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미협 봄 야유회1-정동진
2019.4. 18. 목.
아이들이 학교 다닐적에 휴가철이 되면 아이들 교육을 핑계를 대고,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은 남편을 종용하여 가족여행을 다녔다.
그 당시 생각이 좁은 나는 남편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생각하지 못하고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내게 남편이 유세를 부린다고 생각하였다.
일주일 내내 답답한 집에서 종종거렸던 일상에서 벗어나 길위에 오르면
차창으로 펼쳐지는 산과 들의 풍경이 나를 해방시키는 듯 하였다.
반면 남편은 느긋하게 잠옷 차림으로 뒹구르며 TV보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런 남편이 못마땅하였고 나와는 맞지 않는 답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해 여름휴가에 아들은 군입대하여 함께 하지 못하였고, 방학을 맞이한
딸을 데리고 동해안 일주를 하여 서울사는 동생집으로 가기로 하였다.
휴가철을 맞이한 도로는 혼잡하였고 차체는 달구어진 열을 받아 뜨거웠다.
툭터진 동해안을 조망하며 도착한 곳은 바로 모래시계가 서 있는 정동진이었다.
숙소를 정하고 그 당시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촬영장인 해변을 산책하였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줄지어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며 모래사장을 걷고 싶은
나와는 달리 남편은 어서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들어가서 쉬고 싶어하였다.
해변에 줄지어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우리는 음식을 주문을 하고 제법 기다렸다.
성수기를 맞이한 그 식당은 먼저 주문한 우리보다 옆 테이블의 음식이 먼저 나왔다.
그때부터 남편은 더욱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는데 그런 것을 나는 전혀 몰랐다.
뒤늦게 나온 생선 매운탕을 먹고 이제 식사가 끝났다고 생각하여 무심코 밖으로 나왔다.
열기가 가득하였던 식당에서 나오니 바다바람이 선선하고 상가의 불빛이 휘황하였다.
시원한 밤바람을 쏘이며 해변을 걷고 싶었으나 남편은 우리를 외면하고 앞 서 가버렸다.
이유를 알지 못하는 서운한 마음으로 뒤따라 숙소로 갔는데 남편은 냉냉하였다.
이유인 즉 우리가 아직 제대로 식사를 끝내지 않았는데 예의없이 먼저 일어났다고 하였다.
나는 식사가 끝났는 줄 알았다고....미안하다고 사과하였지만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 누웠다.
식탁위의 열기에서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에 남편도 함께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게 성질을 낼 일일까?....나는 나대로 속좁은 남편이 밉고 야속하였다.
다음날 아침 해돋이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고 서둘러 정동진 바다를 빠져 나왔다.
남편은 우리를 서울 동생 아파트 입구에 내려 주고는 그대로 마산으로 내려가버렸다.
그런 아픈 추억이 있는 곳이었으므로 정동진은 오랫동안 내 마음을 무겁게 한 곳이었다.
이번 광진미협 야외스케치겸 야유회를 강릉의 하슬라 미술관으로 정하였는데
미술관 바로 앞이 바로 정동진 역이어서 일행들이 식당으로 들어간 점심을 먹는 동안
나는 걸음을 빨리하여 정동진 역사안으로 들어가서 바다를 바라보고 싶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억이 아물아물하여 역의 플랫폼이 바다와 연결되었는줄
알았는데 철로 넘어 가는 길이 없어 굽은 소나무너머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곧 서울로 가는 열차가 도착한다고 하여 나는 열차 손님도 아니므로 나와야 했다.
점심을 먹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다시 모래사장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해변의 식당에서 매운탕과 초당두부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해변으로 가 보았다.
동해 바다는 항상 파도가 거칠다고 생각하였는데 이 날은 고요하고 잔잔하였다.
눈이 시리게 파란 바다를 바라보고 모래사장에 서 있는 조형물을 만져 보았다.
그 사람은 이제 멀리 가 버리고 아픈 추억을 되새기며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왔다.
정동진역.
레일바이크 매표소.
대합실을 요즘은 순 한국말 맞이방으로 바뀌었다.
정동진 플랫홈.
정동진 플렛홈의 바다를 향한 조각상.
누운 소나무너머로 수평선을 바라보고.
곧 열차가 들어온다는 방송에 급하게 나왔다.
점심 메뉴.
광진 미협 건배~!
정동진의 모래시계. 추억이 서린 곳.
정동진 해벽의 선상카페.
회원님들의 기념사진.
동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잔잔한 동해바다.