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14. 토.
임군홍, <가족>(1950)
전시정보<근대미술가의 재발견 1: 절필시대>, MMCA덕수궁, 2019.05.30~09.15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이 근대미술가 6명에 대해 재조명했다.
20세기 초중반의 대표적인 수묵채색화가 정찬영과 백윤문,
‘한라에서 백두’까지 전 국토를 그림으로 남기는 꿈을 꿨던 정종여,
국내화단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화풍을 구사했던 임군홍,
한국 모더니스트 1세대이자 한국미술을 개척한 선구자 이규상과 정규.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유족 소장 및 개인 소장 작품 60여 점을 포함해
총 134점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근대미술사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전시 시리즈의 첫 번째 전시로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1: 절필시대> 전을 5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MMCA덕수궁에서 개최하고 있다.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전시 시리즈는 20세기 한국미술사에서 소홀히 다뤘던 작가를 발굴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이번에는 한국화가 정찬영, 백윤문, 정종여와 서양화가 임군홍, 이규상, 정규를 소개한다. 모두 일제강점기와 해방기,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기로 이어지는 격동기에 의미 있는 행적을 보여준 화가들이지만, 혼란스럽던 사회·정치적인 상황과 취약한 창작의 토대가 이들의 꿈을 뒤흔들었다. 결국 이 여섯 명 모두 개인적 비극으로 예술을 멀리하거나, 고향을 떠나야 했거나, 혹은 화단의 변방에 머물다 생애를 마치는 등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다.
따라서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1: 절필시대> 전에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대립, 다양한 예술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이들을 ‘잊게 만든’ 시대와 예술 환경을 성찰하고, 우리가 미처 살펴보지 못한 화가들의 화업과 그 성과를 재조명한다.
근대한국화단을 채색했던 ‘신세대’ 정찬영과 백윤문
정찬영(1906~1988)은 대담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채표현을 통해 사실적이고도 온화한 화조화 화풍을 완성했던 화가였다. ‘혼인 후에도 작품 활동을 한다’는 조건을 내걸 정도로 열정적인 예술가였지만 둘째 아들을 병으로 잃고 그 충격으로 절필하고 만다. 하지만 1940년대 식물학자인 남편 도봉섭의 연구를 돕기 위해 식물 세밀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 그림들은 식물학을 기반으로 그려진 근대 식물화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족에 의해 기증된 정찬영의 초본과 식물 세밀화들이 보존 처리를 거친 후 대거 공개됐다.
백윤문은(1906~1979) 어진화가로 발탁되어 순종의 초상화를 그릴 정도로 빼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화가였다. 또한 사실적인 화풍의 풍속화를 선보이고, 전통적인 산수화와 인물화를 재해석해 평단과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남성들의 놀이와 생업을 소재로 한 그의 풍속화는 여성인물화 일색이던 기존의 근대인물화 가운데서 이채로운 존재감을 뽐냈다. 그러던 중 1942년 돌연 병마로 쓰러져 활동을 중단하고, 35년 뒤 기적적으로 재기했으나 2년 만에 타계하면서 쓸쓸히 사라졌다.
이렇듯 정찬영과 백윤문은 각각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채색화조화와 채색인물화로 두각을 나타낸 신세대 화가였지만, 개인적인 비극과 해방 후 일본에서 들어온 채색화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터부시되면서 수묵화 위주의 화단이 주류를 이루며 잊혀졌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에서 유입된 채색화풍에 사실성을 높이고 향토성을 가미해 1930년대 한국화단을 다채롭게 만든 화가들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대사의 아픔을 아득히 넘은 ‘해방공간의 순례자’ 정종여, 임군홍
한국 전쟁은 예술계에도 깊은 상흔을 남겼다. 정종여(1914~1984)와 임군홍(1912~1979)은 해방 후 1940년대 화단에서 누구보다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월북 이후 한국의 미술사에서 삭제된 인물이다. 정종여는 서양화와 동양화를 넘나들면서도 우리나라의 국토와 현실에 뿌리를 두고 한국화를 개척해 나간 화가다. 그는 사찰과도 인연이 깊어 불화를 자주 그렸는데, 그중 <진주 의곡사 괘불도>에서는 인간미가 넘치는 부처의 얼굴 표현 등 전통 불화의 법식을 벗어난 파격이 느껴진다. 근대 괘불(야외 의식에 사용하는 대형 불화)로서 최초로 미술관에 전시되는 이 작품을 통해 패기 넘쳤던 정종여라는 인물의 매력을 느껴보길 바란다.
