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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희숙의 명화읽기 |구스타프 클림트, 화폭에 에로티시즘을 담다

푸른비3 2008. 7. 18. 04:41

 

 

박희숙의 명화읽기 |구스타프 클림트, 화폭에 에로티시즘을 담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9세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그의 예술세계는 전통적인 역사주의와 현대의 상징주의 회화,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에 서 있는 독보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클림트의 대표작이자 대중들에게 가장 알려진 작품은‘키스’다. 키스는‘사랑’이라는 작품에서 처음 사용한 이래 클림트가 가장 즐겨 그린 소재다.

클림트 회화의 가장 중요한 시점에 제작되었던 이 작품은 금박과 은박을 사용한 화려한 장식 그리고 에로티시즘한 주제로 세기말의 빈을 표현하였다.

‘키스’ 작품은 남자의 목을 감싸안은 가련한 여인의 향기는 황금빛 망토에서 빛이 나고 남자에게 머문 여인의 손끝은 사랑의 완성을 의미하고 있다.

◇사랑의 완성을 표현한 ‘키스’◇

남녀의 사랑을 미화시키고 있는 이 작품은 금박 이외에 풍부하고 화려한 색을 사용함으로써 더욱더 주제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인물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배경에서 주로 검은색과 흰색의 직선을 모티브로 삼은 남성의 옷은 남성의 힘을 강조했으며, 적색의 타원형 모티브를 사용한 여성의 옷은 밝은 색채와 원형의 모티브로 화려하게 장식을 사용해 남녀간의 이질적인 성격을 표현한다. 직선과 곡선의 대조적인 장식 부분은 서로 구분되면서도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금색 안에 포함되어 있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에 키스를 하고 여자 얼굴에는 키스의 감미로움이 숨기지 않고 드러나 있다. 사랑의 강한 감정을 관능적으로 강조했다. 이 작품에서 키스의 주도권은 남성에게 있다. 남성 어깨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반짝이는 것은 세속적인 후광을 상징하고 있다. 중간에 끊어진 꽃밭은 사랑의 위태로움을 상징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클림트는 남녀의 옷 전체에 금박을 많이 사용했다. 이것은 종교화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성스러움을 나타내고 있지만 클림트가 금박은박을 사용한 것은 부와 남자의 매력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에로티시즘을 한층 더 극대화시킨다.

클림트는 원시미술과 이국적인 미술의 다양한 양식에 이끌렸고 ‘키스’는 유럽, 비잔틴, 일본 미술의 요소를 절충하여 장식을 극대화시키면서 효과와 상징성을 높인 작품이다. ‘키스’는 1906∼1909년에 걸쳐 클림트의 황금스타일의 정점을 가리키고 있는 작품으로서 1908년 쿤스트샤우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클림트 예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초상화다. 초상화가 사라져 가는 시기에 클림트는 초상화를 고집하였다.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가장이었던 클림트를 경제적으로 안정시켜주었다.

클림트의 초상화 대부분은 대학회화 논쟁 이후에 제작되었는데 정부기관 등의 공식적인 의뢰를 중단하면서 부호들이 초상화를 의뢰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는 초상화를 다른 작업과 동일하게 중요히 여겼으며, 의뢰한 고객의 눈에 맞추면서도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그의 뛰어난 데생 실력은 초상화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클림트의 고객들은 흡족해했고, 그에게 초상화를 그려 받는 것은 상류층 여인들의 영광이었다. 화려한 옷차림의 여인들의 초상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만족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클림트는 거의 실제 인물의 크기로 그렸으며 상류층 여성의 우아함을 놓치지 않고 표현했다. 모델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배경을 장식적인 요소로 극대화시켜 구성했는데 이것은 일반 사람들과 틀린 사교계 여성들의 배타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클림트의 초상화에는 상류층 여인과 사교계의 중요한 여인들을 대상으로 한 초상화와 전문 모델을 그린 초상화로 크게 구분되어 진다. 클림트의 초상화는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과 다른 요소 두 가지가 있다. 움직임의 결여와 장식성이다. 클림트의 초상화에 여자들은 화려한 옷에 둘러싸여 어떠한 외부 환경에도 상관없이 정지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키스’/ 1907~1908년/ 캔버스에 유채 180×180/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소장

◇부와 관능이 어우러진 초상화◇

클림트의 초상화 중에서 가장 화려한 작품이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1’다. 이 작품은 기업가 페르디난트가 빈 은행가의 실력자 딸이었던 아내 아델레의 초상화를 클림트에게 의뢰한 작품으로서 남편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그녀는 화려한 목걸이와 모피를 착용하고 모델로 섰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클림트의 초상화 모델로 두 번 선 유일한 여인이다.

황금빛 배경 속에 황금빛 의상을 입고 있는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첫 번째 초상화는 클림트의 장식적 양식의 최고의 작품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그녀와 남편을 위해 클림트는 새로운 표현방식을 구상한다. 이제까지 그가 초상화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금·은박을 화면에 입혀 정교하게 장식한 것이다.

이 초상화를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복잡한 장식을 처리하기 위해 클림트가 정교하고 독특한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장식과 호화로운 금은박 사용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를 신비스럽게 만들었다. 그녀는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여신 같은 존재로 보인다.

부와 관능이 묘하게 어울려져 있는 이 초상화는 그녀가 원한 모습이 아니라 의뢰자인 남편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원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고가의 모피와 보석, 의상을 걸치고 있는 초상화는 아델레 저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걸려 남편의 예술적 안목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게 만들었다. 남편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이 초상화는 전통적인 초상화 기법에서 벗어나 있다.

이 작품에서 클림트는 모델의 얼굴과 손 그리고 어깨 부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화면의 나머지 공간을 무척 장식적인 무늬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비잔틴 황금 모자이크를 연상시키는 스타일과 장신구는 그녀의 사회적 지위를 알려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상화가 살아 있는 여성이 아니라 여신의 신비스러운 이미지에 가깝게 표현되었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전통적인 미적 가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 예술을 열었다. 하지만 그가 동시대에 오스트리아 사회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로 간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는 비난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전통이나 관념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숨김없이 시각적으로 표현한 그의 관능적인 작품 때문이었다. 그의 그림을 내년 초에 직접 볼 수 있다고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907년/ 캔버스에 유채와 금 138×138/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소장
출처 : 화타 윤경재
글쓴이 : 화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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