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황석영 장편소설
문학동네
(2017.4.18~22)
황석영은 고교 재학중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베트남 참전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단편소설 <탑>이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책의 앞날개에 작가의 사진과 함께 프로필이 적혀 있다.
나는 그의 물흐르듯이 전개되는 문체를 좋아하여 <강남몽>. <심청>.
<바리데기>, <오래된 정원>, <여울물 소리> 등을 사서 읽었다.
주로 소설은 도서관에서 대여하여 읽는 편인데, 짠순이 내가 그의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두고 읽을 정도이니 얼마나 좋아하는 작가인지 말해준다.
이번에 읽은 장편소설 <해질 무렵>은 1~10의 파트별로 나눠서
저물어가는 세대인 박민우와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인
정우희가 나레이션을 서로 교차하면서 서술하는 형식이었다.
해설도 없이 마지막 장에 짧은 작가의 말로 마무리 되는 소설이었다.
박민우는 지방의 읍내의 변두리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아버지를 따라
서울의 산동네로 이사하여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그 시대의 상황을
마치 지금 내눈앞에 그려 놓은듯이 잘 묘사하여, 그 어려웠지만
서로 보듬어주고 정을 나누었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 올랐다.
그는 산동네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부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열심히 공부하여
일류대학에 진학하였으며 그 후 입주 가정교사를 하면서 구질하였던
자신의 옛동네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유명 건설회사에 채용되었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국비로 미국에 유학하였으며 유학전 소개받은 아내와 결혼하여
미국에서 10년을 공부하며 딸 하나를 낳았고, 그 딸은 지금 미국에
눌려 살고 있으며 아내도 딸 근처의 집으로 옮겨 거의 별거상태였다.
그의 신분 상승은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었는데,
그는 고향과도 연락을 두절하고 살았는데 우연히 초등학교때의
친구인 윤병구와 연락이 닿아 서로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친구의 아내의 남편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찾아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사는 사정에 얽힌 이해관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 관계의 접점이 없으면 친척 간에도 제삿날이외에는 만날 일이 별로 없다
.....고 하였는데 정말 우리 현세를 그대로 반영한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친척이나 가족과 함께 살기보다는 1인 가구가 늘어난 것이 그 증거인 셈이다.
그의 주변 인물들은 사업상 얽힌 정계나 건설회사의 사람들이거나
대학의 선배나 후배들로써 모두 지금의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시청의 민간 기획위의 주최로 만련된 '구도심지 개발과 도시 디자인'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끝난 자리에 불쑥 젊은 여자가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내밀고 간다.
쪽지에 적힌 이름 '차순아'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서울의 산동네를
단숨에 기억속으로 떠올리게 한다.
60년대 시골읍에서 서기로 일하셨던 아버지는 뇌물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어 식솔을 이끌고 서울 동대문 밖 산동네로 이사를 하였는데
어머니가 동대문시장 통로에서 행상을 시작하여 생계를 꾸려갔다.
나중에 이익이 더 남는 어물전을 시작한 어머니곁에서 아버지는
어묵을 튀겨 팔았는데 산동네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아 장사가 번성하였다.
작가는 그 당시의 산동네의 모습을 영화를 보는것처럼 묘사해 놓았는데
동네 구두닦이의 구역권 세력 다툼. 찍새, 딱새. 광새 등 구두닦는 역활분담.
아버지가 없는 재섭, 재명, 재근, 묘순 등의 4남매들의 생활모습,
새로 이 동네에 들어와서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하는 박민우와
재명이 형의 심판 아래 재깐이와 권투시합을 하는 장면,
공동 수도가와 공동 변소, 극장앞의 풍경등을 읽으면서 참 즐거웠다.
재명이형은 인간성도 좋고 수단도 좋아 동생 재깐이와 민우를 화해시키고
친구도 없이 공부만 하였던 민우를 산동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준다.
박민우와 함께 동네에서 고등학생이 단 두명이었던 국숫집 딸 차순아.
동네 머스마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차순아를 박민우도 마음에 두게 된다.
.....그녀가 나를 향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 웃음 때문에
나는 묵직한 타격을 받은 것처럼 가슴이 아프고 답답해졌다.....고 하였던
차순아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어머니를 도운다.
군입대를 앞두고 산동네 부모를 찾은 박민우와 하룻밤을 보내게된다.
그 후 박민우는 산동네의 소식을 일부러 듣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차순아는 어려운 자신의 생계를 도와준 재명이 형과 살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그냥 딴 세상의 일로 여기고 마음을 두지 않는다.
