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박범신의 <소금>을 읽고

푸른비3 2014. 1. 16. 14:24

 


소금

저자
박범신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3-04-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소금은, 모든 맛을 다 갖고 있다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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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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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박범신 장편소설.

한겨레출판사

(2014.1.8~1.16)

 

작가 박범신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중의 한 사람이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하였으니

이 책을 출간한 2013년은 그가 등단한 지 만 40년이 되는 해이고,

<소금>은 2년의 공백기간을 거쳐 40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후기에 적혀 있다.

 

그의 작품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나마스테> <촐라체>이고

지난해 영화로 상영된 <은교>는 화제를 불러일으켜

독자들이 논산까지 찾아가는 대중적인 인기가 있었다고 하였으나 

나에게는 오히려 작가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작품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논산과 강경, 서천 등 서쪽의 염전과

논과 들판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부탁하여 다녀왔다.

시간이 늦어 염전에는 가보지 못하고 왔으나 논산의 관촉사와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탑정호까지 다녀오니

한결 더 소설속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이 가깝게 여겨졌다.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까지 15단락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작가의 역량을 발휘하는 탄탄한 구성으로 짜여져 있었고,

독자를 이끌어 가는 그의 입담과 흐름은 막힘이 없었다.

화자는 나(시인)인 것 같았는데,  때로는 서술하는 방법이

작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점인 것 같아 약간의 혼란이 생기기도 하였다.

 

작가의말에서

이 이야기는 특정한 누구의 아버지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온  모든 아버지의 이야기라고 하였다..

소비를 위한 과실을 야수적인 노동력으로 따 온 아버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부랑하고 있는가?...하고 묻고 있다.

 

그들은 지난 반세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아니, 소비의 단맛을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늙어가는 아버지들의 돌아누운 굽은 등을 한번이라도

웅숭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이 소설에는 많은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에서 항상 생산성을 높히기 위해

자신의 삶은 제대로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

가난의 대물림을 하지 않으려고 아들 선명우를 대학에 보낸 선기철.

금강변 모래땅에 매달려 살다 종국엔 자식 하나 가르치려고

등짐을 지다가 죽은,  화자인 나의 아버지, 등.

 

막내딸 시우의 20번째 생일날 갑자기 실종된 선명우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잠적하여 여지껏 자신이 추구하였던

주체적인 삶의 길을 찾아 염전을 일구며 자유로운 삶을 산다.

 

가정을 나와 전신마비가 된 김승민을 마치 마버지가 현신한 것인양

정성을 다해 그를 돌보고 그의 죽음까지 지켜보고

불쌍한 두 고아 아이를 돌보는 함열댁과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그런 아버지를 찾아 고향 강경의 시골학교로 찾아온 시우는

눈물을 씻으며 화자인 나에게 말한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그래서 만나게 된다면,

이 말만은 하고 싶어요.  아버지가 아버지기 이전에, 선명우 씨로써.....

그냥 사람이었다는 거.....너무 늦게 알아차려 죄송하다고요."

 

화자인 나도 고등학교 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아버지 등짐 져 번

돈으로 겨우 시집이나 사서 모은 놈이야.

모든 아버지는 다 그래. 늙으면 무조건 버림받게 돼 있어.

과실을 따올 때 겨우 아버지, 아버지 하는 거라고....라고 고백한다.

 

젊은이들이 화려한 문화의 중심에서 만원씩 하는 커피를 마실때,

늙은 아버지들은 첨단을 등진 변두리 어두컴컴한 작업장 뒤편에서

인스턴트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있는게 우리네 풍경이다.

 

선명우기 중학생 시절 아버지 염전일을 도우려 고향을 찾았다가

아버지에게 다시 쫓겨 150리길을 걸어서 서천으로 올라오다가

쓰려져 누운 그를 구해 준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던 세희누나도

산업화의 과정에서 희생된 우리의 불쌍한 봉제공 소녀였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먼지나고 좁은 작업장안에서

밤을 세워 바느질을 하였고 실밥을 더 많이 먹고 살았다는

세희같은 여공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지금 이만한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농사를 지으시다가

강에서 실종된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 올려 보았다.

9남매의 가장인 아버지의 하루하루도 얼마나 고단한 나날이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중1로써 끝났으니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고

4년전 아침에 출근하여 회사에서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간

남편에 대한 기억이 더 많이 나서 한동안 책을 덮어놓고 울었다.

그렇게 일찍 떠나갈 것을 예측하여 그리도 열심히 일을 하였을까?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측은함으로 한동안 가슴이 멍먹하였다.

 

이 소설의 끝머리에 작가는

글쓰기야말로 내게 유일한 소통의 수단이고 또한 내 첫마음을 지키는

유일한 방패인 게 사실인데, 바라노니,

'생명을 살리는 소금'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 라고 하였다.

나도 이 소설이 정말 소금같은 소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