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남미 43일 배낭 여행-76. 바람의 고장

푸른비3 2024. 6. 5. 10:11


1일 투어로 또레스 델 파이네를 본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일지 모르지만,
어찌나 바람이 심하든지 나 같은 사람은
하루도 이곳에서 머물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가이드가, 바람이 심하면 도중에 트레킹을
중단하고 되돌아 나올지도 모른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바람이 심하리라는 것은 예측하지 못했다.
모자를 덮어쓰고 스카프로 고정을 하였지만 금방 바람에
다 풀어져 버려 몰골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다시 모자를 고정시키려고 하였지만 바람이 소용돌이치니
정신이 없어 제대로 모양을 잡기 힘들었다.
그동안 다 나았다고 생각한 다리도 이곳에서는 점점 무거워졌다.
일행들은 앞서 보내고 혼자 뒤처져 엉거주춤 걸음을 옮겼다.



옥빛을 이룬 물이 쏟아지는 작은 폭포에는 영롱한 무지개가 서렸다.
심한 바람 속에서도 길섶에는 민들레가 피어나 금빛 이마로 눈인사하였고,
방목하는 양들은 여유롭고 풀을 뜯고 있었다.
척박한 극지에서 피는 꽃들이 붉은 입술로 길손에게 입맞춤을 해 주는 듯하였다.
이 아름다운 곳은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심한 이유는
쉽게 인간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지?



이곳은 모든 트레커들의 버킷리스트가 된 이유는 이 장엄한 자연 앞에서
감동을 얻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도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심하지만
누구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비경이기에
내가 이곳에 올 수 있음에 감사드렸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 속을 아픈 다리를 무겁게 끌며 걸으면서,
문득 성경 속의 감동적인 한 장면이 떠 올랐다.
활활 타오르는 덤불 속에서 거룩하게 변모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 제자가,
이곳에 초막을 지어 예수님과 함께 살고 싶다고 한 장면은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바람은 심하지만 양들은 평화로이 풀을 뜯고.

 

비현실적인 비경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