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글)
* * * *
사람의 탈
조정래 장편소설
문학동네
(2014.10.13~16)
그림반 동호인 김옥순 여사님께서 이번에 귀한 책을 빌려 주셧다.
얼마전 전시회에 출품한 선암사의 그림을 우연히 그곳 출신인
조정래 선생님께서 가져 가셨고 답례로 주신 책이라고 하셨다.
그 소중한 책을 특별히 제게 빌려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정독을 하였다.
얼마전 조정래의 '정글만리1.2.3'을 즐겁게 읽은 후라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2007년 '오 하느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을 특정 종교에 관련된
얘기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람의 탈'로 개정되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는데 둘 다 내용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에서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다. 역사는 그 안에 포함된다.
인간을 응시할수록 거듭하여 인간에 대한 질문과 마주 서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사람이란 과연 믿을 수 있는 존재일까.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고 질문을 던졌다.
작가의 말처럼 정말 인간은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하는 의문에 빠진다.
이 소설에서 같은 인간이면서도 너무나 다른 인간의 탈을 보게 된다.
주인공 신길만이 충남 서산출신으로 가난이 싫어 스무살 나이로,
지원병이란 미명아래 일본군으로 끌려와 극한의 상황을 겪게 된다.
일본은 조선 청년들을 지원병으로 지명하면서,
군대에 갔다오면 면 서기를 시켜준다고 거짓 약속을 하여 끌고가서는
중국으로 진출하여 몽골군과 싸우는 관동군의 총알받이로 투입한다.
몽골전에 소련군이 가담한 몬한 전투에서 일본군은 대패한다.
신길만은 일본 천황 만세를 부르면서 자결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마주 한 미시마를 넘어뜨리고 대검으로 그를 찌른 후 소련군에게 항복한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생명을 남의 나라를 위해 바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고향에는 자신이 살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가?
일본군에서 소련군 포로로 울란바토르에서 사흘을 보낸 후 포로 수용소로 이감된다.
그곳에는 자결을 하지 않은 일본군을 비롯하여 11명의 조선출신의 포로가 있었다.
소련군 통역관인 고 바실리는 함경북도 회령출신으로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족.
그의 도움으로 신미하일이란 소련 이름으로 개명하고 소련군으로 개편된다.
전쟁은 계속되고 그 해 6월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에게 포로가 된다.
그런 질곡속에서도 "호랑이한테 열두 번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난다"는
어머니의 말이 귀에 쟁쟁한 그는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견뎌낸다.
독일 포로가 된 그들은 독일병사 앞에서 발가숭이가 되는 치욕을 당한다.
....추위속에서 이천여 명은 삽시간에 발가숭이가 되었다.
알몸으로 우글거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상스럽게 생긴 짐승들이었다. 그들은 알몸이 되자마자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몸을 웅크리며 두 손을 모아 아래를 가렸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니 그 모습은 옷을 입고 움직이는 독일군과는 너무나 다르게 보였다.
인간은 옷을 입어아먄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갖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117p)
독일군은 포로를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유태인을 학살한 그들은 황색인종도 싫어하여 가혹한 노동을 시키며
차가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움막에서 기거하게 하였다.
그들의 고향에서 몸에 밴 목도소리에 발맞추서 벌목작업을 하였다.
작가 조정래님은 얼어붙은 동토의 땅에서의 포로수용소의 생활을
어쩌면 그렇게 실감나게 서술할 수 있을까?
그의 소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에서도 마치 내가 그 시대의 배경과 상황속에
걸어간 듯 실감나게 묘사하였는데, 그게 바로 작가의 역량인 모양이다.
....깊은 겨울속에서 거센 바람은 밤마다 판자 막사를 심하게 흔들어댔다.
눈이 많이 와도, 바람이 세차도 밤이면 어김없이 순찰도는
경비병들의 군홧발 소리가 저벅저벅 울렸다.
포로들은 추위에 떨며, 바람소리에 섞이는 군홧발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는 했다.(148P)
....그들의 몰골은 한층 더 거지꼴로 변해가고 있었다.