임군홍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중국의 풍경과 풍속을 담은 그림을 통해 개성적인 화풍을 완성한 독특한 존재이다. 그는 중국을 여행하며 자유로운 예술 세계를 펼치다 정치 사건에 연루되며 화가로서 그 빛을 잃고 말았지만, 주류화단에서 비켜나 있으면서도 근대 서양화단을 보다 풍성하게 만든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세월이 흘러 월북 화가에 대한 금기가 해제되었음에도 여전히 이들이 남기고 간 작품만으로는 온전한 전시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작품과 자료들을 정리하고 왜곡된 내용을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현대미술의 개척자들’ 이규상, 정규
한국 모던아트 1세대로 불리던 이규상(1918~1967)과 정규(1923~1971)는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받고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현대미술을 개척한 선두주자다. 이규상은 일찌감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보였던 전위적인 미술가였으나 안타깝게도 당시 화단의 이해를 받지 못했다. 설상가상 질병과 가난으로 40대에 활동을 중단했고, 남아있던 작품과 자료들마저 모두 흩어져버렸다. 그렇지만 그가 몇 개의 기호로 구성된 간결한 이미지와 따뜻하고 온화한 색채, 시적인 울림을 주는 재질로 이뤄진 완성도 높은 회화를 선보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정규는 특유의 모던하고 세련된 회화와 판화 작품으로 근대화단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는 화가다. 또한 전후 한국 미술이 추구해야 할 현대성의 방향, 도시 건설과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예술가가 해야 할 역할을 모색하며 전방위적인 활동을 편 예술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현대 판화와 현대 도자의 개척에 몰두하면서 화가로서의 위상은 서서히 지워져 버렸다. 두 작가는 주류 화단과 거리를 두었기에 오랫동안 변방에 머물러왔다. 하지만 한국 현대미술의 초두(初頭)에서, 적극적인 선언이나 행동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예술 세계와 창작 태도를 모색해간 이들의 행보는 큰 의미를 지닌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은 개관 이래 ‘근대미술 전문 미술관’의 역할을 다하며 망각 속에 묻혀 있던 많은 근대작가와 작품을 발굴·공개했다.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1: 절필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뿌리 없는 나무가 존재할 수 없듯, 지금의 한국 미술이 꽃피기 이전에 자양분의 역할을 해준 예술가들은 분명 존재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자유로운 창작을 지속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도 누구보다 강한 집념으로 독자적인 예술적 성취를 이뤄낸 이들의 이름을 오래오래 기억하길 바란다. (펀글)
* * * *
추석 다음날 딸 아라와 함께 덕수궁과 서울시청 광장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마침 덕수궁에서는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이 전시회는 잊혀가는 화가들의 흔적과 기억을 모으고 근대미술사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 시리즈로 정찬영, 백윤문, 정종여, 임군홍, 이규상, 정규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그림을 좋아하고 미술관 찾기를 즐겨하였지만, 6 명의 화가는 모두가 생소한 이름이었다.
1부, 근대화단의 신세대: 정찬영, 백윤문
2부 해방공간의 순례자: 정종여, 임군홍
3부 현대미술의 개척자 :이규상, 정규
이렇게 3섹션으로 나누어 전시되고 있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그림이었지만
1940년대에 벌써 이런 색체감각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 놀라워 감탄을 하면서 보았다.
전시를 보는 동안 그동안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웠던 그 시대에
이런 높은 수준의 그림을 그렸던 그들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그림을 취미로 그리는 내가 이번 전시의 타이틀처럼
나 자신이 그냥 <절필>을 해야하는게 아닐까?....생각이 들었다.
그림의 양이 많아 한꺼번에 포스팅을 못하고 작가별로
3섹션으로 나누어서 올릴 계획이다.
가랑비가 솔솔 뿌리는 덕수궁.
중화전 앞의 설치미술.
설치물. 미래의 고고학자.
석조전 앞. 등나무 아래의 사람들.
석조전 앞 분수.
추석 연휴를 미술관에서 즐기러 온 시민들.
제 1부 근대화단의 신세대
정찬영과 백윤문에 대한 설명판.
정찬영
이영일에게서 채색화를 배웠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이어 특선을 받았다.
