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이름
2010년 서울로 이사한 나는 낯선 환경속에서 우울하였다.
이사한 곳이 한강북로 옆이어서 창가에 서서
반짝이는 한강물을 바라보면 참 많이 위안이 되었지만
학교에 간 딸을 기다리는 밤이면,
강건너 불빛이 어룽지는 어두운 강물을 내려다 보면서
혼자서 참 많이도 울었다.
그 무렵 내가 찾아간 주민센터 2층의 작은 도서관.
그곳에서 책을 대출하여 읽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고,
자연스럽게 작은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곳의 자원 봉사자들은 대부분 사회활동에서 은퇴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때 알게 된 사람들과 오래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회원 중 K는 가장 젊고 세련된 외모의 소유자였는데
애처가인 남편과 예쁜 딸이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여
마음속으로 부러워하였다.
어느 해부터 K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암투병을 한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젊고 예쁜 사람이 어쩌다가.....안타까워하면서
회원들과 함께 K가 양평에서 요양하는 곳으로 찾아갔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따끈한 온돌방에서 몸을 지지고
주변을 산책하면서 K와 한나절을 보내고 왔다.
그 후 K는 그곳에서 많이 좋아졌다고 하면서
낫고 나면 언니를 따라서 해외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K와 가끔 문자로 안부를 주고 받았으며
기도 시간에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 K를 위해 기도하였다.
이제 집으로 돌아와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서 검진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내 생활에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문득 "엄마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는 카톡이 왔다.
K의 전화기에 입력된 내 번호로 딸이 보낸 문자였다.
세상에....그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하였던 내 자신을 책망하였다.
소식을 듣고 문고 회원들은 그 날 저녁 장례식장으로 문상을 가기로 하였는데,
하필 나는 그때 지방에 내려가 있을 때라 문상가는 회원 편으로 조의금만 보냈다.
병자를 위한 기도를 드리면서 늘 가족과 주변의 환우들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오늘도 딸과 촛불을 켜고 아침기도를 드리는 중 문득 K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얀 얼굴에 쌍커풀이 뚜렷한 그녀의 웃는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제는 병자를 위한 기도가 아닌, 죽은 은인을 위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구나.
기도중에 내가 좋아하는 시
이외수의 <11월의 시>가 생각났다.
(중략)
상처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수 없는 이름들...
서쪽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이라고 노래하였는데,
이제 나는 그녀의 이름을 지우려고 한다.
안녕. K~!
우리 다음 저 세상에서 만나 같이 여행가요.
* * *
11월의 시 /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겹씩 마음을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도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수없는 이름들..
서쪽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