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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풀의 수동성(나약함) ◆ 2연 : 풀의 능동성(강인함) ◆ 3연 : 풀의 강인한 생명력(의지력) |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풀>은 김수영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시다. 때문에 그의 시세계가 이 시에 축약되어 있는 것으로 보려는, 그럼으로써 '풀/바람'의 암호를 풀려는 노력은 계속 있어 왔다. 풀은 여리고 상처받기 쉽지만, 동시에 어떤 힘에 의해서도 죽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이다. 김수영의 시세계 전체를 볼 때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우리는 바람이 불고, 풀은 그에 따라 흔들리기만 한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는 시인의 발언은, 풀/바람이라는 대립구도로 짜여진 이 시에서, 모든 서술어(눕는다, 울었다, 누웠다, 일어난다, 웃는다 )의 주체가 풀이라는 데서부터 잘 드러난다. 풀과 바람의 싸움은 이 세상에 있는 연약한 민중들의 굳센 생명력과 그것을 억누르고 괴롭히려는 세력의 싸움인 것이다. 이 싸움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생명의 끈질김이야말로 어떤 불의한 외부의 억압도 이겨내는 힘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에서 역사의 흐름이 비관적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결국, 이 시는 아주 일상적인 자연물인 풀과 바람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한 것이다.
시인이 보기에, 풀은 자신의 삶과 생명력을, 주체성을 가진 존재이다. 좁은 땅에 뿌리박고 지루한 삶을 견디며 자유로운 바람에 희롱당하는 것 같지만, 기실 풀의 생명력은 무엇보다도 강인하다. 그것은 자기 삶을 훌륭하게 견뎌낸다. 때로 그것은 바람보다 빨리 눕고 먼저 일어나는 예언자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쓰러졌을 때 먼저 일어나고 울 때 먼저 웃는 인고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시는 김수영의 참여시인으로서의 면목을 엿보게 한 작품이다. 시인이 참여시의 옹호자로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대목은 단순하게 사회 현실을 고발하고 그 사회의 모순 구조에 저항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포괄적이고 정교화되어 있다. 시인은 통제된 질서보다 자유와 사랑의 동의어로서의 혼돈이 시의 임무를 완수하는 데 더욱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시라는 형식을 통해 더 많은 자유의 획득을 부르짖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38선을 뚫는 힘이 되고,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힘이 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기적이 한 편의 시를 이루고, 이런 시의 축적을 통해 진정한 민족의 역사적 기점이 이룩되는 것이다. 그는 이 점에서 참여시의 효용성을 신용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규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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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눕는다. 풀이 눕는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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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까지 눕는다. ' - <창작과 비평>(196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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