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6. 화.
나는 유럽의 미술관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여
유럽 여행을 가면 가능한 시간을 만들어 꼭 미술관을 찾아간다.
20년 전 오스트리아 단체 페키지 여행을 갔을 때
빈에서 자유 시간을 1시간 주기에 나는 빈 미술사 박물관을 가 보았다.
그 많은 소장품을 단 1시간에 보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미술관 안의 살아 있는 듯한 초상화를 본 첫 기억은 잊을 수 없다.
발그레한 혈색이 도는 연분홍 얼굴, 실핏줄이 그대로 드러나는 손가락.
목을 감싸고 있는 하얗고 빳빳한 레이스, 반짝이는 비단의 촉감.
그 후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네델란드의 고흐 미술관, 일본과 미국의 여러 미술관 등을 방문하였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스트리아의 빈 미술사박물관의 작품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합스부르크전시한다고 하여 찾아 가 보았다.
합스부르크가는 프랑스의 부르봉가, 이탈리아의 메디치가, 와 함께
유럽의 예술을 보호하고 발전시킨 3대 명문가에 속한다고 한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비롯하여 96 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합스부르크가와 유럽의 근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감상하였다.
이번 전시회의 마지막 공간에는
1892년 고종이 프란츠 요세프 1세에게 선물한 갑옷도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 * *
합스부르크가는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왕가로
1273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된 루돌프1세를 시작으로
1918년 제 1차 세계 대전 후 황제에서 물러난 카를 1세에 이르기 까지
600여 년간 유럽의 정치, 경제, 예술의 한가운데 있었던 왕가다.
150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막스밀리언 1세는
결혼정책으로 주변의 제후들과 연맹을 맺고 영토를 확장하여
부르군트공국, 스페인왕국 전체와 식민지 영토까지 얻어,
유럽의 패권을 쥘 수 있는 기초를 다진 설계자이다.
루돌프 2세는 1576년 황제가 된 후 수도를 프라하로 이전하여
프라하를 보헤미안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던 황제로,
<예술의 방>은 그의 폭넓고 깊은 예술적 안목을 바탕으로
회화, 공예품 등을 수집하여 빈미술사박물관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다이크 등의 작품과 함께
금세공품, 옥으로 된 술잔과 그릇. 연수정 꽃병. 해시계. 긴칼.
막시밀리언 1세, 루돌프 2세.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갑옷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사들의 갑옷은 최고로 비싼 물건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돌프 2세는 정치와 종교보다 예술, 과학 분야에 관심을 보여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 요제프 하인츠 1세, 한스 폰 아헨,
꽃 정물화와 풍경화로 유명했던 룰란트 사베리 등
네델란드, 이탈리아 화가들을 합스부르크 왕가로 불러 들였다.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표 수집가로
아버지 페르디난트 1세로 부터 오스트리아 서쪽 지역인
티롤 지역을 물려 받아 1564년 부터 1595년 까지 통치하였는데
티롤의 암브로스 성내에 수집품을 전시하는 특별한 공간을 마련하였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이 17세기에 수집한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지역의 회화
카를 5세를 시작으로 약 200년 간 이어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수집한 예술품도 카를 6세에 의해 18세기 초 빈으로 옮겨져
현재 빈 미술사박물관의 초석이 되었다.
영상으로 보는 빈 미술사 박물관 공예관 천정화는
독일 출신 율리우스 빅토르 베르거가 1892년에 그린
길이 17m, 폭. 6m의 거대한 천정화로 왕가의 사람들,
당대 교류한 예술가, 학자들 44명의 인물화를 그린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 작품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은 역시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벨라스케스의 <스페인 왕 펠리페 4세> <스페인 왕비 엘리자베트> 있었다.
관객들이 끊임없이 공주의 그림 앞에 서 있기에 기다려야 했다.
마르가리타 공주의 흰 드레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니
부드러운 하얀 비단의 천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는데
그림 가까이 가서 보니 터치가 섬세하게 묘사하지 않았는데,
거리를 두고 보면 눈이 부실 정도여서 역시 대가로구나 생각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유럽의 왕가에 대한 공부도 같이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유럽을 스페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신성로마제국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왕국들이 복잡하게 여겨졌고, 프란츠 1세,
펠리페 2세. 카를 5세 등 황제의 호칭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얻은 카를 5세는 광활한 영토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었지만, 신성로마제국의 제후들이 권력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하여, 아들 펠리페 2세에게는 스페인 영토를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는 오스트리아 영토를 물려 주었다.
무적함대 스페인의 전성기를 누린 펠리페 2세에 이어
펠리페 4세 시대는 정치적으로는 쇠퇴하였으나 문화적으로는 번성하여
예술의 부흥기를 열었으며,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1700년 까지
5대에 걸쳐 약 200년간 이어졌다고 하여 많은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6세 황제는 장녀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왕위를 계승하고 싶었으나 제후들의 견제로 오랜 기간 왕위 계승 전쟁을
치른 후 1740년 오스트리아 왕에 즉위 하였으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될 수 없었고 1745년 남편 프란츠 1세가 황제에 즉위했다.
