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문
<좁은문>은 내가 학창시절에 감명있게 읽었던 앙드레 지드가 쓴 소설이다.
또 성경속에서 천국에 이르는 길은 좁은 문이라고 하였다.
어느 시절이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자 하는 청년에게 이 세상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코로나와 경제적 저성장의 상황속의 요즘이 청년에게 가장 좁은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딸 아라는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꿈꾸었다.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어린시절부터
피아노는 물론 바이올린, 플륫을 배웠으며 각종 대회에 나가 수상도 여러번 하였다.
어린 시절 TV 드라마에 삽입된 듣기만 하였던 곡을 금방 피아노로 연주하여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지나고 보니 그것은 음감이 있는
아이들은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감은 있지만 나처럼 인내심이 없어 엉덩이 무겁게 피아노를 연습하지도 않았으며,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내가 경제적 뒷받침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외국유학을 가기보다는 음악 교사의 길로 진로를 바꾸었다.
아라는 교육과목을 이수하기 위해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였고 <아일랜드의 민요>에
대한 논문이 통과하여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음악교사의 길은 너무나 좁은문이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음악이 중요과목이 아니어서
음악교사의 숫자도 줄어들었으며, 심지어 다른 과목의 선생님이
음악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음악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1년에 한번 시행하는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해마다 음악교사의 채용숫자는 줄어들어,
올해는서울 음악 교사는 10명 채용 공고가 나왔다.
차선책으로 경기도 지역으로 지망을 변경하여 공부하였다.
대학원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학교에서 조교를 하면서 공부를 하였기에
제대로 학교 공부외에 임용고사 공부를 하지 못하였고,
졸업후 지난 해는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하였는데
젊은 아이가 봄꽃이 화사하게 피어도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어도
바깥 나들이도 못하고 집안에 틀어 박혀 공부만 하였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세끼 밥을 챙겨주는 일이어서 참 안타까웠고,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만 하였을 뿐이었다.
11월 말 수원에 가서 1차 필기시험을 치르고
12월 말 결과 발표가 나오기 전에 2차 실기시험을 위해
성악. 피아노. 민요. 장구. 단소 등 다양한 공부를 하였다.
예상 점수도 높았기에 관문을 통과하기 어렵다고 하였으나 합격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엄마, 나 안되었어요....." 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식과 함께 눈물이 쏟아졌는데 차마 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내 마음이 이토록 아픈데 딸은 어떻겠는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래. 아프지 않고 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하는 생각이 들자,
딸에게 <새옹지마>고사를 들먹이며 지금 비록 안 좋은 상황이지만 앞으로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지도 몰라. 하느님이 앞으로 더 좋은 몫을 너에게 줄려고 그런 것 같아.
아직 준비가 조금 더 필요한 모양이야. 천천히 다시 다음을 준비하자 하고 위로하였다.
그렇게 딸을 위로하였지만 문득 화가 불쑥 치밀어 올라
어디 가서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고,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서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었고,
괜스레 하느님께 앙탈부리고 싶었다.
생각외로 나보다 딸이 더 의연하게 터널을 벗어나고
일 년만 더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공부가 가장 쉽다고 하였지만,
공부가 외로운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더 이상 공부를 권하고 싶지 않았지만 본인의 뜻대로 하라고 하였다.
최종 발표가 나기 전 딸 아라는 2차 시험 준비를 하면서
송파구의 사립학교 음악 교사 채용 시험 공고를 보고 신청을 하여
1차. 2차 시험을 통과하였으나 마지막 면접 관문에서 낙방하였다.
옆에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여 지켜 보았는데,
아라는 또 노원구. 은평구의 채용에도 응시하여 그곳에서도 1.2차 통과하였지만
역시 면접 시험에서 또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는데 왜 면접이 안될까?....
내가 안타까워하자, "이것도 다 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야."
하면서 의젓하게 이겨냈다.
혼자서 집에서 공부만 하기보다는 경험도 갖고 기분 전환도 할겸
시간 강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서 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간 강사 채용 공고를 보고 아라는 부지런히 자기 소개서를 썼고
나에게 고칠 곳이 없는지 봐 달라고 하였는데
내가 보기로는 정말 잘 쓴 것 같았고,우리 딸을 채용하는 학교는
복받은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슴도치엄마의 사랑이었을까?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어느 학교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아
그냥 신경쓰지 말고 임용고사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하였는데,
며칠 전 드디어 용산구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목요일 면접보려 오라는 연락이 왔다.
가르치는데 시간 빼앗기지 말고 공부만 해라고 하였는데 오히려 내가 더 반가웠다.
교생실습때 갖춘 정장이 봄옷이라 면접보려 갈 정장이 마땅하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아라는 용케도 <열린 옷장>에서 정장과 구두를 빌려 드디어 어제 면접을 보려 갔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열린 옷장>은 청년들에게 무료로 옷을 대여해 주는 곳이었다.
산뜻한 검정색 정장을 갖춰입고 집을 나서는 딸에게 V자를 보내며 등을 두들겨 주었다.
저러다 이제 그만 두겠지....하며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엄마, 3월부터 일주일에 2번 출근하기로 하였어." 웃으면서
들어서는 딸 아라를 "축하해~!" 나도 두 팔 벌려 안아주었다.
아무리 좁은 문이라도 노력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내 딸 아라가 그 좁은 문을 꼭 통과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