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5. 수.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의 '새 보물 납시었네' 전시회를 본 후 상설전시관 3층
도자 공예실에서 조선 백자와 고려 청자도 감상하고 왔다.
도자공예실에는 백자실. 청자실. 분청사기실로 나뉘져 있었다.
이번에는 조선 백자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였다.
맑고 투명한 푸른빛을 띄는 고려 청자에 비하여 조선백자는 밖을 화려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내면의 모습에 더 가치를 두어 순수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흰색 도자기이다.
분청사기는 청자에 백토를 칠한 것으로 백색의 분과안료로 무늬를 넣어 장식하였다.
백자는 순백색의 고상함으로 선비들의 취향과 어울려 널리 이용되었다고 한다.
백자의 종류는 유약이 얇게 입혀져 백색 또는 연한 청색을 띠고 있는 순백자,
백토로 그릇을 만들어 코발트 물감으로 무늬를 그리고 유약을 발라 푸른색을 띠는 청화백자.
백토로 그릇을 만들어 낮은 온도에서 초벌구이를 한 다음 철로 만든 물감을 칠한 철회백자 등이
있고 간혹 붓으로 그린 무늬를 넣은 백자도 있는데 모두 담백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온 후 집 앞 한강도서관에서 대여해 온 책
<미술시장의 탄생> 손영옥 지음. 푸른역사출판사에서 2020년 4월에 출간한 책을
보면서 백자와 청자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귀한 골동품으로 대접을 받게 되었는지 알 수 있어서 즐거웠다.
을사늑약 이후 한국미술시장의 주도권을 쥔 사람들은 일본인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고려청자 장물아비' 라는 비난을 을 정도로 고려청자 수집에 열중하였다.
고려 청자가 너무 비싸서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문화재 애호가들 사이에 부상한 유물이
너무 저렴하고 흔하여 찾는 이가 없을 정도였던 조선백자였다.
일본의 미술품 수집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조선백자에 '비애의 미'가 있다고 규정해
상품성을 높였다고 하였으며, 그는 "백자가 예술품이 된 것은 고려청자와 마찬가지로
예술품의 아우라가 입혀진 덕분"이라고 하였으며 조선백자가 인기 문화재로 거듭난 데에도
중산층이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전략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미술시장의 탄생>에서.
전시관에 진열된 백자를 감상하면서 단순하면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무늬 없이 순백색 넉넉한 둥근 모양의 달항아리도 좋았고, 매화. 새. 대나무, 모란, 나비 등
자연을 그려 놓은 다양한 모양의 조선백자도 좋았고, 산수무늬와 절, 생황등의 모양으로
앙증맞게 만든 연적이 좋아 그 앞에서 한참 들여다 보며 좋아라 하였다.
조선 백자실에 연 이은 고려 청자실의 청자 도자기도 바쁜 걸음으로 구경하였는데
모두가 귀한 대접을 받는 만큼 색과 모양 무늬가 예술성이 높은 것 같았다.
청자의 그 신비한 비취색을 지금은 재현할 수 없다니 아쉽기만 하였다.
다음에 박물관을 찾는다면 분청자기실을 구경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시실을 나왔다.
ㅇ여기까지가 조선백자.
ㅇ아래는 고려 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