둘째 아들을 병으로 잃은 뒤, 그 충격으로 절필을 결심.
스승의 체본이 아닌 현장에서의 사생을 토대로 그렸다.
치밀한 형태 묘사, 대담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체 표현을 통해
사실적이면서 온화한 화조화풍을 완성.
남편 도봉섭을 위해 그린 식물세밀화
* * * *
백윤문
김은호와 함께 어진화사로 발탁되어 순종의 초상화를 그렸다.
1942년 병마로 화업을 중단.
1977년 건강을 회복하였으나 2년 후 1977년 타계하였다.
1930년대 조선미술전람회에 사실적인 화풍의 풍속화를 선보임.
전통적인 산수화와 인물화를 재해석하여 미술평단과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백윤문의 화구.
전시실을 찾은 관람자들.
로비에 걸린 대형 불화는 정종여의 진주 <의곡사> 괘불 .
* * * *
제 3부. 현대미술의 개척자 :이규상. 정규.
이규상과 정규는 한국 모던아트 1세대라고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받고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하였다.
이규상은 극도의 추상회화를 추구하여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하였고,
정규는 현대 판화와 현대 도자의 개척에 몰두하면서 화가로서의 위상은 낮아졌다.
두 작가 모두 주류 화단과는 거리를 둔 변방에 머무러 왔지만,
새로운 예술 세계와 창작 대도를 모색한 한국 현대미술의 선두주자였다.
3부의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서 일제 강점기. 전쟁 등
암울하고 어두운 시기를 살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진보적인 사상으로
현대미술을 추구하여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규상은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하였고,
일찌기 기하학적 추상화를 선보였던 전위적인 화가였다.
그러나 가난과 질병으로 40대에 활동이 중단되었고 작품들도 흩어져 버렸다.
그의 작품들은 종교적인 주제와 내면의 세계를
따뜻한 색채로 표현하였는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게 하였다.
정규는 세련된 회화와 판화 작품으로 근대화단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한다.
현대공예를 정립하는 공예가였으며, 조자와 건축을 아우른 종합예술가라고 하였다.
정규의 회화 작품들은 단순한 선과 세련된 중간색 톤으로 표현하였으며,
목판화 작품들도 정갈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었다.
3부. 현대미술의 개척자 이규상. 정규.
이규상과 정규는 한국 현대미술의 선두주자.
이규상. 구성. 1959. 개인소장.
이규상. 구성. 1963. 개인 소장.
이규상. 생태 11. 1963. 개인소장.
이규상 설명판.
이규상. 작품 A. 1960. 고려대학교박물관.
작품 1963.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생태23. 1963. 개인 소장.
구성 1959. 개인 소장.
이규상의 자료들.
* * * *
정규에 대한 설명판.
정규, 작품. 1957. 국립현대미술관.
정규. 공장. 1950년 대. 뮤지엄 산 소장.
교회. 1950년 대. 뮤지엄 산 소장.
교회 1955. 국립현대미술관.
달과 소년. 1950년 대. 개인 소장.
오두막. 개인 소장.
작품 1967. 가나문화재단.
회색. 봄의 축제.
여인. 1968. 가나문화재단.
장독. 불두.목판화. 뮤지엄 산 소장.
달. 1958년. 까마귀와 강아지와 장독. 목판화. 가나문화재단 소장.
새. 목마. 소. 목판화.
무제. 현대국립미술관 소장
노란새. 목판화. 현대국립미술관 소장.
열풍.1963녀. 목판화. 개인 소장.
강아지. 목판화. 가나문화재단 소장.
십자가상. 1962. 목판화. 고려대학교박물관.
소년과 돼지. 1950년 대. 목판화. 개인 소장.
흑유자기. 재유자기.
3전시실의 관중들.
* * * *
2부. 해방공간의 순례자 :정종여. 임군홍
2전시실에서는 월북 화가들 정종여와 임군홍의 전시실이었다.
1940년대 왕성한 활동을 하였지만 1950년 월북을 기점으로
남한의 미술사에서 삭제되어 버렸다.
임군홍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중국의 풍경과 풍속을 담은 그림을 통해 개성적인 화풍을 완성하였다.
임군홍은 중국을 여행하며 자유로운 예술 세계를 누비었지만,
정치 사건에 연루되어 남한의 화단에서 그 빛이 사라져 버렸다고 하였다.
