이후로 나는 혼자서 9일기도와 아침기도를 하였다.

오늘은 아라와 함께 아침기도를 하자고 청하였더니 마스크를 쓰고 왔다.

평소에는 서로 손을 붙잡고 아침기도를 하였는데 아직 감염이 무서워

손을 잡기는커녕 멀찍이 거리를 두고 기도를 하였다.

 

어제 PCR검사를 받고 나오면서도 아라는 검사결과를 걱정하였다.

아라에게 안심해라고 하였지만, 사실 나도 안심을 할 수 없었다.

코로나 완치를 받고 퇴원한 환자도 다시 감염되는 사례를 보았기에....

나는 불안한 마음에 다시 하느님께 도와 달라고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아침 9시가 되기 전 아라는  음성확인 문자가 왔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확인해 보니 음성이었다. "아이구. 정말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손뼉을 치면서 서로 끌어 안았다.

끌어 안으면서도 아라는 애써 얼굴을 돌리고 나와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음성 확인 문자를 받았으니 내일 마음 편하게 입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아라와 함께 입원 수속을 받고 아라는 나의 상주 보호자가 될 것이다.

언제나 내가 보살피고 돌봐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딸이 역할이 바뀌었다.

힘든 자가격리를 이겨낸 딸에게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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