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를 읽고

푸른비3 2014. 1. 26. 03:20

 

 

 

 

 

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장편소설

한겨레출판(2014.1.18~1.24)

 

차례

1부 제 영혼이 밀랍처럼

2부 빈 들에 나가 사랑을

3부 그러면 제가 살겠나이다

작가의 말

 

높고 푸른 사다리는 작가 공지영이 사회적 이슈를 일으켰던

<도가니>장편소설을 쓴후 5년만에 출간한 종교적인 색체가 담긴 소설이다.

이 시대 한국의 가장 베스트셀러인 작가 공지영은

고등어,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 등의 장편소설과

지리산 행복학교,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수도원 기행 등의 산문집을 출간하였으며,

이상문학상,오영수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나 역시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여 대부분의 소설과 산문집을 읽었는데

날이 갈수록 그녀의 글이 탄탄해지고 깊어진다고 느끼고 있다.

특히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맨발로 글목을 돌다>을 읽으면서

여지껏 감각적인 언어의 나열을 하고 있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문학적인 역량이 큰 작가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이번에 읽은 <높고 푸른 사다리>는

여지껏 그녀의 작품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책의 제목처럼 푸르스름하고 투명한 우리구슬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랄까?

소설을 읽으면서 요한의 슬픔이 내 폐부 깊숙이 스며든 듯 하여

책을 덮고 몇번이나 내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누르기도 하였다.

 

책의 겉표지에 적힌 글처럼

정말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지상에 머무는 것일까?

인간이 가장 하느님을 닮은 부분이 있다면 사랑하는 것일까?

사회의 규범과 틀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나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언제나 절제와 규율이 따라가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아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도달할 수 없는 그 사랑에 안타까워 한다.

 

요한 수사가 수도원의 담벼락에 붙어서 떠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는 대목에서

몇년을 거슬러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강물위에 걸린 다리를 넘어

외사촌 오빠가 봉직하고 있는 왜관 수도원의 모습이 생생이 떠 올랐다.

수도원 입구에 서 있던 그 큰 나무는 여전히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있겠지?

 

문득 전화를 걸어 오빠 나 며칠 그곳에 가서 쉬고 오면 안돼요? 물었더니

무슨 일 있냐? 지금은 손님방 공사중이니 3월에 한번 내려오라고 하셨다.

나도 수도원 담벼락에 기대어 흘려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싶고

요한이 소희를 만나려 가기위해 수도복을 걸어두었던 그 목련나무 밑에서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같은 종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이 소설은 정요한 이라는 29살의 수련기간 9년차인 젊은 수사가

수도원에 논문을 쓰기 위한 찾아온 사무엘 아빠스의 조카 소희를 만나

인간적인 사랑의 감정에 빠져 들게 되고 그 사랑을 위하여

하느님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버려야 하는 갈등에서 번민한다.

 

평생을 순명하고 청빈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 수도자에게

세속적인 사랑은 금기시되어 있고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앞에서 요한은 절규한다.

여지껏 당신이 저 십자가상에 매달려 있어도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는데

소희가 만약 저 십자가상에 매달려 있다면 목숨을 걸고 구원하고 싶다고.

 

수도자의 길을 버리고 한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고 싶은 요한은

병원에 입원한 소희를 데리고 서울로 가려고 결심하였으나

그녀를 위해 여지껏의 운명을 바꾸려고 한 요한과는 달리

소희는 그를 거부하고 본래의 생활로 돌아가려고 한다.

 

나중에야 그녀의 삼촌인 사무엘 아빠스가 소희를 찾아와

하느님에게로 향하려는 수도자의 길을 방해하지 말아라는

충고를 받았고 그녀는 모든 걸 포기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요한 수사에게는 미카엘과 안젤라 수사가

수도원에서 가장 절친한 친구 수사였는데 두 수사는

비밀리에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있는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나갔다가 고통사고를 당하여 저 세상으로 가 버린다.

그렇게 정의롭고 사랑스러운 두 친구를 잃어버린 요한 수사는

하느님의 사랑과 존재에 대하여 회의를 하고 도대체 왜? 하고 부르짖는다.

 

소설은 단순하게 요한의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대를 거슬러 한국 전쟁에서 화물선으로 흥남철수에서

1만4천명의 생명을 구한 빅토리아 메러디스호의 선장이었던

마리너스 수사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더욱 탄탄한 구성미를 주었다.

 

요한의 할머니는 바로 그 메르디스호에 승선하였던

유일하게 영어가 가능한 한국 여성이었고, 남편과 함게 피난을 하였으나,

남편은 다른 두 아이를 태우고 자신은 승선하지도 못하고

함흥부두의 폭발시 함께 산화해 버렸다.

그 배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요한의 아버지였다.

 

마리너스 수사님의 진술에 의하면 그 당시 화물선에 1만 4천명의

피난인이 사흘동안 추위와 굶주림속에서도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따듯한 남쪽 지방 거제도에 이송한 것이 기적이라고 말한다.

배속에서 오히려 5명의 새생명이 탄생하기까지 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전쟁에서 돌아와 미국 뉴저지주의 뉴튼 수도원에서

30여년을 수도자로 봉직하면서 살았고,

이제는 폐쇄의 위기에 처한 그 수도원을

한국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인수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온

수사님을 만나기를 청원하였고 극적으로 자신의 배에서

출산을 한 여성의 손자인 요한을 만난 것은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었을까?

 

요한이 처음 수도원에 도착하엿을적에

수도원 서향으로 난 유리창에 걸러진 석양빛이 복도에 고인 어둠을

부드럽게 만들때 긴 대걸레를 밀면서 청소하는 성스러운 물고기 같았다고 하였던  

일제 강점기에 독일에서 한국에 파견된 토마스 수사의 이야기도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소설속에서 많은 문장들이 참으로 아름다워 메모를 하였다.

그 중에서

누군는 수도사를 일컬어 "자신이 숨겨두어 잊고 있었던 가장 심오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세계를 떠난 사람"이라고 했다.(P10)

 

젊었을 때 나는 평화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겨우 하나 알게 되었어요. 평화는 고통 가운데서,

혼란가운데에서, 병과 늙음 그리고 죽음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붙들고 있는 거라는 걸.(P108)

 

우리 셋은 수련시절 "슬픔의 잔을 고즈넉이 마시는 일이

성실한 크리스천들의 운명인 것이다"라는 구절을 이메일 끝부분에

서명처럼 서로 주고 받았다.(P110)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운명과 대결한다고 해도, 우리는 인간의 능력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능력, 즉 인간의 교통을 인간의 업적으로 승화시킬 수 잇는

능력에 대해 증언하면서 삶의 의미를 쟁취할 수 있다.(p 163)

 

너희는 모르지. 정신의 기쁨을 위해 희생되는 육체의 어떤 뿌듯함을.

힘듦을 참으며 양보하는 손길의 따스함을. 죽음 너머의 삶을 생각하는 우리의 존엄을.

죽음 후에도 계속되는 우정과 그리움을.

그래 설사 죽고 난 후에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함을 발견하고

내가 내 삶을 돌아본다 해도 나는 너와 나 중에서 학대자의 역할은 맡지 않을거야.(p237)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미리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만드시, 만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 요.(p355)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아빌리의 성녀 데레사.(P372)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르누아르>  (0) 2014.02.13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0) 2014.02.06
박범신의 <소금>을 읽고  (0) 2014.01.16
나는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0) 2014.01.04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0) 2013.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