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한강산책을 나갈 시각,
우연히 켜둔 TV 프로그램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이른 새벽 도봉산에서 출발하는 160번 버스의 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3일이었다.
늦은밤 시간대에 하는 본방송은 초저녁잠이 많은 나는
당연히 보지 못하였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저녁 산책을 포기할만큼 눈길이 가는 영상이었다.
본 방송은 4월 11일 23시.(KBS2)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몇 정거장 가지 않아 벌써 만원.
새벽에 일 나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주 이용객은 중년 이상의 여성분이었는데 같은 시간대에
버스를 타다 보니 서로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자식들 다 성장시켜 이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연령의
여성들이 여전히 현장에서 뛰는 모습에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움직일 수 있는 한 스스로 노동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모습.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과 보람을 찾는 그들이 대견하였다.
요즘 연일 뉴스에 오르는 땅투기, 기득권층의 특혜는
이들과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주제였다.
우리나라를 이글어가는 사람들은 말만 앞세우는 정치가들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이런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난 촬영팀에게 배낭속에 든 먹거리를 챙겨주는 사람들.
나누고 배려하는 삶이란 물질의 풍요와는 반비례하는 듯,
그들은 고단한 삶속에서도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자리를 양보하고
작은 꿈을 키워 나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아래의 글 <새벽일 나가는 사람들>은
몇 년 전 내가 쓴 시가 생각나 옮겨 붙였다.
* * * *
새벽일 나가는 사람들
정순이
어둠속에 웅크리며
새벽차 기다리는 사람들은 말이 없다.
좀처럼 오지 않는 새벽차를 기다리며
채 깨지 못한 선잠을 일깨우고,
지난밤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을 걱정한다.
급하게 국에 말아 먹은 아침밥은
명치끝에 걸려있고,
아직 막지 못한 할부금은
숨통을 조여 온다.
어둠 뒤에 어김없이 새벽이 찾아오듯
새벽잠 설치지 않을 그 날이 올 것을 믿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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