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의 가능성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독특한 말투와
거침없는 몸놀림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물,
바로 '시라소니'입니다.
하지만, 이 강렬한 캐릭터를 완성한 배우
조상구 씨의 시작은 그리 탄탄하지 않았습니다.
캐스팅 당시 그가 들은 말은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51% 정도 된다"라는
모호한 답변뿐이었습니다.
합격을 보장하는 확답이 아니었기에,
상황이 조금만 틀어져도 기회는
다른 이에게 넘어갈 수 있었고 그간의 기다림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가능성이 절반을 조금 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장 움직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조상구 씨는 곧바로
시라소니가 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말투, 거친 걸음걸이,
작은 몸짓 하나까지 치열하게 연구했습니다.
배역이 온전히 제 것이 되지 않았음에도,
언제 찾아올지 모를 단 한 번의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침내 시라소니 역할이 확정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준비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완벽한 시라소니가 되어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확실한 미래를 약속하지 않았지만,
겨우 1% 앞선 가능성을 믿고 먼저 움직였던 치열한 시간.
그 주저 없는 준비가 마침내 우리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전설적인 '시라소니'를
만들어냈습니다.

기회는 언제나 확실한 약속을 품고 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절반을 겨우 넘긴, 희미한 가능성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51%라는 가능성을 빛나는 현실로 바꾼 것은
결과를 막연히 기다린 시간이 아닙니다.
결과가 채 정해지기도 전부터
묵묵히 이어온 준비였습니다.
아무리 적은 가능성이라도,
먼저 발을 내딛는 사람에게는
이미 충분한 시작입니다.
# 오늘의 명언
51%의 가능성만 있다면 전력을 다해 뛰어들어야 한다.
남은 49%는 나의 노력과 열정으로 채우면 된다.
– 정주영 –
돌고래의 숨 고르기

제주 앞바다를 유영하는 남방큰돌고래들은
한참을 바닷속에서 헤엄치다가도 어김없이 수면 위로
몸을 솟구칩니다.
물고기와 달리 아가미가 없기에 남방큰돌고래는
분수공을 열어 묵은 숨을 길게 내뱉고,
다시 맑은 공기를 가득 들이마셔야만
비로소 깊은 바다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방큰돌고래는 다정한 풍경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혹여 동료가 너무 지쳐 스스로 떠오르지 못할 때면,
주변의 다른 남방큰돌고래들은 전혀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픈 친구 곁으로 조용히 다가가
자신의 등과 지느러미로 조심스레 몸을 받쳐줄 뿐입니다.
그러고는 천천히 수면 위로 친구를 밀어 올립니다.
동료가 다시 스스로 숨을 쉴 수 있을 때까지,
묵묵히 그 곁을 지키며 맴돕니다.
깊은 바다를 여행하는 남방큰돌고래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잠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일.
남방큰돌고래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숨을 고르고,
또 서로의 등을 기꺼이 받쳐주며
오늘도 바다를 함께 다닙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만큼 힘겨울 때,
잠시 멈추어 서는 건 결코 게으름이 아니에요.
더 멀리, 그리고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에게 주는 가장 정직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오늘 당신이 내쉬는 그 편안한 한숨이
내일의 당신을 다시 살아가게 할
단단한 힘이 되어줄 거예요.
# 오늘의 명언
쉼은 나태함도, 게으름도 아니다.
때로는 여름날 나무 그늘의 풀밭에 누워
물소리를 듣거나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보는 것이
최고의 휴식이다.
– 존 러벅 –
찰리 채플린의 심부름

