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서산 해미읍성

푸른비3 2021. 4. 9. 09:29

2021. 4. 6. 화.

 

개심사에서 차를 돌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해미읍성이었다.

해미 읍성은 천주교 순교자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며

몇 년 전 늦가을 저녁무렵 해미읍성을 찾았던 추억이 서린 곳이었다.

두 친구는 여러번 다녀온 곳이라, 나 혼자 다녀오라고 하여 진남문을 들어갔다.

 

차곡차곡 쌓여진 돌담은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되는 듯 하였다.

안을 들어서니 파란 잔디밭위에서 연을 날리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잘 손질된 푸른 잔디밭위로 민속가옥과 객사. 동헌, 옥사 등이 드믄드문 서 있었고,

저 멀리 푸른 솔숲위에는 '맑고 욕심없이 다스리라'는 청허정이 세워져 있었다.

 

안내소에서 받은 리플렛에는 해미읍성은 사적 제 116호로 성곽길이 1800m.

높이 5m, 성내면적 196. 381 평방 m 이며 상시 개방. 주차장을 포함하여

무료입장이며 여러가지 전통문화공연과 상시운영체험을 즐길 수 있었다.

관람시간은 3_10월 까지는 05:00~ 21:00. 11월~2월 가지는 06:00~19:00.

 

천주교 신자인 내가 먼저 발길을 한 곳은 천주교 순교의 흔적이 깃든

조선시대 지방관서의 하나로 정무를 보았던 곳이며 순교자를 심문하였던 동헌과

1790년부터 100여년간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투옥시켰던 옥사였다.

옥사앞에는 1866년 병인박해때 천주교 신자들을 매달아 고문하였던 회화나무가 있었다.

 

옛기억을 더듬으면 해미읍성안에서 담장에 기댄 연보랏빛 국화와

저녁밥을 짓는 하얀 연기가 있었던 피어 오르던 민가가 있었는데,

내 기억이 잘 못 되었는지 이곳에 있는 3째의 민속가옥은 세트장처럼

꾸며져 있었으며, 남새밭과 꽃밭은 있지만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기억속의 그 마을은 어디로 갔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청허정으로

올라가 성밖의 마을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전혀 그 기억속의 마을은 아니었다.

어느덧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솔발사이로 아련한 분홍빛 복사꽃이 보였다.

어쩌면 내 기억속의 저무는 마을은 바로 안견의 그림 <몽유도원>속 이었을까?

 

 

 

가지런히 쌓인 해민읍성의 돌담.

 

성의 정문인 진남문.

 

계단을 올랐으나 성곽은 출입금지라서 아쉬웠다.

 

교황방문 기념판.

 

옥졸의 모습을 한 조형물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당시의 무기들.

 

운제. 성을 공격할때 사용하던 공성무기.

 

옥사와 회화나무.

 

순교기념비.

 

민속가옥.

 

옥사를 지키는 옥졸.

 

옥사의 앞마당.

 

옥사안의 조형물.

 

당시의 옥사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호서좌영.

내포지방 13개 군현의 군사권을 쥐고 있어, 충청지역 천주교 신자들을 1000여 명 이상을 처형하였다.

 

조선시대 지방관서로 일반 행정 업무와 재판등을 하였다.

 

동헌 뒤 담장.

 

1491년 충청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지은 청허정.

 

청허정 아래의 솔밭.

 

충남의 아름다운 100대 송림.

 

솔발 너머로 환한 빛깔의 복사꽃.

 

기억속의 옛마을은 몽유도원이었을까?

 

보랏빛 들꽃.

 

이순신 목상.

1579년 충청병마절도사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10개월간 근무하였다.

 

노란 유채밭위로 보이는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