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야, 아마도 지금쯤 마지막 필기시험시간이겠구나.
잠자리에 누우면 금방 쌔근쌔근 잠드는 너가
지난 밤에는 긴장과 걱정으로 쉽게 잠들지 못하더구나.
그 곁에서 나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살그머니 손을 잡아보니 전해오는 따스한 온기.
나는 그냥 너와 같이 누워 있을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어릴 적부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던 네가,
현실의 벽 앞에서 외국 유학을 포기하고
방향을 바꾸어 중등 교사를 지망하였을 때
너를 멀리 보내지 않음에 감사하면서도
혼자 남을 나를 위해 네 꿈을 접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늘 마음 한 켠이 아리고 미안하였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하였지만,
유난히 요즘 청년들은 여러 면에서 힘 든 상황인 것 같구나.
지난해, 기대하였던 임용고시를 결과가 좋지 않아,
네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너는 담담한 목소리로
"엄마, 미안해요. 한 번 더 공부하고 싶어요." 하더구나.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물론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청춘의 시기를 즐기지도 못하고
매일 책 속에 묻혀 지내야 하는 네가 더 힘들었겠지?
"공부하는 네가 힘드지, 나는 괜찮다.
네가 원한다면 한 번 더 도전해 보아라." 기꺼이 승락하였다.
다시 삼시 세끼 밥을 차려 주면서도 나는 지겹지 않았다.
만약, 남편에게 세끼를 차려 준다면 입이 튀어 나왔을텐데,
내리 사랑 탓인지? 고슴도치 엄마의 사랑 탓인지
음식솜씨 없는 내가 해 주는 밥을 먹고
늘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네가 오히려 더 감사하였다.
네가 원하는 음악교사가 되어 마음껏 네 꿈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
무대에 서기 보다는 아이들 가르치는 게 더 좋다고 하였던 너.
올 한 해는 용산의 OO고등학교 시간제 강의를 맡아
수업 전 날 미리 밤 늦도록 교안을 계획하고 작성하는 너를 보며,
정말 좋은 선생님, 준비된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름부터 서서히 지치기 시작하는 네 모습을 보며
혹시 저러다 병이라도 들면 어쩌나 걱정하였다.
어떤 날은 어깨와 목이 아프다고 하였고,
며칠 전부터는 다리 근육이 아프다고 하였을 때,
나는 스트레스 받지 말고 즐겁게 공부하라고 하였다.
스스로 원하여 하는 공부이니 즐겁지 않으냐고 했더니,
기억했던 것들이 자꾸만 사라진다고 하였다.
기억의 창고가 포화된 상태이니 쉬어가면서 해라고 하였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극히 세부적인 내용. 심도 높은 내용까지 다 입력해야 하니
머리 용량이 부족하지 않을까 ? 하는 걱정과 함께
좋은 DNA 유전자를 물러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였다.
잠든 네 곁에 누워 지금 이 상태가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삼시 세끼를 차려 주어야 하고 용돈도 챙겨 주어야 하지만,
그냥 네가 내 곁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좋았다.
네가 원하던 음악교사가 되고 결혼도 하기를 바라지만,
너를 떠나 보내기 싫은 것도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미래는 생각하지 말자고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지만,
네가 내 곁에 없는 생활은 어떤 생활이 될 지 막연하구나.
아침에 일어나 너와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나는 네가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않기를 바랬다.
어떤 결과든지 그냥 담담하게 받아 들이기를 기도하였다.
네가 원하는 음악교사가 된다면 좋지만,
앞으로 네 앞에는 무궁무진한 세계가 펼쳐질 것인데
꼭 그 길만 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공부하기를 바랬다.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주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아라야, 이제 시험도 곧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구나.
모두 하느님께 맡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루길 바래.
우리에게는 든든한 하느님이 계지지 않니?
하느님의 섭리, 자연의 순리대로 살자꾸나.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이 되어도 널 항상 후원하고 믿는다.
아라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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