서민들의 암울한 현실을
해학적이고 재치 있게 표현했던
위대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그는 배우로 성공하기 전,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어려서부터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그가 철공소에서 일할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주문이 너무 많이 밀려 직원들은 물론
사장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모두가 정신없이 일하던 와중,
사장은 채플린에게 잠시 짬을 내어
빵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채플린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태였지만,
사장의 지시에 순순히 빵을 사 왔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사장은 채플린이 사 온 빵 봉투를 열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봉투 안에는 빵뿐만 아니라 와인 한 병이
함께 들어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 빵만 사 오라고 했던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채플린에게 와인의
행방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채플린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장님은 언제나 하루 일을 끝내고
와인을 즐겨 드셨잖아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마침 와인이 다 떨어졌더라고요.
그래서 빵을 사러 간 김에 함께 챙겨 왔습니다."
사장은 채플린의 세심한 눈썰미와
깊은 배려심에 크게 감탄했고,
곧바로 그의 급여를 올려주었다고 합니다.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세심함',
힘든 상황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유머',
그리고 위기를 부드럽게 넘기는 '재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입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절은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거친 파도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타고 넘느냐에 따라,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재치는 스스로 환영받고 모든 차이를 무너뜨린다.
그 어떤 위엄성, 학력, 강인한 품성도
적절한 재치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 랠프 월도 에머슨 –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슬픈 역사

[1950년, 피난 어린이들]
돌아갈 곳도, 반겨줄 이도 없이 홀로 남겨진 아이들.
참혹한 전쟁이 남긴 것은 오직 깊고 짙은
'슬픔의 잔상'뿐이었습니다.

[1950년, 전쟁고아]
전쟁의 포화 속에서 홀로 고아가 되어버린 아이.
눈앞의 두려움보다 당장의 배고픔이 더 크게 다가오는
'간절하고 절실한 눈빛'입니다.

[1950년, 서울 수복일]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집터를 떠나지 못하는
노파와 여인, 그리고 아이.
흘릴 눈물조차 메말라 버린 '참담한 현실' 앞에
멈춰 서 있습니다.

[1950년, 집 잃은 닭]
폭격을 맞아 초토화된 서울 시가지의 모습.
무너진 잔해 속에서 희망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절망과의 조우'입니다.

[1950년, 피난민촌]
피난민촌을 향해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들의 뒷모습.
이 척박한 삶 속에서도 자식에게만큼은
깨끗한 물을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1950년, 거리의 노동자]
그 누구에게도 기댈 곳 없이
온전히 혼자 힘으로 버텨내야 하는 삶.
모든 것이 무너진 거리에서 하루하루 묵묵히 이어가는
'살아남은 자의 몫'입니다.
- 임응식 사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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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76주년을 맞이하는 6.25 전쟁.
직접 전쟁을 겪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서든, 예술을 통해서든
이것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온전한
'우리네 슬픈 역사'입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평화로운 땅과 일상은,
6.25의 참상을 온몸으로 버텨낸 누군가의 피와 눈물,
그리고 눈부신 노력으로 일궈낸 소중한 유산입니다.
그분들이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기억하는 것,
그리고 이 땅을 온전히 이어받아 다음 세대에게
안전하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
오늘만큼은 그 숭고한 마음을 가슴 깊이
새겨보기를 바랍니다.
# 오늘의 명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 키케로 –
어두운 섬에서 피어난 희망, 자산어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인간을 진짜 죽음으로 몰고 가는 병은
육체의 질병이 아니라 바로 '절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거센 풍랑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닥쳐온 시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
손암 정약전의 삶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약전은 신유박해로 인해 약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배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그가 머물렀던 흑산도는
이름처럼 아득하고 어두운 섬이었습니다.
언제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외딴섬에서, 그가 느꼈을 외로움과 슬픔은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하지만 앞날이 보이지 않는 짙은 절망 속에서도
정약전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너지지 않고 묵묵히 바다로 나갔습니다.
바다 생물들을 직접 채집하고 관찰하며,
다른 유학자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던
어류학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유배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58세의 나이로 쓸쓸히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학문을 향한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깊은 절망의 시간 속에서 피어난 결실이
바로 오늘날까지도 위대한 학문적 성과로 평가받는
'자산어보'입니다.