내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감동을 받은 그림들은
바로 임군홍의 작품들이어서 2전시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그동안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 임군홍의 작품은
대부분 1940년대 중국의 풍경과 풍속을 그린 그림들이었는데
그 당시 이런 색감의 물감이 있었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념의 차이 때문에 너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임군홍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해 준 개인 소장자와 미술관 측의 관계자에게 감사드린다.
임군홍에 대한 설명판.
북해공원 풍경. 1940년대. 개인 소장.
각루. 1940년대. 유족 소장.
풍경. 1940년대. 유족 소장.
고궁의 추광. 194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산책. 1940
여인좌상. 193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모델. 1937. 개인 소장.
소녀상. 193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행려. 1940년 대. 유족 소장.
모델. 1930년대. 개인 소장
누드. 1936.
연못이 있는 풍경, 1939.
문. 북해공원. 1940년대.
성 밖 풍경. 1940년 대.
천단. 1940년대.
천단. 1945.
고궁의 추광. 1940년 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모델. 194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노점. 1941. 개인소장.
중국 인상. 194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행상. 1940년 대. 개인 소장.
다알리아. 1940년 대. 개인 소장.
동백꽃. 1940년 대. 유족 소장.
북경의 여인. 194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새장 속의 새. 1947. 유족 소장.
가족. 1950년 대.
소년. 1945년 대. 개인 소장.
덕진 초상. 1948. 유족 소장.
어머니 초상. 1930년 대. 유족 소장.
임군홍의 유품.
* * * *
2부: 해방공간의 순례자. 정종여.
정종여는 일본에 건너가 서양화와 일본화를 배우는 한편,
일본과 조선, 서양화와 동양화를 넘나드며,
우리나라의 국토와 현실에 뿌리를 둔 한국화를 개척해 나갔다.
전통 산수화의 관념성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자연과 사람들을 표현하였으며,
그의 인물화들은 작가의 생활 속에서 느낀 희로애락의 감정을 잘 표현하였다. 고
미술관에서 홍보용 프린트물에서 게시되어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 길게 드리워진 대형 불화는 바로 정종여의 괘불이었다.
내가 여지껏 국립박물관에서 보았던 괘불들과는 다르게
정종여의 괘불은 인간적인 표정이 담긴 그림으로 퍽 친근하게 다가 왔다.
정종여의 독수리 그림은 처음 본 순간 일본의 드라마에서 보았던
막부시대의 병풍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도 정종여 화가가
일본에서 공부한 영향이 이 그림에 녹아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금강산 조망>그림은 대형 그림으로
뒤에서 전체적인 풍경을 바라보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았는데
그 안에 사람들의 모습은 그 시대 상황을 알게해 주는 듯 하여 재미있었다.
특히 부산박물관 소장의 <산수도>는 깍아지른 바위의 표현이 너무 좋았다.
단지 먹으로써 이렇게 살아있는 듯 표현한 작가의 역량이 놀라웠다.
평소에 자주 보았던 1940년대의 한국화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게 하였다.
정종여의 프로필 설명판.
정종여에 대한 설명판.
정종여. 독수리. 1948.
처음 본 순간. 일본 그림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수리 설명문.
금강산 전망. 정종여. 194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대형 그림에 압도당하여 뒤로 물러나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자연속에서 사람들의 모습도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 주었고 친근하였다.
금강산 부분.
다시 전체를 찍은 사진.
산수풍경. 1939. 개인 소장.
석류. 1928, 유족 소장.
지리산 조운도. 1948. 개인소장.
설명판.
스케치. 유족 소장.
정종여의 자료들.
산수풍경. 1930년대. 유족 소장.
산수도. 1940년대. 부산박물관.
산수도 부분.
경인아기 돌잔치. 1949. 개인 소장.
스케치. 유족 소장.
보덕굴. 1950. 개인 소장.
송하탄금. 국민대학교 박물관.
오세창 선생 초상. 1948, 국립현대미술관.
파초입하. 1950. 청마기념관.
화조도. 1948. 연세대학교박물관.
매조도. 1948. 원곡문화재단.
로비에 걸려있는 정종여의 괘불.
괘불을 뒤로 하고 기념사진.
절필시대. 대형현수막.
현수막 앞에서 기념사진.
석조전 아래의 통로를 지나서.
옆에서 본 중화전.
분수에서 바라본 미술관.
석조전.
중화전 계단에서 휴식을 취하는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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