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발칸 반도 여행기 12-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

푸른비3 2017. 5. 21. 22:27

2017.5.11.목.


이른 아침에 메주 고리에 성모발현지를 탐방한 후 곧 모스타르로 향하였다.

모스타르는 헤르체고비나의 옛 수도이며 네레트바 주의 주도라고 하였다.

크로아티아와 국경을 접한 지역으로 복잡한 역사를 안고 있는 도시였다.

발칸 반도의 역사가 함축된 도시 모스타르는 네레트바강이 흐르고 있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현재 하나의 국가이지만 두 개의 체제로 되어 있다.

동방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와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 무슬림과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로 구성된 복잡한 나라이며 수도는 사라예보,

정부 형태는 공화정으로 3 명의 대통령이 8개월 단위로 의장직을 맡는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크기는 남한 면적의 반 정도이며 수도는 사라예보.

아드리아 해의 동쪽에 위치해 있지만 21.2킬로 미터의 짧은  해안선 일뿐이다.

북부와 남부에 있는 약간의  평야 지대를 제외하면 디나르 고원의 산악국가이다.

서남부로 디나르 알프스 산맥이 뻗어 있고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되어 있다.


1992년 유고 연방에서 분리한 국가로 북부의 보스니아 지방과

남부의 헤르체고비나 두 지방을 합쳐 인구는 455만 명의 작은 나라였다.

기원 전 부터 로마 제국의 속주였으며 10세기 부터 12세기까지 비잔티움 제국,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460년부터 오스만 제국의 침입을 받았다.


그런 역사와 여러 민족과 종교의 갈등으로 이곳은 항상 전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1차, 2차 세계 대전의 발단지였으며, 보스니아 내전은 우리도 뉴스로 보았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쟁으로 희생자가 25만 명에 달한 인종청소 전쟁지였다.

우리는 이동 중에 인솔자가 준비한 <끝나지 않은 전쟁>다큐먼터리를 보았다.


그런 아픈 역사의 흔적을 가진 스타리 모스트 다리였지만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아기자기한 마을의 아름다움에 빠져 이곳 저곳을 사진에 담기에 시간이 모자랐다.

스타리 모스트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파괴되었는데 유네스코에 의하여 재건 되었다.

강에 수장된 다리의 파편들을 건져 올려 고증에 의해 다시 복원하였다고 하였다.


스타리 모스트는 '오래된 다리' 라는 뜻으로 30미터의 이슬람식 다리이며

1088개의 하얀색 돌로 이어진 가톨릭 문명과 이슬람 문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다리 아래서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는 강건너 이슬람 첨탑이 솟은 마을로 건너갔다.

짧은 시간에 이쁜 기념품을 몇 개 사고 아이스크림도 입에 물고 버스로 달려갔다.



다리로 가는 입구에 서 있는 모스타르 종탑 설명판.


모스타르 탑.


길가의 눈길을 끄는 수예품.

총탄의 흔적이 있는 건물.


모퉁이 카페.


골목길 바닥의 맨들맨들한 돌.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골목길.


네레트바 강가의 카페.


물담배를 피울 수 있는 카페는 이곳이 무슬림의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현장수업을 나온 학생들.


스타리 모스트 다리의 우아한 모습.


스타리 모스트 다리아래서 인증사진.


네레트바강은 아픈 역사를 안고 말없이 흐르고.


다리위에서 강 아래를 굽어보는 사람들.


네레트바강을 굽어보는 붉은 젤라늄.


어서 다리를 건너고 싶은 생각에 걸음을 빨리한 골목.


골목은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의 입구.


수많은 관광객들로 가득한 다리위의 모습.


다리 건너편 이슬람 사원의 탑이 가득한 마을의 모습.


강의 반대편은 기독교 문화.


이슬람 문화의 마을이 더 눈길이 갔다.


어서 건너가고 싶은 다리 저편의 마을.


다리 중간지점에서 바라본 두 마을.


기독문화의 마을.


이슬람 문화의 마을.


1088개의 돌을 고증하여 다시 재건한 다리의 모습.





다리위에서 찍은 내친구들의 모습.


다리아래의 카페.


이슬람 마을에서 바라본 다리.


아픈 역사를 안고 있어도 이방인의 눈에는 너무 이쁜 마을의 모습.


(아래는 펀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