1736년 결혼한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는 금슬이 좋아
슬하에 16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1765년 남편 프란츠 1세가 사망하자
죽을 때까지 검은 옷을 입어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고 하였다.
남편의 사망후 아들 요제프 2세와 공동 통치를 하였으나 불화가 심하였다.
유럽은 프랑스 대혁명(1789)의 영향으로 요동을 쳤다.
1792년 요제프 2세(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가
황제에 즉위하였으나 나폴레옹 등장으로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를 보냈으며
딸을 나폴레옹 1세와 결혼시키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레오폴드2세 (테레지아의 아들)의 아들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에게 위기감을 느끼고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하고 프란츠 1세로 개명하여
오스트리아제국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고
결국 1806년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었다.
손자 프란츠 요제프 1세(프란츠 1세의 아들 프란츠 대공의 아들)는
1848년 부터 68년간 오스트리아 제국을 통치하였다.
1857년 수도 빈의 도시확장 프로젝트로 빈을 현대화하였으며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시대를 열어 안정화 하였다..
아들 루돌프 황태자는 할머니의 지나친 훈육으로 1889년 자살하였다.
그 후 요세프 1세는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후계자로 계승하였으나
걍경한 개혁정책으로 민족주의자들의 반감을 샀다.
결국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방문한 페르디난트 부부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페르디난트의 암살 후 페르디난트의 조카
카를 1세(오토 프란츠 대공의 아들)가 황태자로 지목되었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왕정은 끝이 났다.
이번 전시회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그녀의 남편 프란츠 1세.
그녀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의 초상화.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식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왕비 엘리자베트(시시).
루돌프 1세의 스테파니 황태자비, 나폴레옹 1세의 초상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가 있었다.
또 한 명의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는
루돌프 1세 (엘리자베트의 아들로 자살)의 스테파니 황태자비였다.
전시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는 엘리자베트(시시)로,
1854년 프란츠 요세프1세와 결혼하였으나 어머니 조피 대공비와
갈등이 심하였고 아들의 양육권마저 빼앗기고 제네바 여행 도중
1898년 이탈리아인 무장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하였다.
.
부착된 설명판을 통하여 오스트리아와 스페인 왕가의 계보가 정리되었고
헷갈리기만 하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프란츠 1세,
엘리자베트의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 1세에 대한 정리도 되었고
마리아 테레지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계보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전시회를 보는 동안 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근대화를 추진하였던
검소한 마리아 테레지아가 딸 마리 앙투와네트에게 보낸 편지와,
내가 여행하였던 체코의 프라하 성. 오스트리아 빈의 시시 박물관.
벨베데레 궁전. 쉔부르그 궁전 등 유럽의 미술관 들이 떠 올랐다.
내가 3시간 동안 전시회를 보면서 느낀 것은 무엇일까?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엄과 화려함? 그 뒤에 숨은 백성들의 땀과 눈물?
위대한 예술품의 영원함 ? 권력을 추구하였으나 나약한 인간의 유한함?
한 마디로 말 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충만하였다.
하얀 구름이 배경 그림처럼 보이는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 건물 사이로 보이는 남산.
입구의 홍보판.
매표소.
내가 예매한 티켓.
예술인 패스 카드로 50% 할인.
전시관안의 설명판.
합스부르크 왕가 계보도.
150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막시밀리안 1세.
켄타우로스 에우리티온을 죽이는 헤라클레스.
안토니오 수시니. 청동.
마티아스.(루돌프 2세의 동생)
마티아스.... 헝가리, 오스트리아. 보헤미아의 왕을 거쳐 1612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추대.
막스밀리언 1세의 갑옷.
사브르(날이 휘어진 긴 칼)
루돌프 2세의 리본장식 갑옷.
세로 홈 장식 갑옷.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독수리 장식 갑옷.
누금 장식 바구니. 16세기 후반.
루돌프 2세.
마르티노 로타. 유화.
요새 다리와 물레방아가 있는 풍경.
17세기 전반, 마노. 벽옥
십자가 모양 해시계.
1619년. 구리 합금에 도금.
조가비 모양 그릇.
17세기 전반. 산호, 석회암. 은. 도금.
연수정 꽃병.
1652년. 연수정, 은. 도금.
누워 있는 비너스와 큐피드
옥수.
마노 그릇.
조가비 모양 그릇.
연옥. 은. 도금.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이야기가 있는 접시.
은에 금도금.
벌목군이 있는 산 풍경.
룰란드 사베리. 동판에 유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전쟁 선포.
머큐리의 경고를 받는 비너스와 마스.
주피터와 칼리스토.
페르디난트 2세 대공.(페르디난트 1세의 아들)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페르니난트 1세의 아들)
프란스 라위크스. 캔버스에 유화.
야자 열매 잔.
야자 열매 주전자.
성 히에로니무스.
페루지노.1502년. 패널에 유화.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
오타비오 바니니. 캔버스에 유화.
성 가족
안젤로 솔리메나. 캔버스에 유화.17세기 중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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