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가을 운동회날

푸른비3 2022. 9. 29. 10:23

내가 활동보조를 하고 있는 00유치원에 들어서니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경쾌한 행진곡이 들리고 확성기 소리와 함께 호루라기 소리도 들렸다.

창으로 바라보니 운동장에 커다란 조형물 아취가 세워져 있고 만국기도 펼럭였다.

유치원과 같은 운동장을 사용하는 00초등학교의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유아들도 창가에 매달려 운동회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아 함께 바깥놀이를 나갔다.

맑고 푸른 하늘에 엷은 새털구름이 걸려 있고 가을 햇살은 투명하여 눈이 부셨다.

운동장에 하얀 선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고 아이들은 청백으로 나눠  함성을 질렸다.

천막 아래 의자에 앉은 학부모들의 모습은 추억속의  운동회날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팀을 나눠 커다란 비닐공을 굴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불현듯 나를 과거로 끌고 갔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면 곧 시작되는 가을 운동회 연습은 나에게 힘들었다.

땡볕에 오랫동안 흙먼지를 마시며 메스게임, 카드섹션 연습을 되풀이 하였다.

목은 마르고 햇볕에 얼굴은 발갛게 익고 운동복과 신발은 흙먼지로 보얗게 되었다.

 

운동회 연습은 거의 한 달이나 계속되었고 드디어 운동회가 열리는 날,

아침 일찍 청백 머리띠를 두르고 집을 나서면 찬 기운에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때 가을운동회는 마을 전체의 잔칫날이어서 공설운동장을 빌어 운동회를 하였다.

대목을 기다린 장사치들이 이른 아침부터 가판대를 차리고 아이들을 유혹하였다.

 

나는 반짝반짝 유리구슬로 만든 목걸이와 귀걸이가 갖고 싶어 한참을 서성거렸다.

알록달록 색상으로 프린트된 마분지 종이인형도 갖고 싶었고 풍선도 갖고 싶었다.

하얀 차일이 쳐진 모퉁이에는 커다란 무쇠솥이 걸리고 벌건 소고기국이 끓고 있었다.

비닐주머니에 담긴 음료수, 볼이 붉어가는 감, 어른 주먹만한 사과도 먹고 싶었다.

 

길고 지루한 개막식에 이어 우리는 순서에 따라 학년별로 여러가지 경기를 하였다.

진달래빛 엷은 한지로 만든 치마를 입고, 손에는 한지로 만든 붉은 모란꽃을 달고

확성기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그동안 연습한 메스 게임을 하고 나면 점심 시간.

미리 약속한 장소에 어머니가 점심보자기를 펼쳐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마을의 공설 운동장은 긴 제방으로 뚤러 쌓인 곳의 중간지점에 있었는데,

그 엣날 소를 놓아 풀을 뜯게 하였던 곳으로 우리 마을을 '방목'이라고 불렸다.

제방 아래 낮은 곳, 우묵히 자란 풀밭에 비닐 자리를 깔고 보자기를 풀었는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어머니는 빨간 사과를 내밀어 나를 감동케 하셨다.

 

아이들의 함성이 나를 다시 00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릴레이가 시작된듯 아이들은 청백팀으로 나눠 바톤을 이어 받으며 달렸다.

저렇게 온 힘을 다해 달려 본지가 언제였던가 ....까마득하였다.

오전 경기가 끝난 저학년들은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운동회날의 추억속에 남아 있는 가족과 함께 밥먹는 풍경은 더 이상 없었다.

찬합에 담긴 팥밥과 반찬을 요즘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쁜 부모들은 운동회날 시간내기도 어려울 것이고 주문음식을 먹을 것이지만,

아이들의 기억 속에 가을운동회의 추억이 아름답게 남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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