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관한 시
동지ㅡ 조용미
동짓달 기나긴 밤을 ㅡ 황진이
동지 다음날 ㅡ 전동균
12월 ㅡ 장 석주. 황지우
12월 저녁의 편지 ㅡ 안 도현
12월 ㅡ 오 세영
12월의 숲 ㅡ 황 지우
동지 조용미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
우레가 땅 속에서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비익총에 든 두 사람의 뼈는 포개어져 있을까요
생을 거듭한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붉고 노랗고 창백한 흰 달에
이끌려
나는 언제까지고 들길을 헤매 다니지요
사랑이나 슬픔보다
더 느리게 지나가는 권태로 색색의 수를 놓는 밤입니다
하늘과 땅만 자꾸 새로워지는 날
영생을 누리려 우레가 땅을 가르고 나오는
적막한 우주의 한 순간입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春風 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바밍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내여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이 오시는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동지 다음날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ㅡ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ㅡ 밥은 굶지 않는가?
ㅡ 아이들은 잘 크는가?
12월 장석주
해진 뒤 너른 벌판,
하늘엔 기러기 몇 점.
처마 밑
알록달록한 거미에게
먼 지방에 간 사람의 안부를 묻다
<좋은 생각> 2005년 12월
12월 황지우
12월의 저녁 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12월 저녁의 편지 안도현
12월 저녁에는
마른 콩대궁을 만지자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
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해두었구나
여기다 무엇을 더 채우겠느냐
12월 저녁에는
콩깍지만 남아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늙은 어머니의 손목뼈 같은 콩대궁을 만지자
12월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대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12월의 숲 황지우
눈맞은 겨울 나무 숲에 가보았다
더 들어오지 말라는 듯
벗은 몸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 목숨들로 連帶해 있었다
눈 맞는 겨울나무 숲은
木炭畵 가루 희뿌연 겨울나무 숲은
聖者의 길을 잠시 보여주며
이 길은 없는 길이라고
사랑은 이렇게 대책 없는 것이라고
다만 서로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듯
형식적 경계가 안 보이게 눈 내리고
겨울 나무 숲은 내가 돌아갈 길을
온통 감추어 버리고
인근 산의 積雪量을 엿보는 겨울나무 숲
나는 내내, 어떤 전달이 오기를 기다렸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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