흑산(黑山)이라는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찾아냈던 정약전의 삶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 앞에 마주한 절망을,
당신은 어떤 태도로 마주하고 계시는가요?
# 오늘의 명언
실제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는
우리가 어렵고, 불행하고, 불만족스러울 때 도래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과
진정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 M. 스캇 펙 –
아무리 좌절할지라도 꿈꾸기를 멈추지 말라

재력가 아버지와 귀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발레를 배우며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내던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비극이 닥치면서
아버지는 투옥되었고, 가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은 귀족 가문의 부유한 딸이었던 소녀를,
한순간에 튤립 뿌리로 근근이 끼니를 때워야 하는
가난한 피난민으로 만들었습니다.
가혹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 소녀가 바로, 훗날 전 세계인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배우 '오드리 헵번'입니다.
그녀는 눈부신 은막 스타가 된 이후,
아들에게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담은 편지를 남겼습니다.
다음은 그 편지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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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마침내 끝이 났지만,
내 인생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단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 나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지.
그러다 우연히 영화의 단역을 맡게 되었고,
그곳에서 '배우'라는 새로운 꿈을 품게 되었단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어린 시절 발레를 할 때처럼 온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거든.
그 꿈이 생긴 뒤로는 호텔 접대원, 승무원,
담배 판매원까지 가리지 않았단다.
오직 연기를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지.
그러던 어느 날,
내게도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왔어.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했던 한 영화감독이
신인이었던 나를 과감히 캐스팅한 거야.
그리고 그 감독도, 나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단다.
영화가 개봉한 뒤 집 밖을 나섰을 때,
길거리의 사람들이 나를 보며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어.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이다!"
그 순간, 오랜 시간 나를 지치고
피폐하게 만들었던 내 인생의 전쟁도
비로소 끝이 났단다.
사랑하는 아들아.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때로는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엄마의 말을
꼭 기억해 주겠니?
세상은 네 꿈을 꺾어버릴 만큼 힘을 가지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이란다.
'다시 한번 해보겠다'라는 네 마음속 의지만큼은
세상 그 무엇도 절대로 꺾을 수 없어.
그러니 아무리 좌절할지라도 꿈꾸기를 멈추지 말아라.
인생은 참 변덕스러워서 아무런 이유 없이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는
반드시 눈부신 기회를 선물하니까.

행동하지 않는 꿈은 영원한 꿈에 불과합니다.
지금 도전하고 끝없이 노력하십시오.
꿈을 현실로 바꾸는 유일한 열쇠는
오직 당신의 실천에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지나간 날이 나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일이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 오드리 헵번 -
마음의 상처

발목을 삐었을 때는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우선 다친 발목을 가만히 두고 쉬어야 합니다.
삔 발을 계속 사용하면 상태가 악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염좌 부위에 얼음찜질로 열을 식히며
놀란 근육을 진정시켜 주는 것이 좋은
치료법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삐끗하곤 하는
우리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 역시
발목을 치료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가만히 멈춰 서서
내 마음의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감정이 날카롭게 서 있는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부러진 발목으로 억지로 걸음을 재촉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서툰 존재들입니다.
때로는 내가 준 작은 상처가
상대에게는 도저히 버티기 힘든 무게로
다가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상처받은 마음에는 잠시 멈추어
쉬어가는 휴식과 얼음찜질 같은 진정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변명 대신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고
상대가 회복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는 상처받았을 때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때 치유된다.
- 포프 -
제갈량의 남동풍

적벽 대전(赤壁大戰)은
중국 후한 말 천하통일을 목표로 남하하는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손권과 유비가 연합해
양쯔강 적벽에서 벌인 큰 전투입니다.
훨씬 많은 조조의 대군에 맞서,
수적으로 열세했던 연합군의 책사 제갈량은
이런 전술을 세웁니다.
"동짓날부터 3일 동안 거센 남동풍을 빌려 오겠으니
그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거센 남동풍이 불 때 화공으로
적군을 물리치겠다는 전술이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결정적으로 꼭 필요한 바람이
반대로 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이 목욕재계하고
밤낮으로 기도드린 지 사흘 만에
거짓말같이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고,
그 결과 조조의 대군은 연합군에게
적벽 대전에서 대패합니다.
설마 하고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은
제갈량의 신통력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경악하며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갈량이 신통력을 가졌다기보다는
매년 그때쯤 남동풍이 분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 중 제갈량이 한 노인을 통해
동짓날 전후에 미꾸라지가 물 위로 부지런히 들락거리면
남동풍이 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구름과 천문에 대한 지식으로 관찰하며 기상을
예측했던 것입니다.

