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5. 수.
오래 전 부터 계획하였고 아직 멀게만 느껴졌던 날이 바로 오늘이다.
변화가 없어 벗어나고 싶었던 일상이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소중하게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성인이니 걱정하지 말고 여행을 즐기라"고 하지만,
내게는 아직 여린 새싹처럼 보이는 딸 아라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가장 마음 쓰인다.
내가 없으면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시간을 즐길 거라고 친구들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하지만, 온기가 없는 방에서 2주일을 혼자 지내는 게 정말 좋을까?
나는 딸없이 혼자서 사흘도 지나지 않아 그립고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이번 미서부 여행은 내가 활동하고 있는 광진미술협회의 회원들과 함께
미주예총 초대 -지구 환경에 대한 생각-이란 타이틀을 걸고
LA 가이어 갤러리의 초청을 받아 전시회겸 떠나는 여행이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어서 남의 앞에 전시한다는 것이 부끄럽고 번거로워
국내의 전시회에도 참가를 잘 하지 않는 내가 LA전시회에 선뜩 참가하게 된
동기는 아무래도 미서부의 여행 목적이 더 앞섰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전쟁 후 혼란의 시대에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은 <좋은나라>
라는 이미지가 항상 각인되어 있었고 선망의 나라였다.
전쟁을 겪은 가난한 나라에 구호의 손길을 보내 준 미국은
<인자한 부자 사람들이 사는 나라>,<우리를 도와주는 착한 나라>,
무엇이든 크고 좋은 나라, 심지어는 <똥도 미제는 좋다>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였던 나라였다.
미국과 한국의 악수하는 모습이 인쇄되어 있었던 밀가루 푸대 포장지의 기억이 선명하며
학교에서는 미국에서 보낸 옥수수로 죽을 끓여 점심을 거르는 학생에게 배급하였었다.
그 좋은 나라, 우리 편의 나라였던 미국을 근현대사를 배운 후부터 하나씩 수정해야만 하였다.
어떤 나라도 우방의 나라는 없다. 모두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활동이니,
우리나라도 스스로 힘을 키워 자주적인 나라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온 국민의 총체적인 노력으로 그렇게 구호를 받던 나라인 우리가 이제는 해외로
구호의 손길을 보내는 나라가 되었으며, 우방국이었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부자나라>라고 불리게 되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여행자유화가 된 후부터 나는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가능한 많은 나라를 다녔다.
어릴적부터 꿈꾸었던 세계일주를 실현하고 싶었다.
한 나라라도 더 가고 싶다는 소망으로 대부분 점을 찍는 여행을 하였다.
체력이 있을 때 가능한 멀고 여행 인프라가 열악한 나라부터 여행하고 싶었다.
교통이 편리하고 우리에게 친숙한 미국은 천천히 여행해도 좋으리라는 생각에
순서가 뒤로 밀리었는데, 이번 기회에 놓치지 않고 다녀 오기로 하였다.
미국은 남미, 중미 여행을 할때 환승지로만 들렸을 뿐 미국 땅은 밟아 본 것은
몇 년 전 뱅쿠버를 여행할 때 하루 일정으로 시애틀을 방문하였을 뿐이었다.
육로의 시애틀 입국장에서 우리는 오래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는데,
직원들은 조급한 우리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저희끼리 서로 이번 휴가에는
어디로 갈 것이냐? 등 농담을 주고 받으며 느긋하게 입국 심사를 하였다.
입국장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공항직원과는 너무나 달라 혀를 찼다.
오늘 도착할 LAX공항 직원은 어떻게 우리를 대할지 미리 걱정이 된다.
몇 년 전 페루로 가는 미국 비행기를 이용하였을 때 환승지 달라스 공항에서
내 캐리어의 벨트를 싹뚝 잘라 짐검사를 한 후 벨트를 자른데 대한 사과는 없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어 검사를 하였다는 메세지 한 장만 가방속에 들어 있었다.
요즘 중국 우한의 폐렴 신종 바이러스 문제로 동양인인 우리에게 까다롭게 하지는 않을까?
중국 방문한 적이 오래 되어 이번 바이러스와 거리가 멀지만 은근히 긴장되고 걱정이 된다.
내가 지은 죄가 없으면 긴장할 필요는 없는데도 항상 입국심사를 받을 때는 긴장이 된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우리 광진 미협 회원들의 전시회와 게티미술관 등 미술관 방문이다.
틈새로 현지 여행사를 이용하여 그랜드 캐니언, 자이언 케니언, 브라이스 케니언 등
자연을 탐방하는 일정을 짜 놓았으며 라스베가스 등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내가 가고 싶었던 샌프란시스코와 샌디에이고 등의 서부 도시가 빠져서 서운하다.
일행들 대부분이 미서부를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라 나처럼 처음 방문자는 없었다.
나도 이번 여행은 모든 곳을 다 돌아야겠다는 여지껏의 내 여행 스타일을 버리고,
회원들과 함께 자연앞에서 스케치 여행을 하면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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