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구백 냥.
도서관의 넓은 창으로 유유히 흐르는 하얀 구름이 참으로 여유롭다.
젊어 일이 바쁜 때에는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도 없이 살았던 것 같다.
노안이 되고 난 후에야 문득 창으로 들어온 구름이 아름답다는 걸 느꼈다.
요즘 무더위도 피할겸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날이 많은데
마음과는 달리 쉽게 눈이 피로하여 자주 눈을 쉬게 할 겸
창으로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상상의 세계로 날아가곤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노화현상이 일어난다고 하였는데
나의 경우는 가장 먼저 찾아온 노화현상이 바로 노화현상이었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부정하면서 안경 쓰는 것을 피하였다.
눈을 찡그리면서 보느랴 미간에 주름이 생긴 후에야 다촛점 안경을 맞추었는데,
적응이 안되어 안경을 쓰면 머리가 어지럽고 콧등도 가렵고 귀도 아팠다.
작은 글씨를 읽을 때에만 안경을 사용하여 더욱 노안을 악화시켰던 것 같았다.
내가 눈이 좋았을 때는 눈의 소중함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였다.
흔들리는 차안이나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으면 눈이 나빠진다고 하여도
직접 내가 당해 보지 않았으니 귓등으로만 들었던 것 같았다.
요 며칠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 조금 욕심을 부려 읽었더니,
눈물이 나며 속눈썹에 지저분하게 눈꼽도 끼고 눈 가장자리가 아픈 것 같아,
이러다가 큰 병을 키우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안과를 찾아갔다.
몇 년 전부터 건조하거나 바람이 불면 눈에서 눈물이 질금질금 나왔다.
내 어릴 적 외할머니댁에 가면 외할머니는 늘 눈가가 질척하여, 늙으면 저렇게
눈물이 나는구나 생각하였는데, 이제 나도 늙었구나....생각하니 서글펐다.
건강 정보를 통하여 눈으로 흐르는 눈물주머니가 막히면 눈물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공 눈물관을 시술하면 나을 수 있다고 하여 강남의 유명 안과에서 시술을 받았지만,
인공눈물관을 제거하고 나니 증세가 약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늘 눈가가 젖어 있었다.
옛 속담에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눈은 마음의 창',
'눈이 맑은 사람은 마음도 맑다'이라고 하면서 우리 신체 중 가장 귀하게 여기는 눈인데,
더 나빠지기 전에 안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오전 안과를 찾아갔다.
집에서 가까워 단골로 다니던 안과는 늘 환자가 많아 오랜 시간을 대기하였는데,
이번에 딸 아라가 추천해 준 안과에 갔더니 대기 환자가 없어 금세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연세가 드신 분인데 퍽 소탈하고 편안해 보이는 인상을 주는 분이셨다.
자리를 옮겨 정밀 검진을 해보라고 하신 후 크게 나쁘지 않으니 걱정마라고 하셨다.
나는 혹시 큰 병이 아닌가 하는 걱정과 함께 백내장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하였더니,
60이 넘으면 누구나 백내장을 갖고 있으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씀하셨다.
"혹시 백내장수술을 받아야 하는 단계가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하였더니,
"아무런 걱정말고 80이 되면 백내장수술을 받아라."고 하셔서,
푸하하....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 선생님. 제가 실손 보험이 있으니 친구들이 인공수정체 수술을 받으면
시력이 좋아지고,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고 권하던데요?" 하였더니,
보험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부모님이 물러 주신 몸을 귀하게 여겨라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지금 쓰는 안경도 정확하니 걱정마라고 하시면서,
눈에 넣는 약을 처방해 주시는데 어찌나 신뢰가 가는지....
불안하였던 마음이 편안해져, 선생님께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돋보기를 쓰고 보면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가 눈에 보이고, 싱크대의 물때 얼룩과
화장실 곳곳의 곰팡이를 보여, 주변의 내 친구처럼 인공수정체 삽입 시술을 할까?....하였는데,
그렇게 더러운 곳이 환하게 보이면 내가 쉬지도 못하고 걸레를 손에 쥐고 살아야 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노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하였다.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면 자잘한 글씨가 잘 보이고 더러운 곳이 잘 보이는 것은 좋지만,
이제 대충 더러운 것도 수용하면서 사는 것이 더 여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