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푸른비3 2024. 5. 6. 09:45

우리들의 이야기

정순이

 

지난 봄, 여고 동창 친구들과 23일 동안 고향 마산으로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서울과 근교에 살고 있는 20여 명의 여고 동창 친구들로 모임을 하고 있었다.

동창회 모임의 구성은 대부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찍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친구들의 모임이기에 오랜 기간 모임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15년 전 딸의 서울 진학으로

동창 모임에 뒤늦게 합류하였으므로 학창시절의 옛친구들이지만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었다.

 

일찍 터를 잡은 친구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었고, 사회적으로 출세한 번듯한 남편들이 있었지만, 나는 남편도 없을 뿐 아니라 경제적 수준도 한참 뒤떨어지는 형편이어서 함께 자리하는 것이 무언가 내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항상 겉도는 느낌이었다. 친구들은 그런 낌새를 주지 않았지만, "없는 놈이 삐친다"는 말이 있듯이 나 스스로 자격지심이 들어 모임에 참석하면 점심만 먹고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일찍 일어났다.

 

지난 년말 모임에서 여고 졸업 50주년 기념으로 여행을 가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의견 조정하여 23일 고향 마산으로 여행을 다녀오자는 의견을 모았다. 20명의 생활 패턴과 성황이 각각 달라 날짜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직장에서 벗어난 나이였지만, 죽을 때까지 일감바구니가 비워지지 않았다. 어떤 친구들은 손자육아 담당을 맡고 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남편이나 자녀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형편이라 23일의 여유도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계절과 가장 많은 친구가 참여할 수 있는 날을 고려하여 출발 날짜를 확정하였다.

나는 아직 돌볼 손자도 없고 정해진 일터에 나가지 않지만, 딸의 뒷바라지와 내 취미활동 수업을 빠져야 하는 부담이 있어 망설였지만, 모처럼 친구들과의 추억 여행을 빠지고 싶지 않아 가기로 결정하였다.

 

출발하는 날 아침, 한 사람도 지각한 사람없이 약속장소에 나타난 친구들은 모두 들뜬 얼굴이었다. 지난 밤 직접 쌀발효 음료를 만들어 온 친구, 발목이 조이지 않는 양말을 사 온 친구,

동대문에서 사온 꽃무늬 천으로 직접 만든 목욕타올을 준비해온 친구. 김밥과 간식을 준비해 온 친구 등 자리에 앉기 바쁘게 우리에게 전달된 친구들의 선물이 우리의 기분을 더욱 고조시켰다.

차창으로 보이는 모내기를 준비하는 들판, 연녹색에서 짙은 초록의 다양한 나무들로 채색된 산, 아련한 그리움의 색상같은 보랏빛 벽오동 나무꽃,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며 환영하는 듯한 하얀 이팝나무꽃, 눈에 들어오는 산과 들이 모두 새롭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오래 전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던 화왕산을 지나고 편안하게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를 지나자

곧 톨게이트를 빠져 나왔다.

마산 입구에 들어서자 모두 창에 납작 얼굴을 붙이고 저곳이 우리가 빨래를 하였던 서원골이구나. 이곳이 그렇게 오르기 힘들었던 산복도로구나. 말하며 소란스러웠다. 매주 금요일 오후 특활시간에 뛰어올랐던 무학산. 공부하기 싫으면 바라보았던 마산 앞 바다. 등 그동안 잊어버렸던 기억을 다시 소환하느랴 친구들은 소녀들처럼 재잘거렸다.

-1-

 

호수같은 마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팬션에 짐을 내려놓고 방 배정에 들어갔다. 여러 명이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자야 하는 조건이었지만 불편함도 거리낌이 없었다.

미리 예약한 식당에서 서울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 방아잎을 넣은 부침개를 먹으면서 고향의 맛을 느꼈다.

 

미더덕 무침과 청국장으로 아침밥을 즐긴 후 옛 추억의 장소를 찾아 출발하였다. 학창 시절 단체영화를 보았던 시민극장. 참고서를 구입하였던 학문당 서점. 항상 배고팠던 어린 시절 가장 맛있었던 단팥빵의 고려당. 물건을 살 돈은 없었지만, 가판대에 늘여놓은 상품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부림시장. 잊었던 추억들을 꺼내어 보듯 먼 시간을 거슬러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용돈을 아껴 한 장씩 레코드를 구입하였던 명곡사가 사라져 아쉬웠지만, 도심의 공동화로 낙후된 창동 골목은 화가들의 작업실로 재창조되어 반가웠다.

 

맛집을 찾아 점심을 먹은 후 마산이 낳은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미술관을 찾았으나 마침 보수공사중이라 안타까웠다.

