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구월이 오면

푸른비3 2021. 8. 31. 20:04

지난 여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지겨웠다.

연일 30도를 훌쩍 뛰어 넘는 날이 계속 되었고

열대야로 잠을 설쳐 아침에 일어나도 멍하였다.

 

집이 가장 편하다고 외치던 내가 피서를 떠나고 싶었다.

길어야 두 달이라고 스스로에게 타일러도

더위 속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길게만 느껴졌다.

 

영영 떠날 것 같지 않았던 더위가 처서를 지나니

새벽으로 목덜미에 느껴지는 바람결이 서늘하였고

무심결에 이불 자락을 당기다 창문을 닫고 자야만 하였다.

 

습기로 늘 축축하던 팔뚝이 고슬고슬 촉감이 좋았다.

하늘은 조금씩 높아지고 강물은 고요하고 깊어졌다.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찾아온 손님처럼 구월이 왔다.

 

60년대 헐리우드 최고의 미남 배우가 출연한 영화

<Come September>영향이었을까?

청소년 시기부터 나는 구월이 가장 좋았다.

 

구월이 다가오면 영화속의  삽입곡 <Come September>,

패티김의 <구월이 오는 소리>가락을 흥얼거리며

구월을 기다렸고, 속절없이 구월을 보내고는 아쉬워했다.

 

모처럼 동호인들과 아차산 등산을 하기로 한 오늘,

가을을 재촉하는듯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점심무렵부터 제법 세차게 내려 속옷까지 흠뻑 젖게 하였다.

 

모자위에 떨어진 빗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

비옷을 입었는데도 등산화속도 빗물이 흥건하였다.

하산하여 버스를 탔더니 오슬오슬 춥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자연은 때가 되면 우리 곁을 찾아왔다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것을 그렇게 못 견뎌하였다니

새삼 나자신의 조급함과 옹졸함에 부끄러워진다.

 

빗물이 고인 보도블록에 떨어진 알록달록 고운 나뭇잎.

아~! 이렇게 자연은 숨김없이 제 자리를 찾아 오는구나.

빗물에 젖은 고운 단풍잎 하나 주워 '반가워 구월!" 인사하였다.

 

     *     *      *

내가 좋아하는 안도현 시인의 시

구월이 오면.

한 부분을 암송해 보았다.

 

♡ 구월이 오면 ♡ 
 
                         시 /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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