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친구의 텃밭에서

푸른비3 2019. 12. 19. 15:34

친구의 텃밭에서

                정순이

주말 농사를 짓는 친구의 고추 따기를 어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으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아침 9시 독립문역에서 만나 파주의 텃밭으로 함께 갔다.


친구의 집으로 오르는 길목에 피어있는 국화는

내가 만약 시골에 집을 지으면

담장밑에 꼭 심고 싶은 바로 그 야생 국화들이었다.


화사하게 핀 잘 키운 국화보다

왜 나는 이렇게 아무곳에서 뒹굴며 피어있는

서리맞은 야생 국화가 더 좋은 것일까?


친구 부부는 일요일이라 장로로 재직하는

근처의 교회로 서둘러 떠나가고

혼자서 비닐하우스 안에 매달린 고추를 땄다.


오늘 고추대를 잘라 버려야 한다고 하였기에

이제 막 맺히기 시작한 고추도 다 따야만 한다고 하였는데

이제 갓 올라온 어린 고추도 남김없이 따려니 안타까웠다.


이리저리 고춧대를 젖혀가며 말끔하게 고추를 땄는데

한바퀴 돌고 다시 가보면 눈길 닿지 않은 곳에

꼭 몇 알의 고추가 남아 있었다.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내 성품인 것 같아 살짝 부끄러웠다.


문득 성경속의 나오미의 며느리 룻의 이야기가 떠 올랐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친정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라는

충고를 거절하고 시어미니의 곁에서 봉양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룻은 보아즈의 가을걷이가 끝난 들에 나가

남은 이삭을 줍고 있었고 그 모습을 눈여겨 본

밭의 주인 보아스의 눈에 들어 그의 소실로 들어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다.


고추를 남김없이 따면 룻이 줍을 이삭도 없어지니까

오히러 나처럼 룻이 줏을 이삭을 한 두개쯤 남겨 놓는 것도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살며시 웃어 보았다.


서서 하는 일이니 쪼그리고 앉아 하는 일만큼

힘들지는 않았지만 비닐 하우스안에서 작업을 하니

열어 놓은 쪽문으로 바람이 들어 오긴 하였지만 땀이 났다.

일을 하니 시간은 또 어찌나 더디게 흐르는지.....


1시가 넘어도 교회로 간 친구는 돌아오지 않고 슬그머니 화가 났다.

주인도 없는 밭에 나 혼자 줄줄 땀을 흘리며 일할게 아니라

슬슬 게으름을 피우며 나무 그늘로 들어가 땀을 식히고 싶었는데,

오늘 중으로 고추밭을 정리해야 한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이왕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예배가 끝나고 급히 달려온 친구가 지은 따끈한 밥과

텃밭에서 기른 열, 깼잎. 호박소박이, 고추 절임등으로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는 끈으로 배추포기 묶기 작업을 하였다.

친구는 엎드려 배추 포기를 묶고, 나는 서서 끈을 자르는 일만 하였다.


배추 묶기 작업이 끝난 후 열무 솎아주기를 하였는데

어찌나 여린지 내 손길 닿는 곳마다 열무가 드러 누웠다.

지금 쓰러진 열무들도 곧 튼튼히 자라게 되니 걱정하지 마라는

친구의 설명을 들으니 쓰러진 열무순에 미안한 마음이 위로가 되었다.

튼실한 한 포기를 위해 그 곁의 여린 포기를 희생해야 하는 것은

인간 세상이나 식물의 세상이나 같은 순리구나....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친구가 챙겨준 고추와 열무, 가지 등을 한 보따리 안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피곤하여 꾸벅꾸벅 졸았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종일 땀흘리며 생물을 만졌기에 어쩐지 풍요로운 느낌도 들었다.

수확을 하기 전 씨 뿌리고 거름주고 김매는 과정은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잠시나마 농사의 힘듦을 체험하고 나니 열무 한 줄기도 소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