임진왜란의 아픈 역사를 치룬 합포만, 마산수출자유지역. 315의거 등 흔적이 잘 정리된 마산박물관 등을 거쳐 오후 늦은 시간 우리의 모교를 방문하였는데, 학생들은 모두 귀가하였는지 교정은 조용하였다. 학창시절 늘 인자로이 맞이해 주었던 성모상. 마음이 어수선 할 때 찾아갔던 교정 뒷편의 작은 성당은 여전한데, 그 넓었던 운동장이 너무 좁게만 보여 내 눈이 이미 크고 높은 것에 길들여졌음을 느꼈다. 체육관 전광판에 '모교 방문을 환영합니다.' 문구가 흘러 괜스레 겸연쩍었다.

 

다음날, 오전에 어제 못다 찾았던 몇 곳을 더 둘러보기로 하였다. 소풍을 갔던 가포고개는 언덕이 높아 버스도 오르기 힘들어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갔는데 이제는 그냥 나지막한 고갯길이 되었고, 아카시아 향기 가득하였던 가포의 마산 교육대학의 솔밭.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보트의 노를 저었던 가포 바다는 매립되어 옛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 것이 안타까웠다.

 

23일 여행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버스에 앉아 우리는 그동안 함께 쌓은 추억을 되새기며 수다를 떨고, 창밖의 무르익는 봄 풍경을 즐기다가 까무룩히 졸기도 하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긴 이동시간이 지루해질 무렵, 누군가의 제안으로 음악을 틀었다.

나훈아의 고향 열차. 머나먼 고향 (이 노래들은 사실 남편이 좋아하였던 노래) 에 이어 우리가 즐겨 노래하였던 트윈폴리오의 노래들이 쏟아졌다.

'긴머리 소녀'. '어제 내린 비' 등 당시 음악다방에서 신청하였던 노래들.

'웨딩 케익', '하얀 손수건' 등 노래를 들었던 마음 아린 연애의 추억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빛났던 청춘의 시간이 떠오르자 콧등이 시큰해졌다.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 없는 웃음이 라일락 꽃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나요' 나지막이 노래를 따라 부르니 우리는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듯 하였다.

'밤 하늘의 별 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들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 노래를 부르면서 옆에 앉은 친구의 손을 가만히 잡아 보았다.

따스한 온기가 강물처럼 가슴을 흐르는 것 같았다.

- 2-

 

(한컴 2020으로 옮긴 글

2024. 7. 17 수정)

 

    *       *       *

 

 

 

 

    *    *     *

 

며칠 전 여고 동창 친구들과 2박 3일 동안 고향 마산으로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서울과 근교지역에 살고 있는 20여 명의 여고 동창 친구들로 모임을 하고 있었다.

동창회 모임의 구성은 대부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찍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친구들의 모임이기에 오랜 기간 모임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15년 전 딸의 서울 진학으로

동창 모임에 뒤늦게 합류하였으므로 학창시절의 옛친구들이지만 어느정도 거리감이 있었다.

일찍 터를 잡은 친구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었고, 사회적으로 출세한 번듯한 남편들이 있었지만,

나는 남편도 없을뿐 아니라 경제적 수준도 한참 뒤떨어지는 형편이어서 함께 자리하는 것이

무언가 내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항상 겉도는 느낌이었다

친구들은 그런 낌새를 주지 않았지만, "없는 놈이 삐친다"는 말이 있듯이

나 스스로 자격지심이 들어 모임에 참석하면 회비를 내고 점심만 먹고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일찍 일어났다.

 

지난 년말 모임에서 여고 졸업 50주년 기념으로 여행을 가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의견 조정하여 2박 3일 고향 마산으로 여행을 다녀오자는 의견을 모았다.

20명의 생활 패턴과 성황이 각각 달라 날짜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직장에서 벗어난 나이였지만, 죽을 때까지 일감바구니가 비워지지 않는다.

어떤 친구들은 손자육아 담당을 맡고 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남편이나 자녀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형편이라 2박 3일의 여유도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계절과 가장 많은 친구가 참여할 수 있는 날을 고려하여 출발 날짜를 확정하였다.

나는 아직 돌볼 손자도 없고 정해진 일터에 나가지 않지만,

딸의 뒷바라지와 내 취미활동 수업을 빠져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모처럼 친구들과의 추억여행을 빠지고 싶지 않아 가기로 결정하였다.

 

출발하는 날 아침, 한 사람도 지각한 사람없이 약속장소에 나타난 친구들은 모두 들뜬 얼굴이었다.

지난 밤 쌀발효 음료를 만들어 온 친구, 발목이 조이지 않는 양말을 사 온 친구,

동대문에서 사온 꽃무늬 천으로 직접 만든 목욕타올을 준비해온 친구.

차 안에서 먹을 김밥과 간식을 준비해 온 친구 등 자리에 앉기 바쁘게 우리에게 전달된

친구들의 선물이 우리의 기분을 더욱 고조시켰다.