박민우는 정계 재계의 유명 인사들과 인맥을 쌓으면서 사업을 확장한다.
아시아 월드모임을 하며 그들이 나가는 교회의 사람들과 교류도 한다.
교회는 상류사회의 사교클럽이 되고, 당대의 정권에 있는 사람과도
친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브리핑은 한 시간이 못되어 끝났고 젊은이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
나중에 서면으로 좀 보내주세요 짧게 말하고 그가 자리를 떳다.
나중에 최승권은 그를 어렵게 불러왔다며 그가 '큰 집'에서 왔다고
귀띔해 주었다.....를 읽으면서 얼마전 세상을 시끄럽게 한 문화계의
블랙리스트와 재벌기업의 정계유착 비리를 떠 올리게 하였다.
.....그야 어떻든 결국 우리가 가져 본 것은 힘의 향방에 따라
진행할 기획들의 성사여부였다. 결정된 힘에 의해서 조금씩
떨어지는 이익으로 우리는 성장할 것이었다. 그리고 저마다 돌아서서
자책할지언정 그것마저 오래가지는 않으리란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 가면서 마치 다른 세계의 터널을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은 꿈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의 꿈이 이어지다가
현실인 것처럼 실체가 나타나고 그것마저 꿈이 되어 흘러가 버린다.....
이런 독백들이 박민우의 현실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또 다른 화자인 정우희는 예술대학을 졸업한 29살의 아가씨.
극단의 연출자이며 각색을 하는 그녀는 홀어머니와 언니가 사는
집에서 나와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제대로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하여 수도권 변두리 지역을 전전한다.
.....이튿날 두통과 갈증으로 잠에서 깨어나자 머릿속이 텅 빈 백지처럼 느껴졌다.
......결혼은 ....가끔 상상해 본 적도 있지만 내가 어떤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일은
언젠가 나도 애완동물을 키워 보겠다는 작은 소망을 이루기 보다 어려운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노릇 같다.....독백이 그녀의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요즘 3포세대의 젊은이의 한 유형을 보는 듯 하엿다.
우희의 첫번째 남자는 미술학생이었는데 그의 원룸에 얹혀 살았다.
그의 미래가 불확실하여 결국 우희는 그의 곁을 떠나게 되었고,
출판사를 다녔던 시절 만났던 두번째 남자도 사소한 차이로 헤어지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검은 셔츠의 남자 김민우에게서 편안함을 느낀다.
김민우는 피자집 배달원으로 처음 아르바이트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던 악덕 점주에게서 우희의 30만원을 찾아준 남자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김민우는 박민우의 첫사랑 차순아의 아들이었다.
차순아는 재명이 형이 감방에 들어간 후 차순아와 연락을 두절한 후에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데 차순아는 박민우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김민우라고 지었는데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만 역시 제대로 생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음지를 전전한다.
김민우는 결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과 차속에서 동반자살을 한다.
정우희는 김민우의 죽음앞에서 .....그런데 왜.....하다가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왜가 어딨어? 나도 어느날 내 방에서 스르르 잠들듯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왔는걸. 그냥 잠자다가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그러나 생각일 뿐 눈을 뜨면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상은 끈질기게 지속된다....
이 독백이 바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현재의
젊은이들의 현실인 것 같아 몹시 마음이 아팠다.
박민우와 연락을 끊은 차순아도 자는 잠에 뇌졸증으로 고독사를 하고
뒤늦게 정우희에 의하여 발견된다.
.....한 사람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일 따위야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도처에서 날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이 죽고 새로 태어난다.
죽거나 살거나 모두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정우희는 생각한다.
차순아의 빈 화분에 수북히 자란 강아지풀은 바로 민초들의 삶일 것이다.
정우희는 자주 연락을 하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고
그녀가 남긴 노트북을 가져와 차순아의 메일로 박민우에게 메일을 보낸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수년 전에 전태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고 하였다.
김민우와 정우희 아픈 세월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또 다른 전태일이 아닐까?
지난 세대는 과거의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고 하였다.
저물어가는 세대의 회한과 젊은 세대의 가슴 아픈 탄식이
마치 2중주가 되어 때로는 흐느끼듯, 때로는 서로 위로하는 듯 하였다.
이 소설을 덮고나니 마음속에 쓸쓸한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아래는 내가 읽은 책의 표지와 앞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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