배운 것이 많아 지식이 있다고 해도
경험이 부족하면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단, 경험만 쌓이다 보면 고집이 되기도 하니
지식과 경험이 적절히 섞일 때
지혜가 됩니다.
# 오늘의 명언
경험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다.
그것은 절대 헛되지 않다.
- 토머스 에디슨 -
두 사람의 차이

한 남자가 보입니다.
남자의 발 앞에는 돌덩이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남자는 낙심한 채 그저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좌절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여자가 보입니다.
이 여자는 앞에서 본 남자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발 앞에 놓여있던 돌덩이로 열심히 흙을 파내며
탈출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녀의 얼굴엔
희망이 엿보입니다.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탈출을 시도한 여성은 구덩이에서 스스로 나와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누군가 구해주기 전까지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 두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중요한 건 바로 시련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것입니다.
이처럼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터널 속에 있을 때는 오직 한 가지만 기억하라.
터널은 통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 윈스턴 처칠 -
20년간 오지를 누빈 '야전 의사'

에티오피아의 한 병원,
터질 듯 부어오른 얼굴과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대정맥이 꽉 막힌 30대 여성 환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위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형편으로 인해 2주일 소모품인
카테터(혈액 투석을 위해 정맥에 삽입하는 플라스틱관)를
6개월 넘게 꽂고 지내다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현지에서 처음 시도되는 난관이었지만,
한국에서 온 한 의사는 망설임 없이
수술대 앞에 섰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살려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역사상 최초의 대정맥 스텐트
시술이었습니다.
더 안락하고 편안한 길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20년 넘게 세계의 오지를 향하는
고단한 삶을 택했습니다.
그가 처음 오지로 향한 건
2001년 전공의 수료 직후인데
의대 시절 단짝이었던 고(故) 심재학 씨와
'전문의가 되면 함께 몽골로 봉사를 가자'고
뜻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심 씨는 전공의 3년 차에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 몫까지 해달라'는 친구의 유언을 품고
그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자마자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주 6일 근무를 고수하며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수술대를 지키면서
하루 평균 8건씩 메스를 잡느라
손에 건염이 생겼지만, 그는 통깁스를 한 채
손가락 끝만 내놓고 집도를 쉬지 않고
이어갔습니다.
그의 야전 이력은 재난 현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는데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당시 다국적 의료팀에 합류했던 그는
위급한 상황에 부닥친 산모를 만났습니다.
수많은 환자를 살려낸 베테랑이었지만,
분만 경험은 전혀 없었기에 산부인과 전문의인 아내에게
국제전화로 수술법을 물어가며 생애 첫
제왕절개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사고 치지 말라며 펄쩍 뛰었지만,
두 사람의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라 물러설 수 없어서
머릿속으로 수술 과정을 그리면서 배를 열었습니다.
독일 의사가 마취를, 미국 의사가 보조를 맡는 등
의료진이 힘을 모은 덕분에 아이가
건강하게 나왔습니다.
그에게 오지는 피해야 할 불편한 곳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생명이 숨 쉬는
자리였습니다.
그는 평생 수많은 생명을 살렸으나,
정작 자신을 위한 휴가는 단 한 번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는 7월 휴가 때에도 어김없이
아프리카 의료 봉사를 떠납니다.
멈춰 선 생명의 길 위에
다시 희망을 흐르게 하는 사람,
바로 박관태 의사입니다.
- 매일경제 신문 참조 -

