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시간 약속

푸른비3 2022. 2. 27. 10:21

우리의 생활리듬은 시간을 중심으로 돌아 간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계가 없는 농촌 마을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성당 바로 아래에 있었으므로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유일한 우리의 시계였다.

 

매일 미사를 알리는  아침 5시 30분의 미사 예비 알림 종소리.

6시의 새벽 미사 알림. 12시의 정오 알림.

오후 6시의 만과 알림 종소리를 듣고 우리는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였으며 아침 점심 저녁 기도를 드렸다.

 

낮시간은 해의 위치와 그림자를 보고 어림짐작하였다.

그 후 내가 중학생이었을때 월남 전쟁에 참전하였던 오빠가

전역하면서 가져온 라디오가 우리집의 시계 역할을 하였고,

마루에 괘종시계는 아마도 그 후에 구입하였던 것 같다.

 

농촌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에는 시계가 없어도 

해가 뜨면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었고 어둠이 내리면 하루를 마쳤다.

해를 중심으로 생활하였던 습성 탓인지 나는 요즘도

해가 지면 잠이 오고 새벽이 오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중학교는 인근 도시로 기차 통학을 하였으므로 기차 시간을

맞춰야 하였으나 손목시계가 없었기에 학교수업이 끝나면

시간도 보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러 기차역으로 달려가서

역마당에서 놀이도 하고 수다를 떨면서 기차시간을 기다렸다.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항상 미리 가서 기다렸으므로 지각이 없었다.

그러나 손목시계가 생긴 후에는 분 단위로 시간을 계산하여

약속 시간에 맞춰 가려고 하다 보니 지각하는 때가 더 많았다.

약속 10분 전으로 계산하면 좋았을텐데 그런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때는 교통체증도 없었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으므로

손목시계을 믿고 출발하여도 거의 약속시간에 맞게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문화인은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나 스스로도 약속시간을 잘 지킨다고 생각하였다.

 

생활이 점점 더 복잡해진 후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도 생겼다.

약속 시간에 늦게 나타난 친구에게 뽀루퉁하여 말도 하지 않았다.

특히 가까운 친구가 전화도 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책임 추궁도 하고 

그날 차값과 밥값은 당연히 그 친구가 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참 여유없게 빡빡하게 살았구나 하는 후회감이 든다.

자고 나면 24시간이 내 앞에 선물처럼 오는데 왜 그렇게 여유가 없었을까?

오래 전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때 노점의 상인이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빨리. 빨리~!"하면서 우리에게 호객행위를 하여 참 부끄러웠다.

 

약속에 대한 추억을 돌이켜 생각하니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내가 젊은 시절 우리 자매들은 서울의 조카 돌잔치에 가기로 하였다.

우리 자동차로 동승하기로 하였는데 큰언니는 약속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그 무렵 큰 언니는 혼자 조카 셋을 키우면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언니는 찾아오는 손님을 놓치고 싶지 않아 우리와의 약속은 뒤로 미루었다.

1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한 언니에게 나는 시계를 들이밀며 짜증을 부렸다.

그때는 언니의 형편보다 시간약속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철부지였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신 그 언니에게 "언니 미안해요."하고 용서를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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