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6. 화
공주 마곡사를 나와 추억을 찾아 곧장 갑사로 향하였다.
마곡사와 갑사는 같은 공주 지역의 사찰이지만
우람한 계룡산이 막고 있어 한참 돌아서 가야 하였다.
산등성이에 히끗히끗 흰눈을 이고 있는 계룡산은 장엄하였다.
계룡산은 금강을 허리에 두른 채 공주시. 계룡시. 대전시 등에
걸쳐있는 호서지방의 이름난 명산으로 동쪽의 동학사.
서쪽의 갑사. 남쪽의 신원사. 북쪽의 구룡사지 등 유서 깊은
불교의 유적이 분포되어 있는 산이다.
계곡물이 쪽빛처럼 푸르다하여 계림산으로 불리기도 한 계룡산은
산세와 관련하여 구룡산, 용산, 화채산, 화산 등이 있다.
주봉인 상봉(천왕봉 845m). 연천봉(740m). 삼불봉(750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볏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계룡산이라 이름이 붙어졌다.
차창으로 바라보는 계룡산은 나의 20대 어느 화창한 봄날,
동생과 함께 계룡산을 횡단하여 갑사로 넘어갔었다.
지금은 기억 속의 빛 바랜 사진으로 남아 있다.
동생과 나는 화사한 붉은 철쭉이 만발한 동학사를 시작으로
계룡산을 등반한 후 갑사로 하산하였는데 지금은 갑사라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희미하지만 귀가하기 위해
대전 역에 도착하였을 때 역광장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대전역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려 티켓팅을 하고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면 오늘 중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동생은 먼저 줄을 선 사람에게 우리 기차표도 부탁하자고 하였다.
이렇게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데 어떻게 우리가 먼저?....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하였더니 동생은 그럼 자기만이라도
먼저 가겠다고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기차표를 부탁하였다.
나는 그런 넉실좋은 동생이 부러우면서도 함께 동참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맨 뒤로 가서 순서를 기다려 팃켓팅을 하였는데
당연히 그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근처의 큰언니집으로 갔다.
밤늦게 집으로 전화하였더니 동생은 벌써 도착하여 잔다고 하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나는 참으로 고지식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추억을 찾아 나선 갑사 탐방이었으나 전혀 낮선 사찰로 내게 다가왔다.
잿빛으로 내려온 하늘 아래 입을 다 떨군 나목과
붉은 감 몇 알을 달고 있는 감나무 사이를 걸으니 어쩐지 서글펐다.
운판, 목어, 동종. 북을 간직한 범종루 곁을 지나니 대웅전이 나타났다.
갑사는 420년(백제 구이신왕 1)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가 창건하였다.
아도화상이 신라최초 사찰인 선산 도리사를 창건한 후
고구려로 돌아가기 위해 백제땅 계룡산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때 산중에서 상서로운 빛이 하늘까지 뻗쳐오르는것을 보고
찾아가 보니 천진보탑이 있었고 탑 아래에서 예배하고 갑사를 창건하였다.
556년(위덕왕 3년) 혜명대사가 천불전, 보광명전, 대광명전을 중건하고,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천여 칸으리 당우를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도량의 법맥으로 전국의 화엄 10대 사찰의
하나 되어 국중대찰로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되어 1654년(효종5년)에 중창하였고,
1875년 (고종 12년) 다시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는 대웅전. 강당. 대적전. 관음전, 음향각. 진해당.
적묵당. 팔상전. 표충원. 삼성각. 종각 등이 있다.
탐방온 사람은 아무도 없고 곧 눈이라도 내릴듯 춥고 으스스하였다.
문살을 다 떼어내고 몸체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사찰 건물 안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공사중인 인부도 보이지 않고 찬바람만 휑하였다.
다시 대웅전으로 되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가 삼배를 하고 앉았다.
보물 제 2120호인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 아미타불 소조 삼세불과
협시보살인 문수보살. 보현보살.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등
사보살 입상이 모셔져 있었다.
대웅전 안에는 길이 12.47m. 폭 9.48m의 초대형 탱화가 모셔져 있다.
부처님의 세계를 장엄하게 묘사한 삼신불괘불탱은 국보 제 208호로
천상셰계를 상징하는 상단, 삼신불이 그려진 중단.
외호중과 청문보살로 구성된 하단의 탱화라고 하였는데
평상시에는 관람을 할 수 없는 듯 하였다.
밖으로 나와 삼성각. 관음전 등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월인석보목판 (보물 제 582호). 승탑(보물 제 478호)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한 영규대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지만,
방문객이 없는 탓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가까이 가 볼 수도 없었다.
문이 닫힌 보장각 앞에는 갑사월인석보판목이라는 홍보판이 걸려있었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석보상절을 설명으로 하여 1459년(세조5년)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연보(일대기)를 뜻한다고 하였다.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 256호). 승탑(보물 제 257호). 동종(보물 재 478호)
월인석보목판(보물 제 582호) 등 국보와 많은 보물이 있다고 하였지만,
마음이 움츠려 들어 더 이상 찾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돌계단에 기대어 시들어가는 보랏빛 국화가 바로 내 마음같았다.
그 옛날 화창한 봄날 찾았던 20대의 나의 추억은
그냥 가슴에 묻어 두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디찬 공기 속에서도 새 봄을 기다리는 목련나무처럼
시린 내가슴에도 포근한 봄이 오겠지 하는 희망을 안고 돌아왔다.

범종루.

대웅전. 보물 제 2120호.

대웅전 한 켠에 세워져 있는 마니차.

보수공사중

옆문.


당간지주.


겨울 나기 준비를 마친 대웅전.

대웅전 안의 삼세불과 사보살.

대웅전 내부 모퉁이의 기도하는 도구들

시든 국화


담장 너머로 바라본 보물 제 257호 승탑.

칠성. 산신. 독성의 삼성을 모신 삼성각.


삼성각 내부.

봄을 기다리는 목련나무.

월인석보목판 보관소.



관음전.

석조약사여래입상 출입구.


석조약사여래 입상.

범종루.

부도전.

은행나무 가로수길.

80년. 5월 어느날 동생과 함께 동학사 입구에서 찍은 사진.

이제는 추억 속의 사진으로 남아 있는 나의 2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