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이육사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계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민족적인 바탕이 순수한 시의 바탕이 되고,시의 순수성이 민족의 현실과 결합하여 예술로서 승화되는 것이 육사의 두드러진 장점이다.그러기에 이 작품은 향토색 짙은 시와 순수성과 시적 인식이 뛰어난 육사의 대표적 서정시라는 평가와 함께,민족의 수난을 채색하여 끈질긴 민족의 염원을 시화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따라서 이 시를,청포도라는 사물에 대한 아름답고 신선한 작가의 감각을 표현한 서정시로 보느냐,또는 청포도로서의 어떤 의미를 상징한 시로 해석하느냐가 문제가 된다.
육사 시의 거의가 애국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그 특색인 만큼,이 작품처럼 순수한 감각적인 시에도 그의 특징인 애국적인 요소가 배어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그러나 포도를 따먹는 것까지 조국 광복을 기다리는 사실과 결부시킨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어색한 노릇인 것 같다.따라서 청포도가 익는 7월에 찾아오는 청포 입은 손님을 기다리는 주인의 흐뭇한 정서가 주조로 되어 있고,그러면서도 거기에는 청포 입은 손님이 암시하는 조국 광복에 대한 낭만적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공감이 서려 있다고 봄이 타당한 것 같다.
배경
이육사의 청포도가 발표된 시기는 1939년입니다. 일제의 무단 정치가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했지요. 따라서 이육사의 이해를 위해서 시대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일제 35년은 한국 민족의 반만년 역사상 단 한번 있었던 민족의 정통성(正統性)과 역사의 단절과 훼손의 시기였다는 점에서 치욕스러운 특징을 갖습니다.
1910년의 경술국치(이른바, 한일합방)로 일본의 식민 정책 지배를 받았던 조선은 매국노들의 반역 행위와 강대국들의 묵인 속에서 점차 국제사회에서 식민 국가로 인식되었습니다.
일본은 한국병합을 달성한 뒤 종래의 통감부를 폐지하고 보다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같은 해 10월 1일부터 구체적인 한반도의 경영에 들어갔습니다.
이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지배는 시대에 따라 다소 정책의 변동이 있었으나, 일관된 정책은 효율적인 식민지배를 위한 탄압, 영구예속화를 위한 고유성(固有性) 말살 및 우민화(愚民化), 철저한 경제적 수탈 등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35년은
① 제1기: 무단통치시기(1910∼1919),
② 제2기: 문화정치시기(1919∼1931),
③ 제3기: 병참기지화 및 전시동원시기(1931∼1945)의 3시기로 구분됩니다.
1929년의 세계경제공황을 계기로 일본제국주의는 국내외에서 심각한 모순에 직면하게
됩니다. 일본은 난국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만주를 침략하여 괴뢰국을 세우고, 중국과 전면 전쟁을 벌이는 등 침략전쟁을 확대해 갔음을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태평양 전쟁을 도발해 미국과 전면전을 벌였지요.
조선총독부는 이에 발맞추어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우리나라에서 물자와 인력을 최대한 수탈하는 정책을 구사했습니다. 1930년대 전반의 준전시체제에서는 농촌진흥운동이라는 미명 아래 농민을 식민지 지배체제속에 끌어들이고자 애썼고, 193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는 전시체제에서는 노동력과 물자의 부족을 메우려고,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한국인의 육체와 한국의 자원을 쥐어짜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알다시피, 징용 등으로 한국인을 공장, 광산, 전쟁으로 동원하고 지원병제도나 징병제를 실시하여 전투지역으로 끌어갔습니다.
젊은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공장에서 혹사당했으며, 그 중에는 군위안부로 끌려가 성적학대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30년 이후 한국을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 재편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는 일본의 대자본이 속속 침투하여 지금의 북한 지역에는 거대한 중화학공업단지가 조성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의 근대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본의 전쟁을 위한 군사 무기 창고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와 함께 조선총독부는 한국에서 식량과 원료를 최대한 수탈하는 정책을 강행하여 갖가지 공출제도와 증산운동을 시행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인력과 자원의 수탈에 그치지 않고, 한민족을 일본인으로 만들려는 황국신민화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한국어 사용과 한국사 교육이 금지되었고, 한국인은 매일 일본 국왕에게 충성을 바칠 것을 선서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심지어는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만들었다.(창씨개명), 그리하여 우리 고유의 전통과 문화는 파괴되었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은 심한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내용출처 : 본인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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