갈수록 윤기라고는 없이 까슬가슬 메마르고있는 얼굴에 눈들이 퀭했고,
온갖 때가 덕지덕지 낀데다가 여기저기 실밥이 터지고
찢어진 옷들은 남루하기 그지없었다.(P158)
러시아 포로 2명의 탈영후 그 보복이 조선족인 그들에게 심하게 내려졌다.
중노동후 저녁도 굶기고 빙판위에 엎드려 밤을 세우게 하였다.
포로들은 작업을 하다 죽어갔고 번호를 적고는 아무데나 묻혓다.
이번에도 신길만 일행은 독일군으로 전환하여 그 고통에서 벗어난다.
신길만 일행은 타지키스탄 부대에 배속받는데 통칭 동방대대라고 불린다.
동방대대 795부대는 노르망디 해변의 방어장벽물을 설치하는데 투입된다.
독일군은 영국의 침공을 방어할 목적으로 덴마크에서 스페인까지
'대서양 장벽'을 설치하였는데 그곳에서 탄약을 옮기는 중 미군의 포로로 잡힌다.
.노르망디 전투에서 독일군은 패배한다.
신길만 일행은 군수물자를 싣고 온 미군 수송선에 실려 미국으로 이송된다.
그들은 포로 교환으로 다시 소련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이 두려워
신길만. 이규선, 문복동. 김재석 4명은 조선으로 보내달라는 혈서를 쓴다.
....네 사람의 손가락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흰 종이위에 새빨간 피글씨들이 한 자씩 그려져나갔다.
몸속에 감추어져 몸의 보호를 받고 있었던 피들이 이제 주인의 몸을 구하려고
몸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는 붉었지만 단순히 붉은 색이 아니었고,
액체였지만 단순히 액체가 아니었다. 피의 붉은 색은 피만의 독특한 붉은 색이었고,
액체이되 농도와 온기가 다른 액체였다.(P195)
이 혈서사건으로 그들은 영창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제네바협정 준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은
미국에 수용되어 있는 독일군 포로들 중에서 국적이 소련인 자들은
소련으로 송환해 줄것을 요구하여 그들은 다시 소련땅에 다다른다.
배에서 내린 포로들은 대기하고 있던 수십대의 트럭에 나눠타고는 다시 이송된다.
포로는 국가에 대한 배신이라는 스탈린의 군대는 포로들은 분지에 내리게 하여
용변을 보며 휴식을 취하라고는 명령하고는 모두 사살시킨다.
....야산 숲 속 여기저기서 기관총 난사가 시작되었다.
한가롭게 쉬고 있던 수많은 포로들은 아우성과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고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나뒹굴고 뒤엉키고 잇었다 (213P)...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났다.
그렇게 생에 대한 애착의 끈을 놓치 않았던 신길만이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펼쳐가리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은 그렇게 사살되는 장면으로 소설이 끝나니 어찌나 허망한지....
그렇게 죽일바에야 그냥 처음부터 죽였으면....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였다.
책 뒷편의 해설에서, 문학 평론가 복도훈은,
기록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공식적인 역사에서 탈락되고 배제된 민족들의
삶을 복원하고 숱한 고난의 격랑속에서도 결코 실종되지 않는 민족공동체의
강인한 근성과 함께 하고자 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일찍이 이 세상 사람들은 자유, 평등, 평화를 인류의 공동선이라고 내걸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인간적인 이상인가. 그 깃발은 20세기 인간들의 이성과 지성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될 가망이 아득한 영원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 아름다운 깃발아래서 사람들은 지난 백년 동안에 일억 명을 소로소로 살육했던 것이다.
라고 작가의 말에서 조정래는 적었다.
전쟁을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는 그 참혹함이 두렵고 싫어
건너 뒤어서 읽거나 눈을 감고 잘 보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번 이 소설은 한 귀절도 넘어가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그만큼 나에게 여운과 감동을 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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