전 세계 의료인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쓰이는
제네바 선언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종교나 국적이나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아직도 많은 의료인은 현장에서
땀 흘리며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사명감을 가지고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의료인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 오늘의 명언
내 안에 빛이 있으면 스스로 밖이 빛나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
여기서 그만 포기할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육상 400m 준결승,
출발선에 선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영국 국가대표
'데릭 레드몬드'는 오직 우승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150m까지 선두를 달리던 그는
갑자기 다리를 부여잡고 트랙에 주저앉습니다.
오른쪽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어 큰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이대로 경기를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을 위하여
얼마나 피땀을 쏟는 훈련을 했겠습니까?
그는 근육이 파열된 다리의 통증보다
우승에 대한 꿈이 깨어진 슬픔으로
뜨거운 눈물을 쏟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절뚝거리며 뛰기 시작했고
관중들은 그의 모습에 환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황급히 그에게 달려 나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그의 코치이자 아버지였습니다.
울고 있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
"아버지, 전 해낼 수 있어요"
아들의 말에 그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그래, 결승점까지 함께 가자구나!"
아들을 부축하며 그렇게 달리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한 채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6만 5천여 명의 관중은 '아름다운 완주'를 한
부자를 기립박수로 맞았습니다.
공식기록은 'DNF'(Did Not Finish)였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중요치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지금도 인생이라는 길을
모든 힘을 다해 달리고 있습니다.
완주의 과정에서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만나게 되며,
때로는 길이 험하다고,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역경을 극복할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좌절의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딛고 일어서느냐'입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우리 혹은 타인의 삶에 어떤 기적이 나타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 헬렌 켈러 –
영웅의 후손, 강뉴합창단 공연에 초대합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누군가의 헌신 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만,
정작 그 헌신을 이어받은 후손들의 삶을 돌아볼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6.25 전쟁 당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달려와 253전 253승이라는
불굴의 기록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강뉴부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국으로 돌아간 그들을 기다린 것은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1974년부터 1991년까지(약 17년간)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다는 이유로
강뉴부대는 박해와 차별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 숭고한 피를 이어받은 후손들이 지금,
'강뉴합창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강뉴부대 후손들의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대물림되는 빈곤 속에서 많은 아이가
배움의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은 결코 낯선 땅이 아닙니다.
조부모님이 자신의 청춘을 바쳐 지켜낸 나라이자,
언젠가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희망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9살 솔로몬은 연습을 위해 매일 왕복 3시간을 걷고,
한국의 도움으로 동생의 심장병 수술을 마친
12살 아베베는 한국이 베푼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아리랑을 연습합니다.
아이들에게 노래는 고단한 현실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5월 25일 강뉴합창단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가던 중
16살 시몬이 강도를 만났습니다.
뇌출혈 진단을 받을 만큼 거친 돌 매질 속에서
시몬이 온몸으로 감싸 안고 끝까지 놓지 않은 것은
한국에서 후원자분이 보내준 선물이었습니다.
병원에 실려 간 시몬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선물이라서
절대로 뺏기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밖에는 안 했어요."
몸이 아픈 것보다, 할아버지가 목숨 바쳐 지켰던
한국에서 보내준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지금은 퇴원해서 다시
연습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낸 의지

옛날 중국의 동진(東晉) 시대에
차윤(車胤)과 손강(孫康)이라는
선비가 있었습니다.
이 둘은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학문을 놓지 않았고
그 결과 한 시대에 높은 관직을 겸하며
어질게 다스렸다고 전해집니다.
차윤은 어려서부터 태도가 공손하고 부지런하였고,
학문에 대한 관심도 깊어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여 등불을 켤 기름을
구하기란 어려웠습니다.
차윤은 등불 없이도 책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다 여름밤 수십 마리의 반딧불이를
깨끗한 천 주머니에 담아 그 빛 아래서
책을 읽었습니다.
손강 역시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등불 대신
겨울밤 소복이 내린 눈에 반사되는 달빛 아래서
열심히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이렇게 차윤과 손강이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준
반딧불이의 '형(螢)'과 눈의 '설(雪)'을 합해
훗날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는 무엇이든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그 의지와 노력이 계속된다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결국 해내고,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결국 실패한다.
결국 당신의 의지대로 된다.
- 헨리 포드 -
달콤한 유혹에 빠지다