 

차창으로 보이는 모내기를 준비하는 들판, 연녹색에서 짙은 초록까지 다양한 나무들로 채색된 산,

아련한 그리움의 색상같은 보랏빛 벽오동나무꽃,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며 환영하는 듯한 하얀 이팝나무꽃,

눈에 들어오는 산과 들이 모두 새롭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던 화왕산을 지나고 편안하게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를 지나자

곧 톨게이트를 빠져 나왔다.

마산 입구들어서자 모두 창에 납작 얼굴을 붙이고 

저곳이 우리가 빨래를 하였던 서원골이구나. 이곳이 그렇게 오르기 힘들었던 산복도로구나. 소란스러웠다

매 주 금요일 오후 특할시간에 뛰어 올랐던 무학산. 공부하기 싫으면 바라보았던 마산 앞바다.등

그동안 잊어버렸던 기억을 다시 소환하느랴 친구들은 소녀들처럼 재잘거렸다.

호수같은 마산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팬션에 짐을 내려놓고 방배정에 들어갔다.

여러명이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자야하는 조건이었지만 불편함도 잠시였다.

미리 예약한 식당에서 서울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 방아잎을 넣은 부침개를 고향의 맛을 느꼈다.

 

미더덕무침과 청국장으로 아침밥을 즐긴 후 옛추억의 장소를 찾아 출발하였다.

학창 시절 단체영화를 보았던 시민극장. 참고서를 구입하였던 학문당 서점.

학창 시절 가장 맛있었던 단팥빵의 고려당. 물건을 살돈은 없었지만,

가판대에 늘여놓은 상품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부림시장.

잊었던 추억들을 꺼내어 보듯 먼 시간을 거슬러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용돈을 아껴 한장씩 레코드를 구입하였던 명곡사가 사라져 아쉬웠지만,

도심의 공동화로 낙후된 창동 골목은 화가들의 작업실로 재창조되어 반가웠다.

맛집을 찾아 점심을 먹은 후 

마산이 낳은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미술관을 찾았으나 지금 보수공사증이라 안타까웠다.

임진왜란의 아픈 역사를 치룬 합포만,마산수출자유지역. 315의거 등 흔적이 잘 정리된 마산박물관 등을 거쳐

오후 늦은 시간 우리의 모교를 방문하였는데, 학생들은 모두 귀가하였는지 교정은 조용하였다.

학창시절 늘 인자롭게 맞이해 주었던 성모상. 마음이 어수선할때 찾아갔던 교정 뒷편의 작은성당은 여전한데,

그 넓었던 운동장이 너무 좁게만 보여 내 눈이 이미 크고 높은것에 길들여졌음을 느꼈다.

체육관 전광판에 '모교 방문을 환영합니다.' 문구가 흘러 괜스레 겸연쩍었다.

 

다음날, 오전에 어제 못다 찾았던 몇 곳을 더 둘러보기로 하였다

소풍을 갔던 가포고개는 언덕이 높아 버스도 오르기 힘들어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갔는데

이제는 그냥 나즈막한 고갯길이 되었고,

아카시아 향기 가득하였던 가포의 마산 교육대학의 솔밭.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보트을 저었던 가포바다는 매립되어 옛추억의 장소가 사라진 것이 안타까웠다.

 

2박 3일 여행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버스에 앉아 우리는 그동안 함께 쌓은 추억을 되새기며 수다를 떨고,

창밖의 무르익는 봄풍경을 즐기다가 까무룩히 졸기도 하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긴 이동시간이 지루해질 무렵, 누군가의 제안으로 음악을 틀었다.

나훈아의 고향열차. 머나먼 고향(이 노래들은 사실 남편이 좋아하였던 노래) 에 이어

우리가 즐겨 노래하였던 트윈폴리오의 노래들이 쏟아졌다.

'긴머리 소녀'. '어제 내린 비' 등 당시 음악다방에서 신청하였던 노래들.

'웨딩 케익', '하얀 손수건' 등 노래를 들으며 마음 아린 연애의 추억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빛났던 청춘의 시간이 떠오르자 콧등이 시큰해졌다.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 없는 웃음이

라일락 꽃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나요' 나즈막히 노래를 따라 부르니

우리는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듯 하였다.

'밤 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들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

노래를 부르면서 옆에 앉은 친구의 손을 가만히 잡아 보았다.

따스한 온기가 강물처럼 가슴을 흐르는 것 같았다.

 

   *      *       *

 

 

 

 

(아래는 펀 글.)

 

우리들의 이야기 原曲 'The Seekers-Isa Lei' 번안 트윈 폴리오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 없는 웃음이

라일락 꽃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나요

밤 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들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

비가 좋아 빗속을 거닐었고

눈이 좋아 눈길을 걸었어요

사람 없는 찻집에 마주 앉아

밤늦도록 낙서도 했어요

밤 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들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

 

 

하얀 손수건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올 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 주던 하얀 손수건

그때의 눈물자위 사라져 버리고

흐르는 내 눈물이 그 위를 적시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올 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 주던 하얀 손수건

그때의 눈물자위 사라져 버리고

흐르는 내 눈물이 그 위를 적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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