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수리
며칠 전 설거지를 끝내고 컴퓨터를 켜니 화면이 지직거리더니 캄캄해졌다.
전날 밤에도 동유럽 여행 사진 옮기고 문제없이 잘 사용하였는데 무슨 일일까?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 보고 화면의 연결선을 다시 연결해 보아도 소용 없었다.
본체의 푸른 전원 표시 등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평소에도 저렇게 깜빡거리고 있었던가? 눈살미가 없어 자신이 없었다.
이럴때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아들이 가까이 없음이 더욱 아쉽다.
지방에 사는 아들에게 카톡으로 파란 등이 깜빡이고 있다고 하였더니
파워가 나갔거나 보드가 나간 모양이라고 하였다.
기계치인 나는 파워가 무슨 뜻인지도 이해하기 어려워서 답답하였다.
그 전에 썼던 노트북이 오래되어 데스크 탑으로 바꾼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언제 구입하였는지 품질 보증서를 찾아 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는 아들이 부품을 사다가 조립해서 보낸 컴퓨터이다.
아들이 본체에 부착해 놓은 D컴퓨터 서비스 접수 문의로 전화를 해 보았으나
지금 문의중인 전화가 많으니 다시 걸어라는 멘트와 함께 뚝 ~전화가 끊겨 버렸다.
거듭 전화를 해 보았으나 똑 같은 대답만 들리고 정말 답답하였다.
피아노를 전공한 딸도 요즘 젊은이 답지 않게 컴퓨터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그래도 나보다 나으리라는 생각에 딸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홈페이지를 찾아 접수를 해 놓았으니 곧 전화가 오면 받아라고 하였다.
"역시 내 딸이 최고~! " 안도의 마음으로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 참 기다린 후에 우리 지역의 수리 기사와 연결이 되었으나
오늘은 고장 신고가 폭주하여 내일 다시 시간을 정하겠다고 하였는데,
지금 당장 마음은 급하지만 내일까지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만 하였다.
다음날은 일주일 중 내가 가장 스케쥴이 많은 날이라 시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능하면 내가 집에 있는12시 30분~ 2시 30분 사이에 와 달라는 부탁을
문자로 남겼더니, '점심 시간때 잠깐 틈이 나면 오겠다'고 하여, 종이접기 수업이 끝나자
곧장 집으로 달려와 기다렸으나 2시가 되어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으로 전화를 하였더니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서 전화라도 한 통 해주면 좋지....'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녁 5시 30분 이후는 집에 있으니 그 때는 꼭 좀 방문해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7시가 넘어도 소식이 없어 또 전화하였더니 시간이 없단다.
사후 서비스가 좋은 대기업 S사와 L사의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것이 후회가 되었다.
아들에게 "네가 가까이 있으면 당장 고칠 수 있을텐데 정말 답답하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대기업 상품을 구매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넋두리를 하였더니,
요즘 대기업은 노트북에만 치중하므로 데스크 탑의 부품은 구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컴퓨터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즐겨 찾는 카페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소식도 듣고,
내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포스팅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인 내 일상생활에
컴퓨터가 고장이 나니 갑자기 즐기는 소일거리가 없어진 듯 심심하고 서운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전화하여, "오늘은 11시 이후 집에 있으니 오전에 수리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어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다독였다.
어서 컴퓨터를 고치고 멀리 사는 친구와 함께 조선시대 실경 산수화<우리 강산을 그리다>
전시를 보기로 하였는데 약속을 다시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아 또 전화를 하였다.
지금 다른 수리를 하고 있으며 1시 이후로 오겠다고 하여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아니 컴퓨터 고장 수리 접수한 지 3일이 되었는데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킬 수 있느냐?"
어차피 화를 내어도 소용없으니 친구와의 약속을 오후 3시로 미루고 기다렸다.
약속한 1시가 넘자 눈은 연방 벽에 걸린 시계로 향하였다.
기다리는 시간은 어쩌면 그렇게 더디게도 흐르는지....신경이 예민해지는 듯 하였다.
1시 20분이 되자 기다리다 못해 또 전화를 하였더니 "엘리베이터 앞"이라고 하였다.
'.....에구, 조금만 더 기다리지.....' 성급한 내 성격을 탓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벨을 눌리고 들어온 수리공은 왜소한 체격에 가방을 두 개나 매달고 들어왔다.
선풍기를 틀어주며 "점심 식사는 하였어요?" 의례적인 인사를 하였더니
머뭇거리며 "시간이 없어 아직 못하였어요. 7.8월은 유난히 고장 신고가 많아서
집에도 늦게 들어가고, 제대로 밥 챙겨먹고 다니기 힘들어요. "하였다.
"세상에 2시가 다 되었는데 아직 밥도 못먹고 일을 하다니.....라면이라도 끓일까요?"
조금 전의 서운하고 답답한 마음은 사라지고 측은한 마음이 부쩍 들었다.
그는 머뭇거리며 "식당앞에 차를 댈 곳도 마땅히 없어 식사하기도 힘드는데...."
그 말을 듣자 부지런히 냄비를 불에 올려 라면을 2개 끓여 김치와 함께 내밀었다.
그는 쑥스러워하면서 금방 라면이 든 커다란 대접을 다 비웠다.
그가 수리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보니 정말 원리가 간단한 것 같았다.
그 고장난 파워기만 교체하면 해결되는데 그걸 못하니 이렇게 답답하구나 생각되었다.
그가 전원을 넣으니 캄캄하던 모니터가 환하게 다시 살아났다.
어두웠던 내 마음도 환하게 살아나고 끊어졌던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수리공이 가고 나자 공부한다고 자기방에서 얼굴도 내밀지 않던 딸이 거실로 나와
"에구....우리 엄마 오지랖은 어쩔 수 없어...."하면서 싱긋 웃었다.
나도 딸을 바라보며 눈을 찡긋~! 웃어주며 급하게 외출 준비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