미국의 플로리다에서부터 카리브해,
북중미 일대에 분포하는 만치닐 나무는
풍성한 나뭇잎과 더불어 최대 15m까지
성장합니다.
그 덕분에 해변 도시의 방풍림으로 널리 심기며,
목재는 단단하고 조밀해서 배나 가구를 만드는 데도
유용하게 쓰입니다.
게다가 사과를 닮은 작은 열매는
무척 탐스럽고 맛나 보입니다.
향기도 달콤할 뿐만 아니라, 처음 한두 입은
실제로 달콤한 맛이 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죽음의 작은 사과'라 불릴 만큼
열매부터 잎, 껍질, 뿌리에 이르기까지
나무 전체가 맹독을 품고 있어 악명이 높습니다.
피부에 열매의 즙이 몇 방울 닿기만 해도
물집이 생기고 극심한 통증을 느낄 정도로 독성이 강합니다.
과거 카리브해의 원주민들은 이 수액을 이용해
독화살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만치닐 나무에는
'POISONOUS, DO NOT TOUCH!
(독성이 있으니 만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경고문입니다.

흔히 '3초 기억력'이라 비하하는 물고기조차도
미끼라는 의심이 들면 덥석 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탐스러운 유혹 앞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마음을 열었다가
화를 당하곤 합니다.
이처럼 유혹은 언제나 경계해야 마땅합니다.
만약 스스로 이겨낼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자리를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이 유혹받아 쓰러진 곳이면
당신도 그 자리에서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라.
- 오스왈드 챔버스 -
백한 번째 망치질

미국의 화폐 중 100달러 지폐를 보면
인자한 미소를 지은 한 남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를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대통령직을 수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며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벤자민 프랭클린에게 누군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실패와 위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전념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석공을 자세히 관찰한 적이 있으십니까?
석공은 큰 돌을 깨기 위해 똑같은 자리를
백 번 정도 두드릴 것입니다.
돌은 갈라질 징조가 보이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백한 번째 망치로 내리치면
돌은 갑자기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맙니다.
이처럼 큰 돌을 두 조각으로 낼 수 있었던 것은
한 번의 두들김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마지막
한 번이 있기 전까지 내리쳤던 백 번의
망치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공하기까지 필요한 경험의 양
즉, 정격 용량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이 아닌 경험이 반복되면
이것이 실패의 연속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경험이 반복될수록 성공은 매일
여러분에게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백한 번째 망치질을
망설이지 마세요.
# 오늘의 명언
경험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때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놀라운 것입니다.
– 벤자민 프랭클린 –
여러분의 화살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살다 보면 문득 세상의 기준 앞에
마음이 작아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는 것 같고
'누가 더 많이 가졌는가'를 겨루는
세상의 속도에 밀려 정작 내 안의 소중한 빛을
잊고 지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흔들리는 우리에게
고전(古典)은 가만히 멈추어
서는 법을 건넵니다.
옛 성현들은 활쏘기를 이야기할 때
'사부주피(射不主皮)',
즉 "가죽을 뚫는 힘에 주력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화살로 두꺼운 가죽 과녁을
관통하는 강한 힘을 자랑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활쏘기의 진짜 본질은 힘자랑이 아니라,
내가 조준한 과녁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맞히는 데 있습니다.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지치고 괴로운 이유는
삶을 자꾸만 남과 겨루는 '힘자랑 게임'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타인의 과녁에
아무리 10점을 쏘아봐야
그것은 결코 내 점수가 될 수 없습니다.
행복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큰 성취에서, 누군가는 따뜻한 관계에서
또 누군가는 조용한 일상에서
행복을 지어 올립니다.
남을 이기는 삶이 아니라 나를 맞히는 삶.
그것이 고전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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